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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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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승관과 함께 걷고 있는 중이다.아니 뭐… 부승관은 내게 설명도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최승철 선배와 빠른 인사를 받아치고는, 한손으로는 내 팔목을 아주 강하게 잡아 이끌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뇌에 인식 되기도 전에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전개는 일전에 하던 모든 생각들을 백지화 시킨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승관의 행동에 정말 눈에 띄게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대체 어찌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우왕좌왕 하다보니, 결국 최승철 선배 앞에서도 아무말 하지 못하고 부승관에게 웃긴 모양으로 이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얼마나 걸어 왔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시야에서 포이즌의 번쩍 번쩍한 간판 불빛이 사라지고 나서야 아까와는 달리 지나치게 멀쩡해진 부승관이 안심한 듯 짧은 한숨과 함께 벌레 내치듯, 내 팔목을 불쾌하게 밀어 냈다. 역시… 가관 중 최고 가관 부승관! 덕분에 나는 이마에 힘줄 박제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무리 니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개념과 예의도 국밥으로 맛있게 말아 먹었다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인지 간략하게라도 주석을 달아줘야 상호 예의 아니겠니?...…라고 생각만 했다. 사실 서로 깍듯하게 예의 차리고 자시고 할 친애넘치는 관계가 아니니까. 서로 제사상 차릴 관계면 모를까. 나는 뒤죽박죽 열 받는 속을 식히며 말을 꺼냈다.
“야.”
“……”
“넌 취한거야, 만 거야.”
“…내가 알코올 조루도 아니고 그 정도 먹고 취하겠냐?”
“……”
“넌 취한거야, 만 거야.”
“…내가 알코올 조루도 아니고 그 정도 먹고 취하겠냐?”
부승관은 아까의 흐리멍텅한 눈은 어디로 증발했는지, 등 뒤로 침을 한 번 크게 뱉으며 나보다 더 또렷한 눈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대답을 곱씹어 보던 나는 슬슬 야마가 회전하기 시작해서 목소리가 한 톤이 올라갔다. 왜 취한 척 한거냐? 너 빠져 나오는데 나는 또 왜 끼우는데? 내가 무슨 너 속 편하고자 이용해 먹는 가스활명수야?
어라… 비유가 좀 이상한게 섞였는데…?
아무튼 속 안에 있던 말을 두서없이 막 쏟아내었더니, 부승관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으며 나를 타격감 1도 없다는 무표정으로 멀뚱 멀뚱 올려다 보기만 했다. 호오, 이 새끼 봐라? 정말 여간 재수 털리는 새끼가 아니구나. 아까 이석민 말 듣고 잠시나마 동정심 들었던 거, 다~~~~ 취소다. 이석민아, 이석민아.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한테 어느 성자가 인내 할 수 있겠니? 비폭력주의자 간디선생님도 부승관을 만난다면, 자신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내면의 잔인한 폭력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증을 할 수도 있을 판인데. 나는 머리를 잡아 뜯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 늦은 시간에 날도 추운데 바람 맞고 서서 부승관이랑 입씨름이나 하면 뭐하냐. 내 수명이나 줄이는 짓이지. 그냥 집이나 가자. 그런 결단으로 부승관에게는 말도 없이 뒤돌아 가려는데, 뒤에서 날 붙잡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
“…뭐?”
“…뭐?”
내가 잘못 들은건가 생각하며 뒤돌았더니, 부승관은 조또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잘못 들은거겠지. 유아독존 부승관이 미안하다고 말을 할 리ㄱ…
“아! 미안하다고, 씨발. 한 번 말하면 잘 좀 알아쳐들어.”
있네?
나는 꽤 놀란 표정으로 부승관을 바라 보았다. 비록 미안하다는 말이 뒤에 나온 씨발이라는 욕에 과다하게 가려지긴 했지만, 이건 부승관이 내게 하는 내게 최초의 '사과'였다. 이열 웬일ㅋ 나는 이끌리듯 천천히 뒤돌았다. 그리고, 부승관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양아치라는걸 티내고 싶어서 안달난 듯한 쫙~ 예쁘게 코팅 입힌 노란물 머리에, 추위에 빨개진 작은 귀에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게 주렁 주렁 달려 있는 피어싱들. 줄인 교복 바지 주머니에 툭 튀어 나와있는 네모난 모양의 담뱃갑. 동그랗고 하얀 얼굴위에 피어 있는 숨길 수 없는 짜증과, 나에게 사과한 자신에 대한 극한 혐오를 담고 있는 듯한 잔뜩 구겨진 표정. 재수가 이리 저리 터져 나온 꼴로 얌전히 서서 나를 올려다 보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부승관은 조화로움와 비조화로움의 조화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다 죽었나, 부승관. 사과도 하고.”
