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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너 어ㄸ...”
“뭐, 왜. 어떻게 알고 왔냐고? 네가 안 말해줘서 알아서 주워 들었다, 왜.”
“...야, 김민규.”
“한성지랑 마주쳤냐고? 마주쳤다, 왜. 여전히 변함없이 재수 터지더라.”
내가 병실에 들어서자 마자 부승관은 처음으로 격한 감정의 동요를 보였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동그래져서 먹고 있던 복숭아까지 뱉어 내는 꼴을 감상하다가, 말 없이 병실 간이 의자에 털썩 앉아서 허술한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버렸다. 한성지와의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기분이 상할대로 상해 있어서 그런지, 뭔지 매번 만날때마다 내 모든 신경과 사고를 한 손에 쥐고 기여도를 신나게 올리는 부승관을 오랜만에 보고도 시큰둥하게 느껴졌다. 놀라움이 눈에 띄게 드러났던 찰나의 순간이 끝난 녀석은 태세를 빠르게 바꾸어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어떻게 알고 왔냐, 대체 왜 왔냐, 누가 알려줬냐 뭐 하나 건덕지 물때까지 내 앞에서 유도신문이라도 할 기세여서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부승관이 입을 떼기도 전에 선수를 쳐버렸다. 사실 그 이후에는 처음 병실에 들어 올때 눈에 띄었던 반깁스를 하고 있는 다리와, 팅팅 부어 있는 부승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똑바로 보게 되면 부승관의 말을 빌려 '주제넘은 참견' 이 우수수 쏟아 질 것 같아서. 나는 앉아 있는 의자 밑으로 주먹을 세게 말아 쥐는 것으로 나마 소요 상태가 발생하기 일보 직전인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한참을 섬짓한 침묵과, 매서운 시선을 받으며 정처 없이 눈을 내돌리던 나의 시선 끝에 가냘플 정도로 마른 녀석의 손목이 보란듯 걸렸다. 상당히 헐렁한 소매에 감춰진 작은 손을 보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누구랑 싸웠냐?”
“...김민규, 제발.”
“......”
“나한테 제발 간섭 하지마. 너 이러는거 존나 짜증나고 불쾌해.”
나는 밑으로 고정했던 눈을 들어 부승관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피떡이 된 얼굴로 그딴 말이나 내뱉을거면, 차라리 평소 하던대로 감정 없이 말해주지. 오랜만에 마주한 녀석의 눈은 간절했다. 손에 쥐어질 것만 같은 간절함이 뚝뚝 서린 눈동자가 내게 말하는 듯 했다. 제발 자신에게서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이럴때는 부승관의 저 솔직함이 미치도록 짜증난다. 한성지도 짜증나고, 필요 없는 싸움박질 이나 하고 얻어 터지는 꼴만 내게 보란듯 보여주는 것도 짜증나고, 존나 사연 있는 거 다 티나는데 쓸데 없이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하는 건지 뭔지, 내 앞에서는 일절 입을 떼지 않는것도 짜증나고, 무엇보다도 무슨 상황이 생겨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녀석한테 화가 나고, 이제는 부승관을 본인이 원하는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내 자신한테도 화가 난다.
아까 한성지와 마주치고 나서야 부승관을 만났을때부터 들었던 기묘한 위화감이 해소 됐다. 한성지를 x의 값으로 두고 보면, 모든 일의 아귀는 참 값을 찾은듯 딱 맞아 떨어진다. 부승관이 나조차도 하지 않는 목적과 생산성 없는 싸움을 하고 다니는 이유. 그것도 한성지다. 그 안의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싸움을 부추기는 장본인은 한성지라는건 이제는 부정하지 못한다. 다 제쳐두고 한성지가 내게 짓밟아 뭉갠다는 비유를 쓴 거 하나만으로도 충분 하다. 한성지는 누군가를 짓밟고 정상 위에 서 있다. 힘으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누군가의 등판을 타고 올라가 손 하나 까딱 없이 그 권력들을 누리고 있다. 기꺼이 등판을 내준 누군가는 아마도 한성지를 지독히도 좋아하는 불쌍하고, 어리석고, 한심한 부승관이 될것이다.
나는 기대고 있던 의자에서 일어 났다. 고뇌에 젖은 한숨이 입을 타고 흘러 나왔다. 부승관은 그 부당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숨겨서 한성지가 쌓아 올린 그 사회성 좋은 이미지를 지켜주기에만 급급하다. 내가 더 사무칠 정도로 답답한데, 왜 당사자는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짧은 16년 인생을 지내오면서, 나는 그래도 또래 보다 나름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많은 간접적 사회경험을 했다. 그래서 알게 된 교훈은 이 넓은 세상에 구구절절한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저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충들을 품고 있을 것이고, 그건 정말 대외로 누출하기 극히 꺼려지는 철저한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부승관을 만나기 전의 나는 남의 개인사나, 진중한 이야기는 되도록 대화 주제에서 멀리 하려 하고는 했다. 쓸데 없는 정의감도 있는 성격 이라, 그걸 듣는 순간 그 사람의 고민의 무게를 내가 함께 공유하고 짊어져야 한다는 막대한 책임감이 부담 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승관에 대해서는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부승관 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데, 너무도 어설프고 티나게 감추려 해서 더 파고 들고 싶어진다는 걸, 너는 알까.
