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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계기로 불이 붙은 부승관에 대한 관심은 역시 예상했듯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아마 부승관은 모를 수 밖에 없었을테지만, 나는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헤어 나올 코드를 찾을때까지 끈질기게 매달리는 집요함이 있다. 그건 최근에 벌어진 이것 저것 복잡한 헤프닝으로 내 관심사 집합에 손쉽게 소속 돼버린 부승관에게 더욱 엄격하게 적용 됐음은 물론이다.

나는 한때의 성지에게 그랬던 것 처럼 이번에는 부승관을 만나러 매일 부승관이 있는 동네까지 찾아가는 계획을 세웠다가, 성지가 보면 기절할 일 있냐고 길길 지랄발광을 하며 날뛰는 녀석 덕분에 작은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지금 이 제로섬 게임의 승자는 누가 봐도 나인데, 내가 언제까지 번거로움을 감수 하고 녀석의 편의 봐주고자 찾아 가는 방법을 써야하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선택했다. 내가 찾아가는 원시적인 방법에서, 부승관을 내가 사는 동네로 불러 내는 효율성 좋은 방법으로. 이건 장점이 많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나와의 관계를 노출시키는걸 극도로 꺼려하는 부승관도 나름대로 세이프존인 우리 동네에서 만난다면 아주 큰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것이고, 주변에서 가장 큰 최대 위험 인물인 한성지와 마주칠 위험도 없고, 나도 굳이 부승관 동네에서 얼굴 안 팔려도 되고, 우리 동네는 일단 무조건 내 손바닥 안이니까 자유롭고 편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

 

, 씨발. 새끼가 정도가 있지. 내가 네 시다바리냐? 더러워서 못 해처먹겠네. . 성지한테 말하든 말든 쪼대로 해라, 쪼다 같은 새꺄.”

 

이 획기적인 방법을 소개 하기 위해서 부승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천하의 광라리 부승관을 직접 소환하는 첫 관문은 무참하게 Fail 됐다. 흥분한 언성으로 다다다 쏟아 내다가 결국 끊긴 전화를 보며 기찬 웃음을 짓고 있는데, 30초쯤 지나서 다시 한 번 전화가 걸려 왔다. 광라리 부승관. 발신자 이름을 보자 마자 냉큼 전화를 다시 받았 더니, 전화기 너머 부승관은 한참을 침묵한 후에 화를 간신히 억누르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로.”

뭐라고?”

네 동네 어디에서 만날거냐고, 씨발롬아.”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부승관의 한성지를 향한 거의 일방적인 애정으로, 나는 녀석에게 아주 많은 패널티를 줄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는 고맙다, 한성지.

나는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굳이 숨기지 않으며 대답했다.

 

우리 저번에 싸웠던 장소. 우리 집 앞 놀이터로.”

 

 

사실 부승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 했더라도, 내 일상에 찾아오는 큰 변화는 없었다. 달라진게 있다면, 성지와 사귀었을때와 비슷하게 방과 후에 딴 길로 새는 횟수가 조금 늘었다는 것. 항상 방과 후에는 후까시 오지게 잡으며 담배피다가 애들 데리고 술집, 공원은 전전 하며 하던 양아치 짓이나 계속 했을테지만, 부승관이랑 만나기로 한 날은 지체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너 또 여자친구 생겼냐? 다른 애들이 수상하게 여기면 '아니, 나 이제 양아치짓 접을 준비한다. 늙어서 체력도 안되고 쉬는 날도 있어야지.' 라는 거지 같은 변명이나 싸지르고 냅다 튀었다. 그래도 애들이 깊은 의심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성지를 사귀었을때 만큼 빈도 높게 부승관을 만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승관이 내가 부른다고 해서 넙죽 넙죽 매일 같이 출석 도장을 찍을리가 있겠나. 10번 부르면, 3번 정도는 와주었다. 나머지 7번은 한성지와의 선약을 이유로 여지 없이 단호하게 거절 했다. 물론 거절 했다고 해서 내가 빈정 상해 하며 다시 한 번 협박을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한성지라는 존재는 나와, 부승관 서로가 이해 해야할 공동선이었다. 일단 부승관의 마음이 다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부승관은 한성지의 바람도 눈 감아줬던 부처의 경지에 오른 남친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 이상한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부승관은 사전에 내게 경고 했다. 성지와 자신이 하는 모든일에 참견 및 끼어 드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말고, 무엇보다 성지 앞에서는 절대 나타나지도 말라고. 이미 한성지라면 학을 떼는 나는 무슨 웃기지도 않는 당연한 소리냐, 대들었지만 그 경고의 파급으로 나는 부승관을 내가 원하는 만큼 자주 보지는 못했다.

