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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얼굴이 왜 그러냐?”
“...나한테 얼굴 가지고 시비 거는게 제일 무의미 한 건 알지?”
“무슨 얼굴이 내가 어제 씹다 뱉은 후라보노 같음?”
뭐래? 주먹을 들며 위협 해보이려다가, 괜히 민망해져서 그대로 내 눈가를 벅벅 비볐다. 아 개 피곤하네. 눈 언저리를 비비던 손을 내리고 들고 있던 짧아진 꽁초를 바닥에 내리 꽂으며 발길로 비볐다. 평소답지 나 답지 않게 3분의 1쯤은 넋이 나가 있는 나를 오도카니 서서 묵묵히 바라 보던 이석민이 문득 생각난 듯, 목소리를 두 톤을 올리며 물었다.
“부승관이랑은 어제 만났냐?”
“아침부터 재섭게 부승관 이야기 꺼내지마라. 죠팔...짜증나 죽겠네. 니가 어제 바람만 안 잡았어도 그 개고생은 안 하는데.”
“넘어간 건 너의 그 습자지 같은 귀 고요. 남 탓은 사양함. 그래서 만난거야, 만 거야?”
“만나기야 만났지.”
“만나서 어떻게 됐는데?”
“우리 집에 재웠는데?”
“???????????????????????????????”
이석민의 동공과 입이 동시에 확장 됐다. 딱 그대로, 그 자리에서 석상마냥 딱딱하게 굳어 버린 이석민의 위에는 수만개의 물음표들만 활발히 부유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격한 반응 덕분에 괜히 말을 꺼낸 내가 더 민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그렇게 놀랄일인가... 했지만 그래, 솔직히 인정. 이건 정말 놀랄 일 이다. 어제만 해도 비장하게 동구형을 위한 부승관 픽업 서비스를 자처하며 맨 발로 뛰쳐나간 사람이, 오늘 와서는 난데 없이 ‘부승관 우리집에 재웠는뎅?’ 이런 말 따위나 내뱉고 있으면 나 같아도 기가 차서 뒤로 넘어가서 코 깨지겠다. 하지만, 그 어처구니 없는 결말을 납득시키기 위해 중간의 과정들도 일일이 설명해야 되는게 귀찮으니 나는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 했다.
“...너 진짜 부승관이랑 사귀냐?!!”
“님아! 조용히 좀 하세요. 뒤에 등교하는 애새기들이 듣고 추문 박차 가할일 있냐? 그리고 그냥 우리집에서 재웠다는데 그게 사귀고 자시고 하는 거랑 뭔 상관?”
“부승관이랑 잤다며?”
“아 씨발...단어 선택 좀 똑띠 안하냐?! 자긴 뭘 자냐고!! 그냥 상황이 어찌 저찌 돼서 집에 재운거 뿐이라니까? 아침부터 혈압 오르게 할래?”
그제서야 하늘 모르고 높아지던 이석민의 입이 겨우 다물어졌다. 그러고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한참을 입만 달싹 달싹 하던 이석민이 이내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등허리를 툭툭 위로 하듯 쳤다. 석민아.. 그냥 그 손을 다시 거둬서 그대로 네 머리를 후려쳐! 그렇게 말 해주고 싶었는데, 이석민의 표정은 일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을만큼 지나치게 진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 저 좆같은 생각하는 표정을 보니 좆같은 말을 내뱉을게 분명한데. 나는 양손으로 귓구멍을 세게 후벼 팠다. 좆같은 말이 나올게 뻔하니, 굳이 내 귀로 듣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
“그래, 김민규. 난 이해한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냐.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은 악한 것만 아니면 다 인정 받고 존중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 비록 한국이 좀 더 보수적이라 그런것에 대한 편견이 심하긴 하지만...나는 아니다? 나는 전혀 그런것에 개의치 않아.”
“...너도 참 내뱉는 말 마다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틀려 먹냐? 인생 정말 기구하다.”
“진짜 아냐?”
“아 쫌! 아니라고. 걍 그런 일이 있었어. 더는 묻지마.”
의심의 눈초리는 떨궈지지 않았지만, 이석민은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닥에 내려뒀던 가방을 한 쪽 어깨에 걸치며 기침이 나올랑, 말랑 간질한 목구멍으로 들끓는 가래를 뱉었다. 감기가 오려나. 허공에다가 마른 기침을 하다가, 문득 어제 감기 기운으로 기침을 하던 부승관이 떠올랐다. 부승관이 옮겼나? 역시 내 인생에 도움 안됨.