나는 어느정도 눈치가 빠른편이고, 그렇다고 사려 깊은 성격은 아니다. 내가 진짜 작정하고 파고들면 굳이 부승관을 다이렉트로 통하지 않더라도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명쾌하게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난 그런 집념이 있다. 물론 제 3자의 문제였다면, 보여주기 식으로만 행동해도 그냥 귀찮아서 모르는 척 넘어가겠지만, 부승관은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내 본능 적인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고민과 마주했다. 그건 내 스스로가 주는 숙제였다. 부승관이 안고 있는 비밀들을 더 파고들것인가, 말것인가가 그 주제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릴 수 있는 오지랖도 정도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오지랖 넓은 부승관의 주변인 역할을 고수 할거라면, 그냥 이쯤에서 치고 빠져 줘야 한다. 이 이상 더 가면, 그건 오지랖 범주를 뛰어 넘어버린다. 부승관의 일이 곧 내 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부승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부승관에 대한 이 거부할 수 없는 감정들은 대체 어디에 종속 돼 있는가.
“부승관.”
“......”
“내가 한성지 죽여줄까?”
나는 패를 뒤집었다. 내가 꺼낸 패는 O 였다. 나는 한성지를 죽일 수 없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싶지도 않고, 그 대상이 한성지가 되는 것도 싫다. 하지만 부승관이 죽여 달라고 말한다면,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게 바로 내가 부승관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값이다. 이마도 모든 일의 근원인 대상으로부터의 해방. 새삼 입으로 내뱉고 나니, 안개 낀듯 뿌옇기만 했던 모든 감정이 또렷하게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정말 큰일날 정도다. 큰일날 정도로 위험한 감정이다.
“누가 멋대로. 너는 성지 절대 못 죽여.”
“......”
“성지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널 죽여버릴거니까.”
놀라지도 않은 얼굴로 한 글자 한 글자 똑바로 뱉어 내는 부승관의 마른 입술을 보았다. 예상했듯,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부승관이 꺼낸 패는 X다. 지긋지긋한 제로섬 게임이다. 이 배틀에서는 두 명 모두 해방과 승리를 부를 수 없다. 결국 우리 둘의 배틀을 부추긴 사회자만 이득만 챙길 뿐이다. 우리 둘의 이해 관계는 절대 맞을 수 없다. 늘 상충할 뿐이다.
나는 앞으로 걸어나가 천천히 병실문을 열었다.
“이제 연락 안 할게. 잘 지내라.”
기브업을 외치며 끝을 고했다. 이제 더 이상 녀석과 배틀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
이건 끝이 아니다.
여름방학의 끝무렵이었다. 나는 그동안 고삐풀린 망아지 처럼 밖으로 쏘다니며 양아치 짓에 박차를 가했다. 정말 집에 들어가는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미치도록 마시고, 밤새도록 달리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또 다시 어제와 같은 나를 반복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내 어긋나는 행동을 견디다 못 해 부모님은 진지하게 호적을 팔 준비까지 하셨다. 김민규 요즘 졸라 이상해. 실연 당했냐? 한성지 생각나냐? 한 대 피우기가 무섭게 또 다시 담배를 찾는 내 행동을 보던 친구 녀석들이 낄낄 거리며 나를 떠보았지만, 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부승관과 내 조우를 모르고, 또 알아서도 안되는 녀석들은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사실 나도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내가 무엇때문에 이렇게 공허감을 느끼는지. 겨우 2~3개월 남짓 만났을 뿐인, 그것도 부정적 흐름이 대부분이었던 부승관 과의 관계 정리가 왜 이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원래 무덤덤한 성격이다. 부승관 앞에서는 조급함을 표내기도 했지만, 원초 성격은 동요가 잘 없어서 뭐든 극복을 빨리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부승관이 내가 몰랐던 어느 한 부분의 감정을 건드렸다 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한성지, 부승관. 그 둘의 이름으로 마인드맵이 이어졌다. 꼬리가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제는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가시적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냥 무던히 노력 하는 것 뿐이다.
“김민규 고등학교는 어디 가냐?”
“선택지가 어디 있냐? 정도고 가는거지 뭐.”