“…난 너 같이 사과도 없이 도망치기만 했던 새끼랑은 다르니까.”
“…난 너 같이 사과도 없이 도망치기만 했던 새끼랑은 다르니까.”
잠깐 풀어질랑 말랑 했던 내 마음을 가시게 할 작정인지, 부승관의 입에서 나온 예상외의 대답은 머리에 외상을 입은 듯한 강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사과도 없이 도망치기만 했던 새끼? 부승관이 말하는 사과도 없이 도망치기만 했던 새끼의 주체가 나라면, 나 역시 망설임 없이 부승관을 그렇게 정의 해줄수 있겠다. 곱씹어 볼수록 어이가 없어서 입술 사이에 헛웃음이 감돌았다. 나도 모르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내리며, 그 예전을 정말 오랜만에 떠올려 보았다. 정말 하나의 사과도 없이, 어떠한 설명도 없이, 꼭꼭 숨어 버리고 일방적으로 모든걸 종쳐버린 새끼가 누구였더라? 내가 그토록 충동적이게 끌려 다녔던 양아치짓 마저 접게 했던 장본인이 누군데? 진짜 사과도 없이 도망친 새끼의 주인공은 과연 누굴까, 부승관.
“그건 너잖아.”
“……”
“피코는 좀 집어치워. 진짜 죽여버리고 싶어.”
“……”
“피코는 좀 집어치워. 진짜 죽여버리고 싶어.”
입에 붙은 말이지만 다시 한 번 못 박는다. 역시 부승관을 만나면 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부승관은 언제나 내가 정해 놓은 최소한의 마지노선도 당연하다는듯 넘어 버리니까. 그게 부승관이 의도 한 것이든, 아니든 말이다. 처음으로 맘 줬던 여자친구의 남친으로 나타나서 천하의 김민규를 바람남으로 낙인 찍고 깔아 눕히질 않나, 싸움 관둬야지! 중학교 졸업 후 모처럼 마음 새로 다잡고 결심 했더니, 나랑 같은 고등학교로 입학 해서는 초장부터 개싸움으로 평정하며 말아먹게 하지를 않나, 2학년 올라오니 이제야 좀 안정감이 생겨서 얌전히 짜져 있어야지! 기쁜 마음으로 결심했더니, 이번에는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부승관! 김민규! 두 이름이 나란히 박제 되기 까지 했다.
그때 나는 한성지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악의 근원. 한성지의 죄는 크고 많다. 그 중 가장 큰 죄는 나와 부승관을 사이에 두고 태연자약하게 바람을 피운것도 아니고, 내게 다시금 맛 볼수 없는 큰 모욕감과 상실감을 준 것도 아니다. 한성지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정말 약아빠진 간사한 수로 나와 부승관을 만나게 했다. 그건 정말 용서 받지 못할 큰 죄다. 다시는 없을 악연의 실을 올리고 베틀을 돌렸으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게 한성지의 큰 그림 이었을까? 우리 둘의 관계가 어떻게 그려질지 미리 초안을 짜놓고 계획대로 만나게 한걸까? 누구나 속을 법한 순백하고 가식적인 미소로 사람을 지하 밑바닥까지 꼴아박는 한성지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그래, 처음부터 한성지를 만나지 않았다면 부승관도 만나지 않았을텐데… 만나더라도 그냥각 중학교 대표로 다이 한 번 뜨고 시마이 할 보통의 가벼운 관계로 끝났을 것이다. 하필 엮여도 정말 더럽게 엮여서는, 끝나지도 않고 질척한 그 실을 끊지 못해 이어가고 있다. 이 상황까지 온 건 대체 누구탓일까. 1차는 한성지, 그럼 그 다음은? 잘잘못을 따져보고 싶지만, 그리 쉽사리 결론 지을 만한 문제는 아니란걸 알고 있다. 지금은 서로를 싫어 하고, 얼굴만 봐도 혐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상생하며 나눈 특수한 감정들이 부류했던 오묘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대해서는 나와, 부승관 둘 다 함구 하고 있지만. 오늘은 부승관이 먼저 시위를 당겼다.
“야, 김민규.”
아까 던진 내 직구에도 여전히 타격감 없어 보이는 부승관은 킁, 코를 훌쩍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다시 부르며 모처럼 예전 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소환 했다. 예전 생각을 하다 보니 앞에 있는 부승관에게 더욱 부아가 치밀어서 뭐, 새끼야. 퉁명스레 대꾸 해버렸다. 즉각 나온 내 대답에도 부승관은 바로 이어 말하지 않고 이번에는 아까 패딩 주머니에 처 박았었던 마스크를 꺼내며 허공에다가 마른 기침을 장렬하게 뱉었다. 아…씨발 감기. 사람은 불러 놓고, 투명인간 취급 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저 혼잣말로 중얼 중얼 하며 온갖 쓰잘머리 없는 짓거리나 해대던 부승관이 겨우 마스크 줄을 귀에 끼우며 하,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앙칼한 눈이 나를 정확히 뚫어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귀에 때려 박히도록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나 좋아하지.”