어제는 밤잠을 지독히도 설쳤다. 설친 이유가 무어겠냐, 굳이 되물을 필요도 없다. 답은 간단하지 않는가. 그 모든 이유는 부승관. 괜히 부승관을 내 방에서 재웠다가 밤잠은 다 설치고 새벽 늦은 시간에 겨우 겨우 잠 들어서 아침에 겨우 일어 났더니, 부승관은 내 방에서 감쪽같이 증발하고 없었다. 그대로 비몽사몽 거실로 기어 나가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엄마 어제 나랑 같이 왔던 그 새...아니, 승관이 어딨어?’물었더니, 엄마는 나를 흘끔보며 대답했다. 한 20분 전에 먼저 나갔어. 아침에 당번이라 먼저 가봐야 해서 일찍 간다면서 깍듯하게 재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더라. 네 친구치고는 예의 바르던데... 정말 네 친구 맞니? 엄마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친구 아닌데? 굳어지는 엄마 표정을 살피며 화장실로 도피하듯 뛰어 가고 문을 쾅 닫았다. 핑계도 말 되는 소리로 좀 대지. 당번은 무슨;
나는 자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저는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홀라당 가버렸다는것에 대해 굉장히 분노했지만, 그것 역시도 익히 알고 있는 부승관 성격이었기에, 할 말은 없다.
어제 내가 아직도 한성지를 좋아 하냐는 물음을 던졌을때, 정말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 건 정말 의외였다. 나는 그 대답을 들었기때문에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짐작만 했었다. 한성지와 부승관은 중학교 3학년, 그 사건 이후 모든 연을 잘라낸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올곧게 한성지를 사랑 했던 부승관도 마음을 접는 수순을 따랐을거라고. 그렇게 짐작 했었는데, 어제 들었던 부승관의 대답은 내가 했던 모든 가정을 보란 듯이 부정했다. 그래서 더 묘한 감정이 들었다. 부승관. 순정파구나. 안 그래 보였는데? 잔뜩 비꼬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레 일었다. 한성지 때문에 수 없이 당한 그 숨막히는 수모들을 감수하고도, 애정이 남아있다면, 그건 부승관 네가 아직도 호구라는 증거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형상화 되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성지를 만났을 중학교 3학년부터, 부승관과의 만남, 키스. 그리고 그때 있었던 모든 일들. 또 고등학교 올라와서 2학년이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
도중에 잊으려 노력 했던 기억들도 그 밤에 기어코 자취를 드러 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그때...말이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솟구쳐 올랐던 내 자존심이 바닥에 뭉개 졌을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비참함이 내 몸을 관통하던 그 감정도 선연히 나를 찌르고 들었다. 실로 내겐 좀 악몽 같은 밤이었다.
이상하지? 네가 내 애인 행세하러 나타날줄은 몰랐는데.
악몽 같은 딜레마는 정말 악몽까지 낳았다. 겨우 잠에 들었것만, 꿈에서 마저 가장 끔찍한 기억이 플레이 되고 있었다. 공간적 배경은 바른중학교 낙후된 구 체육관. 무릎을 꿇고 있는 내 모습. 내 시야에 상징적 의미처럼 둘러싸고 있는 운동화들이 차례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체육관을 울렸던 한성지의 느긋한 목소리가 소름끼치는 울림을 만들었다. 그 목소리 이후에는, 수많은 발길질들이 포탄처럼 쏟아졌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 무기력하게 맞고만 있었다.
누가 너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변하게 했어?
대체 누가 우리 민규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걸까?
민규야...민규야, 누구야?
누가 너를 변화 시키고 있는거지?
질투 나려구해, 민규야.
발길질 보다 견디기 힘들었던건 한성지의 그 지옥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주체성 없는 꿈인에서마저도 한성지에게 감히 입을 열수가 없었다. 한성지에게 한 마디도 대들 수 없었다. 그때 조바심 나고, 미칠 듯이 불안하던 감정이 내 몸에 다시 감기는 듯 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중학생의 나였으니까.
발길질이 멎은 후에는, 한성지의 가녀린 손이 내 턱을 세게 움켜 쥐고 올렸다. 뺑뺑도는 카메라를 보는 것처럼 사정없이 떨리는 시야에 한성지의 무구한 얼굴이 담겼다. 한성지는 웃고 있었다.
민규야, 설마.
승관이 때문에 온거야?
한성지는 웃는게 참 예쁘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지독한 비린내가 난다.
-
“야! 씨발 너 나와!!”