 

또 맞았냐?”

 

일주일만에 본 부승관의 꼴은 가관이었다. 나는 그네에 앉아 있는 녀석의 앞으로 걸어가 얼굴을 살폈다. 흰 반창고가 곳곳에 붙여져 있는 얼굴을 이리 저리 살피다가, 귀찮다는 듯 날 밀어 내는 손에 떠밀려 다시 뒷걸음질 쳤다.

 

누가 맞았대.”

지금 네 꼴이 맞은 꼴이 아니면 대체 뭔데.”

조용히 해. 머리아파.”

 

짜증스럽게 감고 있는 눈 언저리도 푸르스름한 멍의 흔적이 보였다. 나는 말 없이 녀석의 앞 모래바닥에 주저 앉았다. 싸움을 대체 어떻게 하고 다니면 맨날 맞고 다니냐? 물론 나도 싸움을 하기는 하지만, 때린 횟수에 비례하여 맞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일단 다른 애들보다 체격조건에서 훨씬 우세 하니까 그 체격과 싸움 스킬이 환상 조화를 이용하면 맞기 전에 끝장 볼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에 반해 부승관은 확실히 싸움 스킬은 좋지만, 체격조건은 오히려 남들 보다 열등 하니까 일단 나보다 많이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건 아는데. 항상 볼때마다 얼굴에 피죽이 올라와 있으니 보는 내 입장에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진짜 매일 싸움만 하나? 아무리 나라도 매일 싸움 하라 하면 절대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하겠다. 그게 얼마나 수명 깎아 먹는 일인데? 녀석이 매일 그 수명 깎아 먹는 싸움을 하는거면, 나는 정도중 짱으로서 진심을 담은 존경의 박수를 쳐 줄수도 있다.

 

할 거면 빨리 하고 끝내자. 피곤해.”

 

병든 닭 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이 느릿하게 눈을 떠 앉아 있는 나를 내려 보며 말했다. 부승관과 내가 만나서 하는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만나면 키스하고 끝. 정말 끝이냐고? , 정말 끝이다. 키스 후에는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부승관도 자신의 동네로 돌아간다. 그럼 대체 왜 만나? 이렇게 묻는 다면 나도 사실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계속 묘하게 생각이 나고, 눈길이 가는 부승관을 보고 싶다는 어설픈 감정과, 그런 녀석에게 키스 하고 싶다는 어설픈 욕구가 만들어낸 하나의 의식이라 하면 될련지... 그런 내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부승관은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만나는 시간보다 짧은데 내가 왜 수고해서 여기까지 와야 하냐며 온갖 쿠사리를 맥였지만, 나랑 더 있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 들이면 되는 거지? 이 한 마디 날려주었더니 잠잠히 내가 원하는대로 따라 주고 있었다. 그래봤자 일주일에 한 번 꼴, 많으면 두 번 이니까.

나는 말없이 녀석을 바라 보았다. 총기를 잃은 피곤에 잠식 되어 버린 눈이 처연해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는데, 안되는데...아닌걸 알지만 녀석은 참 약해 보인다. 자꾸만 나에게서 안쓰럽다는 감정을 유발 시킨다. 거지같게도...

