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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걔. 남지훈 상태는 어떻대?”
“죽사발이지. 전치 끊었다더라.”
“최승철 선배한테 완전 찍혔나보네. 최승철 선배 부승관이랑 좆나 친하잖아. 남지후이 그 새끼는 왜 괜히 깝대서...”
“야 근데 남지훈도 빽 있잖아. 동구형.”
“그럼 뭐해. 동구형은 지금 학교 안 나오고 있잖아.”
아. 잠 좀 자려고하는데. 의식 하지 않아도 자꾸만 귀에 들어 오는 심기 거슬리게 하는 말들을 모조리 부수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상을 두 손으로 쾅 내려치며 벌떡 일어섰다. 백색소음으로 덮여 있었던 교실에는 모처럼 침묵이라는 익숙한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버릇처럼 후, 짧게 앞머리에 숨을 불어 넣으며 내 자리 뒤를 매섭게 돌아 보았다. 놀란 토끼눈으로 서로 머리 맞대며 야부리 털고 있던 이름도 모르는 두 새끼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깨를 움찔거리며 대놓고 내 시선을 피했다. 중학교, 항상 가십의 중심이었던 나는 듣는 귀 무서운줄 모르고 멋대로 남에 대해 입을 놀리는 것들의 입에 두 주먹을 밀어 놓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는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충동은 지금 가십의 중심에서 어느정도 빗겨 나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 하는 지금도 건재한 듯 하다. 말 없이 자신들을 가만히 야리기만 하는 뾰족뾰족한 날카로운 시선을 애써 무시한 녀석들이 재빨리 태세를 바꾸어 묵언 수행에 들어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으며 자리에서 벗어나 교실문을 세게 열고 나가 버렸다. 나무 마찰 소리를 내며 닫힌 교실문과 함께, 숨 막히는 교실의 전경도 내 시야에서 닫혔다.
일주일 전, 일어 났던 사건은 아직도 학교 모두의 입방아에 열렬하게 오르고 있다. 최승철 선배가 남지훈을 조져버린 그 사건. 원래 부승관과 다이 뜰 생각으로 의기양양하게 좁은 어깨 넓히며 나댔던 남지훈은 갑자기 사이에 끼어 든 최승철 선배에게 그야 말로 탈수 되고 있는 빨래 마냥 영혼까지 탈탈탈 털렸다. 나는 남지훈을 저지 하기 위해 뻗었던 내 무안해진 손을 거두며 ㅇ0ㅇ!! 딱 이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그 일촉즉발 상황에 난데 없이 최승철 선배가 치고 들어온 건, 정말 내 예상 밖 범위였다. 의도 하지 않게 그 흥미로운 무대의 가장 가까운 1열 VIP 좌석에서 남지훈이 탈탈 털리고, 바닥에 널리는 꼴까지 감상하게 된 나는 실로 좀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아, 최승철 선배. 진짜 싸움 잘 하는 구나. 말만 실세가 아니었구나.
좀 닥치고 있으라는 그 한 마디로 무슨 범죄영화 최종 보스 마냥 살벌하게 등장한 최승철 선배는 머리 나쁜 남뻐렁이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부연 설명도 없이 남뻐렁의 온 몸을 고루고루에 힘을 분배하여 적절한 강도로 후려치며 발라 버렸다. 이러다가 남뻐렁 어디 하나 불구 되는건 시간 문제라는 판단이 서기 시작할때즘, 누군가 호출 한듯한 교무 부장 선생님이 급식소로 다급히 뛰어 오면서 상황은 끝났다. 그 상황은 일단 어떻게 일단락 됐지만, 그건 겨우 시발점에 불구했다. 남지훈은 그 짧은 시간만에 경한 타박상에서 부터 ~ 심각한 늑골 골절까지...너무 심하게 얻어 맞아 전치 3주를 끊고 병상에 누워버렸다. 그 모든 폭력을 가해한 행위자인, 최승철 선배의 처분은 유기정학을 먹고 일주일간 등교 정지로 이어 졌다. 사실 최승철 선배의 원래 평소행실이나, 이것 저것 인센티브 처럼 쌓인 누적 벌점들을 종학적 평가 했을때는, 사실 이만하면 퇴학 권고 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냐, 가 모두의 추측이었지만, 예상외로 처분은 미미했다. 덕분에 최승철 선배 집 안이 좀 많이 사는 터라 돈으로 막아서 그냥 일주일 정학 처분으로 그쳤다는 소문도 흉흉하게 돌고 있다.
뭐 사실, 거기까지만 문제면 어차피 남지훈, 최승철 당사자들 만의 일이니까 내가 딱히 관심없고 심란 하지도 않을테지만... 나는 머릿속을 장악 하는 온갖 복잡한 생각들을 억누르며 계단을 성큼 성큼 뛰어 내려갔다. 사실, 본격적으로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건 새로운 국면의 문제이다.