재떨이에 꽁초를 짓이기며 시큰둥 하게 말했다. 이야, 쫌만 있음 우리가 고딩이라니 낄낄, 술 좀 들어 갔다고 감성적이 된 녀석들이 또 시끄러운 수다를 떨며 지청구를 때렸다. 나는 쇼파에 어깨를 기대고 휴대폰을 달력을 바라 보았다. 3일만 있으면 개학이다. 방학은 뭐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개학이 달갑지 만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또 다시 학교를 정복 하고 다닐 생각에 괜히 들떴을텐데. 이제 슬슬 이 짓에도 권태기가 머리를 들이 민다. 원래 쉽게 질려 하는데, 초딩때 부터 중딩 끝나가는 무렵까지 이어온건 대단한 의지였다. 아, 고딩 되면 그냥 때려치우고 조용히 살까... 싶지만 주위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다. 피곤하다. 피곤하고, 지친다.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최근 들어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컨디션이 있는대로 난조된 상태였다. 그 덕에 술도 안 들어가서 오늘은 오는 잔 다 거절했다. 마시지도 못하고 시간 죽이기로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시시했다.
“야, 근데. 소문에 낼 좀 크게 싸움 한다는데.”
“뭐야. 어느 학교? 우리 학교 애가?”
“일월중에 그 새끼 있잖아. 오장효인가? 존나 쌈 잘하는 새끼. 걔 다이뜬대.”
“미친. 존나 재밌겠네. 누구랑 뜨는데?”
“그 누구지? 바른중에 짱하는 새끼있잖아. 광라리, 그 새끼. 엄청 시비 붙은 모양이던데. 오장효 개빡쳐서 자기 패거리 다 끌고갈 작정이란다. 1대 10으로 뜬다더라. 졸라 흥미롭지 않냐.”
감기던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상체를 바로 세우고 맞은 편에서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애들 쪽으로 얼굴을 돌린채 상을 내려쳐서 내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야야, 누구랑 싸움 한다고? 지금 내 표정은 내가 안 봐도 얼마나 썩어 있는지 짐작이 갔다. 제일 오른쪽에 앉아 있던 준환이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저번에 우리 술집에서 바른중이랑 싸움 났을때 그 싸움 졸라 잘했던 애비 애비한 새끼. 걔가 광라리 부승관맞지? 걔랑 오장효랑 뜬대.”
“...어디서.”
“모르겠는데. 궁금하면 다른애 통해서 물어 봐줄까? 너도 구경가려고?”
“장소랑 시간 알아서 카톡으로 남겨줘. 미안한데, 나 먼저 간다.”
뭐야, 저 새끼. 웅성웅성 하는 소란도 개의치 않고, 정신 없는 자리를 빠져 나왔다. 지금 나를 더 정신 없게 만드는건 아까 들었던 그 말들이었다. 정도껏 해야지, 나오자 마자 육성으로 욕을 내뱉었다. 불과 얼마전에 입원까지 했던 새끼가 또 싸움판에 기어 들어 간다고? 그것도 1대 10? 씨발, 장난질 좀 말라고 부승관. 나는 뒤집어 쓰고 있던 후드 모자를 거칠게 내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마음은 망설임이 있었는데, 손은 너무도 빠르고 익숙하게 부승관의 번호를 찾았다. 초록색 발신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할 새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신호음이 길어졌다.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고 있을 확률이 크다. 연락하지 않겠다고 나가 버린 새끼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다시 연락을 하니, 기피하고 싶은건 당연 하겠지만. 그래도 받아라, 부승관.
-......
지겹고 단조로운 수화기 너머의 연결음이 뚝 끊겼다.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침묵이 흘러왔다.
“야, 부승관.”
-......너, 연락 안하겠다며.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지금 당장 우리 집 앞 놀이터로 와.”
-.......
“마지막이라도 협박은 협박인거 알지. 헤이하게 굴지마라. 기다릴게.”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 정도만 해도 아마, 부승관은 올 것이다. 아니, 와야 한다.
-
예상은 적중 했다. 나도 도착해서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 부승관은 도착했다. 나는 녀석이 오는 걸 보고, 앉아 있던 그네에서 벌떡 일어 났다. 보름만에 보는 녀석이었다.
밥도 안 먹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올 뻔 했다. 며칠 안 봤다고 또 저렇게 야위어 진건 뭐야. 다행히 깁스는 푼 모양이지만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살짝 발의 절룩임이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힘이 탁 풀리는 모양새였다.
“용건 있으면 빨리 말 해.”
마침내 내 앞에 선 녀석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모습은 할 말 조차 잃게 만든다. 저 꼴로 내일 1대10 하러 간다고? 기가찬다. 웃기지도 않았다.
“너 내일 오장효랑 싸우냐?”
“아, 또 어디서 주워들어가지고.”