나는 대답 대신 벌떡 일어났다.

 

. 배 안 고프냐.”

“...안 고픈데.”

우리집에서 뭐 좀 먹고 가.”

 

부승관은 잡고 있던 그네의 녹슨 줄을 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필요 없고, 피곤하니까 빨리 하고 끝내자고. 감정의 동요가 1도 없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화날 타이밍이 아닌데. 사실 아까 부승관의 얼굴을 볼 때 부터, 아니 그 전부터. 나는 화가 나 있었던게 틀림 없다. 날 만날때마다 달고 오는 그 상처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성지와 약속 다음 날에는 아물새도 없이 새로 생기는 그 상처들에 대해 충동적으로 캐묻고 싶어졌다. 너 무슨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그렇게 묻고 싶은데, 묻지 못해서 더 화가 났다. 그럴 위치가 아닌데 점점 녀석이 궁금해지는 내 자신에게도, 항상 짧은 만남 후에 녀석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강한 욕구에 이기지 못할 정도로 잡혀 버리는 내 자신에게도, 나로서 할 필요도 없는 주제 넘는 참견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 자꾸만 면역이 생겨가는 내 자신에게도. 이리저리 내 안에 숨어 있던 화가 오늘의 피죽이 된 녀석을 보자 기다렸다는듯 터졌다. 지금 입을 열면 그 화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 나를 천천히 지켜 보던 녀석이 본능적인 직감으로 느낀건지, 뭔지 자신의 머리를 쓸어 내리며 결국 한 수 접어주었다. 피곤하니 불필요한 언쟁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뭐 맛있는거 해줄건데.”

오늘은 아버지도 출장 가서 계시지 않고, 엄마도 야근으로 늦게 들어온다고 통보를 주신 날이기 때문에,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부승관을 데리고 왔다. 그럼에도 부승관은 은근히 경계를 세우고 있었다. , 내가 잡아 먹기라도 하냐? 현관에서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녀석을 보며 쏘아 댔더니 녀석은 대답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들어왔다. 털을 쭈뼛 쭈뼛 세우고 사람을 잔뜩 경계하는 고양이 같다. 순간 든 생각에 웃음이 터졌지만, 뭘 처 빠개냐? 이상하다는듯 쳐다보며 걸죽한 속어를 내뱉는 꼴을 보며 그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나는 우선 상당히 지쳐 보이는 녀석에게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명령했다. 예상외로 별 반항 없이 순순히 알았다며 내 방으로 들어가는 부승관의 뒷모습을 보다가, 주방선반을 뒤적 거렸다. 일단 라면 발견. 아빠가 밥을 해두고 갔나? 라면을 챙기고 밭솥을 열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집에서는 밥을 먹을때가 거의 없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겨우 신라면 두 개를 들고 한참을 고심하다가, 중간 냄비에 생수를 부었다. 일단 라면이라도 끓여먹자.

물을 올리고 면을 넣고 스프를 넣고. 학습된 순서로 라면을 끓이고 거실에서 쩌렁 쩌렁하게 부승관을 불렀다. 졸음이 가득 담긴 모습의 녀석이 내 부름에 비척 비척 걸어 나와서 앞에 차려진 라면을 보고 눈을 꿈벅였다. 진정 라면이나 처 먹으라고 불렀냐는 한심한 눈빛이 내 얼굴을 스쳤지만, 나는 꿋꿋하게 무시하며 앞접시에 라면을 듬뿍 퍼서 녀석의 앞에 놓아 주었다.

 

좀 먹고 다녀. 졸라 비실 비실 해가지고.”

“......”

그리고 처맞고 다니지 좀 마라. 명색이 광라리 꼴에.”