갑자기 귀에 꽂히는 큰 소리 때문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젓가락을 자근 자근 물던 행동을 멈춘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급식소 저만치서 애들이 우르르 몰리기 시작했다. 아, 또 싸움질이네. 이 놈의 양아치 학교는 하루라도 싸움이 안 나는 날이 없다. 오늘 내내 피곤하고 멍한 기분 때문에 정신 좀 차리려고 모처럼 안 오던 급식소 까지 행세 했건만, 얌전히 밥도 못 먹는 내 인생이 기구 해지려 했다. 나는 젓가락을 탁 소리 나게 놓고, 휴대폰을 하다 말고 싸움난 쪽을 고개를 빼서 쳐다 보고 있는 이석민에게 말했다.
“야. 다 먹었으면 가자.”
“싸움 났나본데?”
“구경할거면 하고 오던지. 나 먼저 올라가 있는다.”
“근데, 저거 남뻐렁 아냐?”
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저만치를 바라 보았다. 남뻐렁이 뻐드렁니만 큰 게 아니라, 키도 멀대 같이 큰 탓에 애들 사이에서 유독 툭 튀어 나와 있는 샛노란 머리는 유독 눈에 잘 띄었다. 어, 맞네. 남뻐렁이네. 동구형 빽 믿고 프로시비러로 직업을 전향해서 오만 애들한테 시비를 다 걸고 다닌 다는 남뻐렁이 이번엔 또 누구한테 시비를 걸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이름에 헙, 했다. 남뻐렁이랑 부승관이랑 다이 뜨기로 했는데, 부승관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남뻐렁만 새 됐던 사건이 바로 어제 일이다. 그렇다면 설마...
“혹시 부승관이랑 싸우는 거 아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석민이 먼저 선수를 쳤다. 가볼래? 뒤어진 물음에 대답 대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하여간 김민규 부승관일에는 존나 관심 많아요. 그래도 뒤에서 투덜 투덜 거리는 이석민에게 법규를 날려 주는건 잊지 않았다.
싸움이 일어날랑 말랑 하는 쪽으로 가까이 오니, 오늘 메뉴로 나왔던 시래기국이 바닥에 흥건하게 흩뿌려져 있는게 보였다. 식판을 엎었구나. 나는 모여 있는 애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갔다. 그제야 흥분한 듯 샛노란 머리와 대조 되는 벌건 얼굴을 하고 씩씩거리는 남뻐렁과, 바로 앞에 식판이 뒤엎힌 채, 가민히 앉아서 남뻐렁을 무표정하게 올려 보고 있는 부승관이 보였다. 교복에는 데코처럼 반찬 국물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지져스...
“야. 씨발! 보고 있지만 말고 나오라고! 도망치지 말고 뜨자고!!”
남뻐렁이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거 좀 위험해 보이는데. 누가? 남뻐렁이. 부승관의 표정은 태풍속에 고요다. 난 저 눈빛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남뻐렁에게 명목상 나대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가라고 경고라도 해줄까 고민 하는새, 부승관이 벌떡 일어 났다. 그리고,
“악!!”
엎어진 식판을 정확히 남뻐렁의 광대에 적중 시켰다. 식판 모서리에 광대를 부딪힌 남뻐렁이 신음과 함께 두 손으로 광대를 부여 잡았다.
“따라와.”
부승관은 그 한 마디와 의자를 세게 밀어 버렸다. 부승관의 돌발 행동으로 급식소 안은 순식간에 적막으로 가득 매워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부승관은 옷을 털어 내며 모여 있는 애들 사이로 빠르게 걸어 가다가, 바로 앞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금세 떨어질 줄 알았던 시선은 한참이나 허공에서 얽혔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내게서 시선을 돌리며 나를 휑하니 지나쳐 갔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야!!”
모든 수모와 쪽팔림으로 얼굴이 아까 보다 더욱 붉어진 남뻐렁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씨발!!너 거기서! 의미 없는 말을 하며 부승관을 따라 급히 쫒아가는 녀석의 뒤를 낚아 채려 했다. 오늘은 부승관이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어제부터 계속된 과거의 여운이 있다. 그런 나에게 지금 이건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게 빠르게 녀석을 잡으려 하는 순간, 기세 좋게 걸어가던 남뻐렁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푹, 바닥으로 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낚아 채려던 손 모양 그대로 굳어서 눈만 동그랗게 떴다.
“시끄럽거든.”
“......”
“좀 닥치고 있지.”
남뻐렁을 때려 눕힌 의외의 인물은 그 사람이었다, 최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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