라고.
아... 이 새끼는 어쩜 하는 말 하나 하나가 다 짜증이 나지?
-
자, 이쯤까지 왔으면 과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시기는 중학교 3학년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시간은 7시 48분쯤 경, 장소는 우리 아파트 놀이터로 다시 돌아간다. 나와 부승관이 처음 만나 처음으로 싸웠던 그곳으로. 어찌하다 보니 한성지를 두고 싸우게 된 중학교 3학년의 나와 부승관은 꽤 열띤 전투를 펼쳤었다. 내 발차기 한 번에 나가리 될 줄 알았던 부승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싸움을 잘 했다. 내가 무시무시하게 발로 까버리고 얼굴에 펀치를 날려도, 무표정으로 금세 벌떡 일어나서는 덩치에 비해 꽤 큰 주먹을 이용해 내 얼굴쪽에 통타를 즉각적으로 날려 버렸다. 나도 반사신경이 좋은 편이니 가볍게 피하려고 고개를 움직여도 부승관은 아주 타격률 좋게 명중시키며 나를 심하게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와, 진짜 이런 사기캐릭이 다 있나? 셔츠에는 내가 새긴 흙발자국들을 가득 묻히고, 난발이 된 머리칼과, 입주위가 피로 범벅이 되어 가는 부승관의 꼴은 처연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기력만큼은 나처럼 하나도 딸리지 않는듯 했다. 그 덕분에 나도 모처럼 진지 해져서 한성지와 똘마니 7명이 관전하는 가운데서 전의를 불태우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제 그만.”
시간이 꽤 흘렀다는걸 알게 된건, 한성지가 싸움 저지를 시작 하고 나서였다. 고생하는구나? 한성지는 예쁜 얼굴에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 거의 반쯤 쓰러져 있다시피한 부승관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후, 숨과 함께 입안에 걸죽한 피를 모아 모래바닥에 퉤- 뱉었다. 입안에 집수 되어 있던 피들이 흙에 처박혔다. 강냉이 날아간건 아닌가. 혓바닥으로 치아를 쓸어 보았다. 다행히 멀쩡 했다.
이대로 가면 싸움에 끝이 없을 것 같았는데, 솔직히 한성지가 저지 해줘서 고맙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냥 바른중짱 대 정도중짱으로 봤을때는 확실히 부승관의 싸움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새끼는 정말 듣던대로 광라리 새끼라는걸. 나한테 그렇게 처맞고도(물론 나도 엄청 처맞았다) 꽤 멀쩡한 꼴이 었으니까. 부승관의 얼굴은 거의 죽순이 되어 있었는데, 죽은 생선 눈깔 같은 눈에 살번한 눈빛만 생생히 살아 남아서는 무감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힌 채 서있었다. 이쯤되니 누가 이긴건지 결전을 낼 수가 없다. 아니, 사실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상대방을 넉다운 시키지 못한거면, 내가 거의 졌다고 봐야 무방 한가? 그렇게 깨닫고 나니, 그제서야 온 몸이 다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 가운데 서 있던 한성지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이긴거지? 결정을 못내리겠네.”
“…내가 말했지. 애초부터 난 이제 너한테 볼 일 없으니까. 부승관이랑 잘 해 처먹으라고.”
“민규야.”
“…내가 말했지. 애초부터 난 이제 너한테 볼 일 없으니까. 부승관이랑 잘 해 처먹으라고.”
“민규야.”
한성지는 얌전히 나를 불렀다. 나는 다시 입안에 고이기 시작하는 피를 다시 한 번 뱉으며 대답했다. 뭐. 한성지는 긴 머리를 한 쪽 으로 넘기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억!”
나를 발로 까버렸다. 나는 옆구리에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에 헉 소리를 냈다. 이게 지금 무슨. 맞은 곳따 때려서 아픈건지, 아니면 한성지가 정말 이토록 세게 때린건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아니… 무슨 힘이 이렇게 세? 한성지는 웃음기가 거둬진 얼굴로 발을 들어 내 멱살을 꽉 잡아 강제로 내렸다.
“니가 뭔데 거부를 해, 니가 뭔데. 지금 나 쪽 주는거야? 내가 선택 하겠다잖아.”
“… 너 지금 농지거리하냐?”