 

내 말에 녀석은 라면을 걸던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야 내가 이 정도로 처 맞았으면 걔네는 어찌 됐겠냐? 그 물음에 나는 또 발상의 전환을 했다. ! 그렇구나. 부승관 싸움 졸라 잘하는데 부승관이 이 정도로 쳐 맞았으면. 내가 이 새끼 걱정할 때는 아니네? 그제서야 수긍하며 라면을 먹는 부승관의 모습을 흘깃 훔쳐 보았다. 기껏 정성들여(...) 차려놨더만, 꼭 저 닮은 서툰 젓가락질로 깨작 깨작 먹고 있는 꼴이 못마땅했다. 좀 팍팍 먹었으면 좋겠는데. 이 생각을 하고 나니 무슨 내가 애 하나 키우는 보호자라도 된 기분이라 께름칙 했다.

 

근데. 너는 누구랑 그렇게 싸움을 하고 다니냐? 학교 애들?”

먹는데 말 시키지마.”

 

라면 국물을 따라서 마시던 녀석이 그릇을 내려 놓으며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딱히 대답 하고 싶은 눈치는 아니었다. 아마 먹는 중이 아니었어도 분명 무슨 이유를 대서도 말 시키지 말라고 꼽줬을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골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 쎈 척에, 허세 개 오지는거 알지.”

“......”

존나 싸가지는 국밥에 말아 처먹은 대쪽같은 성격에, 매사에 폭력적이고.”

“..., 너도 마찬가지잖아.”

 

, 좀 열 받았다. 별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녀석에게서 사돈 남말은 왜 하나, 라는 좀 빡친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야 좀 부승관 같네. 너무 병든 닭처럼 맥 없이 있어서 나도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었다. 나는 젓가락을 놓으며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근데. 하나도 안 무서워, .”

그것 역시 너도 마찬가지거든?”

귀여워.”

, 그니까 너도 마찬가지... 뭐라고?”

 

짜증스레 반박하던 부승관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무슨 좆같은 말을 던졌냐? 적나라하게 묻고 있는 듯한 벌레 씹은 표정. 아파트 뚫고 날아가는 부승관의 어이가 보이는듯 했다. 귀엽다고. 아예 못을 탕탕 박아 버리는 내 말에 부승관은 내려 놓았던 젓가락을 세웠다.

 

. 너 젓가락에 눈알 꽂혀봤냐?”

아니.”

꽂히고 싶냐?”

싫은데?”

 

내 대답에 부승관은 끝내 젓가락을 내 쪽으로 세게 던지며 일어났다. 밥맛 떨어지게 어디서 같은 소리를 해대, 씨발. 나는 바닥에 젓가락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반응 봐. 존나 귀엽네. 이러니까 내가 너한테 자꾸 집착하지. 하지 못한 말들을 삼키며 혼자 시베리아 벌판에서 찬바람 쌩쌩 불고 있는듯한 부승관을 보다가, 떨어진 젓가락을 다시 식탁 위로 올리며 말했다.

 

근데 장난 아니고 진짜 귀여워.”

 

야 이 호모새끼야 !!!

이번에는 숟가락도 거칠게 나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나는 모처럼 육성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어서 마음껏 웃었다. 그와 동시에, 난 녀석과의 다소 기계적인 키스 보다, 지금처럼 같이 시간을 할애하며 대화하는 순간을 가장 원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건 잠시간 뇌리를 스친 생각이었지만, 앞으로를 바꿔 놓을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

 

, 곧 엄마 오시는데 너 집에 ...”

 

설거지를 마치고 내 방문을 벌컥 연 나는 말꼬리를 점차 흐리다가, 이내 침대에 몸을 눕히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난장판을 쳐 놓은 내 책상 한쪽 끝에 머리만 겨우 댄 상태로 눈을 감고 있는 부승관을 멍하니 쳐다 보았다. 진짜 어지간히 피곤했나보네.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아까도 들었던 안쓰럽고 짠한 감정이 물 밀듯 들이 찼다. 잘 거면 침대에서 자지. 그대로 앉아서 침대로 옮겨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무릎을 굽혀서 녀석을 바라 보았다. 흑색의 머리칼이 얼굴을 범람해 있었다. 나는 녀석의 눈을 가린 머리칼을 천천히 손을 들어 넘겨 주었다. 아직 애티를 하나도 벗지 못한 얼굴이 점차 드러났다. 이 앳되고 수수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상처들과 함께. 나는 홀린 듯 녀석의 볼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정말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너 진짜 호모새끼지.”