“최승철 새끼가 남 지훈을 조졌다고? 그 씨발롬이 미쳤나.”
최승철 선배의 그 돌발 행동이 잠자는 동구형의 콧털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것 참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이번주는 동네 공원에서 일어난 패싸움에 살짝 말려드는 바람에 먹었던 동구형의 2주 정학이 풀린다. 학교에 오면 가뜩이나 최승철 선배로 술렁 술렁한 학교 안에서 콧털 뽑힌 사자처럼 길길 날뛸 것 이다. 그건 내 안전한 학교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큰 문제다. 최승철, 이동구. 3학년에 있는 두 명의 실세간 싸움은, 주변인들도 분명 크든 작든 피해를 입을 것 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학교를 다니면서 둘이 직접적으로 마찰이 있었던 적은 없다. 최승철 선배는 동구형처럼 네 편, 내 편 애들 챙기면서 왕처럼 군림하여 거느리려고 하는 권위적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항상 보면 학교 안으로, 밖으로 크게 일어나는 모든 싸움에는 그 이름이 연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뚜렷한 두각을 나타낸다. 그렇다 보니 주위에서 나서서 무슨 능배물로 VS 부추기듯, 이동구VS최승철 구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도 지난 3년 간, 정작 당사자들은 각자의 구역에서만 상생하면서, 서로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때는 없었다. 서로의 강함을 알아본 암묵의 평화협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그라운드룰을 최승철 선배가 동구형의 최애 동생인 남지훈을 조지면서 보란 듯 파기했다. 무려 고등학교 졸업을 몇 개월 남겨둔 지금 이 시점에...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건대, 분명 친분이 두터운 부승관 때문이다. 그래서 더 곤란스럽다.
“최승철, 걔랑 관련된 애들 다 조진다.”
어제 동구형이 불러서 나간 술자리에, 동구형은 술을 물 처럼 콸콸 부어 마시며 거의 전쟁 엄포 놓는 위험 국가처럼 장엄하게 엄포를 놓았다. 그걸 옆에서 생생하게 들은 나는 속으로 뜨끔 뜨끔 했다. 그런 나를 아는 건지 동구형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정말 부승관이랑 안 사귀냐? 동구형은 참 할 말, 못 할말 못 가리는 새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며, 난 처음으로 형에게 데시벨을 높였다. 아, 형... 아니라니까요?! 내 격한 부정에 형은 안심한 듯 웃었다. 그 웃음은 곧 색다른 결의로 이어진다. 모든 것에 원인일수도 있는 부승관을 먼저 조지겠다는, 그런 뜻으로...말이다.
“야, 부승관.”
뛰어 온건 아니었는데, 계단을 급히 내려 오다 보니 들숨이 속 안에 아프게 파고 들었다. 나는 폐에 바람이 들어 가는 짜릿한 고통을 느끼며 한 층 밑에 위치한 2학년 3반 교실로 경계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 바로 보이는 부승관을 불렀다. 막 교실 자리에 착석하려던 녀석이 내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다. 씨발, 쟤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나는 답답한 마음을 숨기며 성큼 성큼 걸어가 녀석의 앞에 섰다. 잠깐 나와봐. 내 말에 인상을 휙 찌푸리며 육두문자를 뱉어내고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 내가 왜 나가야 하냐, 온갖 쿠사리를 다 달줄 알았던 녀석이 의외로 별 말 없이 순순히 시계를 보더니, 수업 1분 있으면 시작하는데? 이런 웃기지도 않는 말을 쏟아 냈다. 님아 개그하셈? 님이 언제부터 수업에 집중 했다고요? 허허, 비상하려는 어이를 붙잡고 나는 밖 쪽으로 고갯짓 했다. 잠깐이면 되니까 나와.
나는 우리 학교 공식 공인 흡연장소, 담 뒤로 왔다. 항상 가면 꼭 몇 담배 피우는 무리들이 후까시는 오지게 잡으며 줄 서 있는데, 다행히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고개를 휙휙 돌려 주위를 살피 다가, 정말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이내 내 뒤에 서있는 부승관에게 본론부터 꺼내며 입을 열었다.
“당분간 학교 나오지마.”
“...뭐라고?”
“내일 동구형 학교 나와.”
“...? 그게 무슨 상관인데.”
“동구형 그 싸움 이후로 너 존나 벼르고 있다고. 네 싸움에 껴들어서 최승철 선배가 남지훈 존나 털었다는거 다 아는데 그냥 두겠냐? ”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현재의 상황과 팩트를 이야기 하며 나의 뜻을 전달 하려 노력했다. 뭔 개소리? 라는 표정으로 날 보던 부승관이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내 피식 웃었다. 표정에 떠오른 웃음은 그냥 존나 어이 없어서 웃는 가벼운 웃음으로만 보였다. 나는 예전의 그 상황과 살짝 오버랩이 되는 걸 느끼며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너 동구형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내가 알 필요가 있냐?”