부승관은 눈썹을 찌푸렸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녀석의 어깨를 잡았다. 일단은 설득을 해보겠지만,
“가지마. 너 지금 그 상태로 가면 또 병원행이야.”
“...하, 너 진짜. 나한테 왜이래? 씨발 내가 뭐 그리 큰 죄졌냐? 키스한거, 그게 존나 아니꼬와서 지랄 하는 거면, 그래, 이제는 성지한테 꼬바르던지, 성추행죄로 신고 넣던지 쪼대로 해, 새끼야. 내가 이때까지 장단 맞춰 주니까 웃기지? 만만하지? 어?!”
설득이 먹힐리 없다. 악을 쓰며 화내는 저 녀석을 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부승관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미치는 영향은 없다. 생각해보면 이때까지 온것도 나라는 존재 때문이 아닌, 한성지에 대한 협박으로 먹혀들어 간 것이다. 그걸 새삼 깨닫고 나니 몹시도 허탈해졌다. 지금 내가 부승관을 불러 내서 무슨 말을 한들, 부승관의 생각을 변하게 할 수 없다는게 너무도 분명해져서. 조금 분하기도 하고, 아니 많이 분하다.
“한성지 때문이지.”
“...뭐?”
“너 싸움하는거 전부, 한성지 때문 아니냐고.”
부승관의 표정이 또 변했다. 반쯤은 어둠에 잠긴 녀석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침묵이 얽힌 공간 사이로 후덥지근한 바람이 살랑 불었다. 가시지 않는 이 눅눅한 공기가 불편하고, 부승관의 저 날카로운 가시 돋힌 시선도 불편하다.
“김민규, 너는 항상... 하나도 모르면서 다 안다는 듯 말해.”
“......”
“그래서 미치도록 싫어.”
하나도 모른다고? 그럼 말을 해줘, 부승관. 차라리 알 수 있게 확실히 말을 해달라고, 제발.
내 간절한 바램은 끝내 이루어 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 보던 부승관은 매정하게 뒤돌았다. 마지막이라는 약속 지켜. 다시는 연락하지마. 뒤를 돈 모습에서 마지막 말은 비수로 날라와 다시 내게 꽂혔다.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이제는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소용돌이 치고 있는 이 감정을. 최후의 보루로 은닉했던 내 진짜 감정을.
“가지마.”
“......”
“...제발!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 하잖아.”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는걸 한 적 없다. 구차하다고 생각했다. 비굴하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너한테 처음으로 부탁하잖아, 부승관. 가지말라고. 그 쉬운 부탁 마저도 고민 없어 내팽겨치는 건 너무 하잖아. 이번에는 걸음을 멈춘 부승관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표정 없는 얼굴이 나를 직시했다. 한참을 나를 바라 보던 부승관이 긴 한숨을 쉬었다.
“김민규. 나는...정말 너를 모르겠다. 네 생각을 모르겠어. 나한테 왜 이러는지도, ”
“...모르겠다고.”
나는 부승관의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 왔다. 두 발자국, 세 발 자국. 눈 앞에 점점 가까워지는 부승관을 흔들림 없이 보았다.
“왜 오늘은 안 묻냐?”
“..뭘?”
“너 나 좋아하지 라고.”
오늘은 그렇게 물으면 대답할 수 있다.
“좋아하는거 맞아.”
“......무슨......”
이번에는 틈이 생겼다. 당황한게 눈에 보인다. 나는 놓치지 않고 손을 뻗어 무방비하게 있는 부승관의 손을 꽉 잡았다. 녀석의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네 말대로 이제 다시는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고 이제 한성지 빌미로 협박도 안 할거고, 아예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는거, 그거 좋아. 그렇게 할게. 다른건 다 양보할 수 있는데, 너 내일 싸움하러 가는 거. 그거는 제발...제발... 가지마.”
“......”
제발, 이번 한 번만 이라도 좋으니까 한성지가 아닌 나로 흔들려 주라.
간절한 내 손위에 부승관의 손이 천천히 겹쳐졌다. 나는 작은 손이 내 손을 완전히 덮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그 모양을 쳐다 보았다. 한밤중의 늦여름 더위에도 서늘한 손이 나를 얼음처럼 굳어 버리게 했다. 부승관은 한참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왜 성지가 널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아.”
“......”
“너랑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고개를 든 녀석에게는 의미를 알수 없는 쓸쓸한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나를 한참이나 바라 보던 부승관은 불편한 다리로 살짝 까치발을 들고 내 목을 끌어 당겼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아이러니한 관계를 가지고 몇 번이고 입 맞췄던 입술이 느낄새도 없이 짧게 닿았다가, 아쉽게 떨어졌다.
처음이었다, 김민규 인생에 처음으로. 남 앞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마워.”
“......”
“안녕.”
결국 마지막 보루였던 내 고백 조차도 녀석을 붙잡지 못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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