 

녀석의 얼굴에서 한참을 손을 때지 못하고 그 위를 배회하고 있는데, 녀석이 여전히 눈을 감은채 낮은 목소리를 냈다. 내가 도둑질 하다가 들킨 것 마냥 황급히 손을 걷어 내자, 기다렸다는듯 눈을 천천히 뜬 녀석이 엎드린 상태 그대로 나와 눈을 맞췄다.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항상 두르고 다니던 독기를 한층 걷어낸 눈이 나를 응시했다. 살짝 풀린듯한 묘한 느낌을 내는 동공이 반짝였다. 부승관 너는 싸울때 사람 눈만 봐도 사기를 저하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것 참 전수 받고 싶은 스킬이다. 눈만 봐도 사람 마음을 약해지고, 몽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으니까.

 

왜 쳐다봐.”

 

내가 계속 무릎을 꿇은 상태 그대로 뚫어지게 쳐다 보고있으려니, 녀석이 상체를 천천히 세우며 물었다. 살짝 졸다 일어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목소리도 묘하게 나른 나른 했다. 불 꺼진 방안에서, 지기 시작한 붉고 어슴푸레한 빛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지친 부승관은 권태로운 태도와 표정으로 나를 대한다. 아까와 길길 날뛸때는 언제고, 다시 한 번 찾아온 또 다른 변화가 신선했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신기해서.”

뭐가?”

지금 되게 평범 해보여.”

 

내 말에 반박하고 들줄 알았던 부승관이 한참을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신기하네.”

뭐가?”

나도 지금 내가 되게 평범하다고 느꼈거든.”

 

부승관은 어렴풋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내게 짓는 처음의 웃음이었을 것이다. 처음보는 웃음 특별함은 없는 소탈함만이 가득 묻어져 나왔다. 만약에, 만약에 부승관이 정말 생겨먹은대로 평범했다면, 그래서 한성지 남친 자격도 없어지고, 그냥 평범하게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다른 학교애였다면. 나와는 절대 만날일이 없었겠지. 그럼 지금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없었을거다. 그렇다면 부승관은 오히려 지금 보다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는 모든 가정에 대해 생각했다. 가정은 단순히 가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부승관을 보며 물었다.

 

너는 평범한게 좋냐?”

아니.”

“......”

평범하면 지금보다 약하잖아.”

 

역시나. 내가 평범한 부승관으로 세웠던 모든 파동함수가 와르르 무너지는걸 느끼며, 나는 굽혔던 다리를 펴고 상체만 깊게 숙인채, 앉아 있는 부승관의 목을 살짝 잡았다. 크게 요동 없는 눈동자가 나를 직시하다가, 이내 마지못한 척 눈을 천천히 감았다. 이제는 내가 키스할거란걸 귀신 같이도 안다.

 

미치겠다...

나는 키스를 하기도 전에 몸에 열이 확 오르는게 느껴졌다. 부승관이 내 앞에서 무기력해질때, 내가 만든 상황에 순응하며 받아 들일때. 바로 지금 같은 순간. 사정없이 애달아 진다. 키스 보다 더 과격한 방식으로 탐하고 싶은 욕구를 배려 없이 자극한다.“

....김민규 성격에 그걸 표하지 못하는게 참 아쉬울 따름이지만. 나는 한 손으로 녀석의 머리칼을 넘기며 입을 맞췄다. 이 키스로 인해, 아까까지 유지 되던 평범함에 젖어가던 분위기는 다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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