“아. 제발 쫌 말 한 번만 들어주라. 이번주는 최숭철 선배도 없는데 어떻게 버ㅌ...”
“김민규.”
내 일이니까 신경 꺼. 다시 바라 본 녀석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말투가 예전에 내가 느꼈던 비참함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너는 거기까지 라고 딱, 붉은 선을 긋는 듯 했던 부승관의 일관적인 태도는 그때, 나를 미치게 했다. 그리고 지금 나를 또 미치게 한다, 정말로.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경험이 있으니 짐작은 쉬이 할 수 있다. 부승관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걸. 그래서 화가 난다. 신경 끄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최근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어 했던것도 최근이다. 나는 녀석을 여전히 싫어 한다. 여전히 증오한다. 녀석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귀찮고 짜증난다.
하지만 그게 걱정 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정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씨발 새끼야. 그냥 내 말 한 번 듣고 그래, 이 한 마디 하는게, 그게 그렇게 힘들어?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부승관의 멱살을 쥐고 짤짤 털며 따박따박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내가 걱정하는 주체는 네가 아니라고. 네가 무슨 일이 나면 눈이 돌아 쌓아온 모든 공을 무너뜨려 버릴수도 있는 내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거라고. 차마 쉽사리 모든 말을 쏟아 내지는 못하고 주먹만 부들 부들 떨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던 부승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민규...제발 티나게 행동하지마.”
“......”
“너 나한테 미련 있는거 다 티나.”
참, 누가 부승관 아니랄까봐 한 방도 아주 거하게 먹인다. 반박할 말도 없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곧이어 부정하듯 그럴 리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련이 있을리가 있냐고. 어떻게 정 털리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 네게 미련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겠냐고. 근데 이상하게 반박하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부승관은 할 말 많은 표정으로 잠시간 나를 보더니, 이내 뒤돌았다.
“너한테 피해 안 줘. 이제 저번처럼 그런 추문으로도 엮일 일 없을거야.”
“......”
“그리고 앞으로는 아는 척 하지마.”
묻고 싶다. 너는 정말, 네가 정말 좆 같다는걸 아냐고. 말로는 절대 안지는데 부승관 앞에서 유독 한 방 먹는 내 자신이 언제나 그랬듯, 너무도 나약하게 느껴졌다. 빠르게 걸어 사라지는 뒷모습에서 중학교 때의 그 부승관 모습이 겹쳐보여서 더 좆같았다. 씨발, 입에서 씹 소리 오만 소리 나오네. 그래. 네가 동구형의 그 핵펀치 맞고 지구 끝으로 날아 가봐야, 죽음 직전 까지 가서 역대 인생 파노라마 한 번 스쳐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나도 이제 정말 신경 끈다. 저런 거지 같은 개소리까지 들으며 경고해 줄 필요도 없었던 문젠데, 괜히 내 마음만 조급하게 앞섰을 뿐이다. 덕분에 마음, 빈정만 상하고. 씨발...
“안녕.”
“......”
“들으려고 들었던 건 아닌데.. 익숙한 얼굴이 보이길래 와봤어. 미안해.”
속으로 부글 부글 잘 끓어 오르고 있는 분노 외의 여러 복합 감정들을 애써 식히며 나 역시도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내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꽂혔다. 나는 답지 않게 흠칫 놀랐다. 아니 목소리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느 미친년 목소리랑 똑같아서 등 뒤로 소름이 올라왔다. 설마,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설마. 설마라는 단어가 이질적이게 느껴질만큼 수많은 설마라는 글자들이 뇌를 지배 했다. 하지만, 등 뒤를 오싹하게 하는 소름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하나, 둘, 셋을 셌다. 제발 설마이길 바라며, 이제 뒤돌아 볼때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뒤돌았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눈에 담는 순간, 절로 모든 행동과 사고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깨 위에서 흩날리는 얇은 머리칼, 구김 하나 없는 단정한 교복, 순하게 내려가 있는 눈꼬리, 뽀얗고 하얀 얼굴과 웃고 있는 얍쌍한 입꼬리. 손을 모으고 바르게 정자세로 서 있던 그 역대급 썅년을 떠올리게 하는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내게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살풋- 이라는 의성어가 따라올 것만 같은 가볍고, 유약한 움직임이었다.
이거 실화냐, 꿈 이냐.
충격받은 나는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주먹만 다시 말아 쥐었다. 우리 학교의 짙은 남색 니트 조끼 위에 궁서체로 박혀 있는 이름은, 나의 모든 생각들을 부질 없게 만들기 충분했다. 죽어서도, 윤회 해서도 잊지 못할 이름이다. 씨발 한성지. 한성지년이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거지?...
“민규야, 잘 지냈지?”
“...미친....씨발...”
“나 오늘 전학 왔는데... 혹시 교무실이 어디 있는 줄 아니?”
2년 만에 다시 만난 한성지는 더욱 더 비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다음편부터는 본격적인 민규와 승관이의 불쨩한 과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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