“왜 그렇게 살벌하게 쳐다봐? 나는 때리면 안 돼?”
“… 너 지금 농지거리하냐?”
“왜 그렇게 살벌하게 쳐다봐? 나는 때리면 안 돼?”
그럼 너도 때리던가.
그 말과 함께 짝 하는 소리와 내 얼굴에 손바닥이 아주 세게 휘감겼다. 목이 절로 돌아갈 정도로 센 위력이었다. 아… 환장하겠네. 이 년은 또 왜 힘 좋고 지랄이지? 바른중은 대체 뭐하는 곳이길래. 공부는 안 가르치고 싸움만 가르치나. 어떻게 된게 무슨 만렙 찍은 빌런들 밖에 없어? 분노로 떨리기 시작하는 주먹을 꽉 쥐며 한성지의 손을 거칠게 잡아떼고 애써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조절하려 노력했다. 오늘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날이다. 김민규 역사상 가장 최악의 날. 내 역사상 가장 많이 맞았고, 내 역사상 처음으로 바람도 맞았고, 여자에게서 다시는 없을 굴욕도 남겼다. 내 인생에서 과감히 찢어 버리고 싶은 페이지랄까.
“누구를 선택할지는 좀 더 고민하고 말해줄게. 승관아 수고 많았어, 민규도. 둘이 진짜 잘 싸우더라. 난 엄마한테 전화와서 이만 먼저 가볼게. 승관아, 안녕! 민규야 연락할게.”
한성지 저 싸패는 아까 정색하던 얼굴에서 금세 또 원래 페이스로 돌아와서는, 헤실 헤헤 웃으며 또 골 때리는 발언을 던지며 7명의 따가리들과 함께 인사를 고했다. 아니, 나는 너한테 관심 없다고! 자꾸만 나도 걸고 넘어지는게 빡쳐서 버럭 외쳤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듯 무리들과 그런 나를 마음껏 비웃으며 여왕처럼 사라졌다. 그년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 나는 정말 어마무시할 정도로 희대의 미친년이랑 사귀었구나.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고 좋아 했던 내 죄가 이렇게나 크구나. 이쯤되니 정말 소름이 돋으려고 했다.
“넌 어떻게 저런 미친년이랑 사귀고 있냐?”
한성지와 똘마니 7명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남은건 한성지가 남겨 두고간 꼭두가시가 되어 버린 나와, 부승관 뿐이었다. 나는 옷에 들러 붙어 있는 모래들을 손으로 털어내며 부승관을 흘끔 보았다. 아까보다는 많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어느새 모랫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녀석이 피떡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보았다. 나도 만신창이 겠지만, 또 이 녀석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니 내가 때려놓고 왜 마음 한 구석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건 다 저 새끼가 너무 애새끼처럼 생겨 먹은 탓이고.
“호구는 너네, 부승관.”
단언컨대, 한성지는 절대 부승관을 좋아 하지 않는다. 눈치가 없는 내가 단편적인 부분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 였으니까. 한성지는 그저 부승관의 여친 명목으로 붙어 다니면서 남친 싸움이나 불 붙이고 있는 불난집 기름 역할이나 충실하게 하고 있을 뿐이지. 명색이 바른중 광라리라는 새끼가 꼴빠지게 사고치는 여친 옆을 졸졸 따라 다니며 호구 짓이나 하고 있다니. 누가 봐도 정말 한심한 꼴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그걸 몰라?”
“뭐?”
“누가 호구란거 모르겠냐고.”
“뭐?”
“누가 호구란거 모르겠냐고.”
앉아 있던 부승관이 천천히 옷을 털며 일어섰다. 나는 행동을 멈추고 녀석을 바라 보았다. 일어선 부승관은 살짝 절뚝 절뚝 거리는 다리를 끌며 바로 내 앞에 섰다. 가까이서 다시 보니, 내가 때렸지만 정말 심하게도 얻어 맞았다. 나름 얼굴은 피해서 때린건데… 아, 뭐냐. 초등학교 갓 졸업한 어린이를 박살 낸듯한 이 찝찝한 기분과 죄책감은. 나는 일부러 나를 보는 녀석의 눈을 피했다. 한참을 나를 쳐다보던 녀석이 이내 입을 열었다.
“뭐해? 아직 싸움 안 끝났잖아.”
“아니. 끝났는데? 누가봐도 내가 이겼잖아.”
“씨발놈이 입 터는거 봐라. 내가 졌다고 인정을 안 했는데.”
“니가 좋아 죽는 한성지 때문에 그 지랄이면 차라리 내가 진 걸로 쳐. 난 이제 한성지 볼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아니. 끝났는데? 누가봐도 내가 이겼잖아.”
“씨발놈이 입 터는거 봐라. 내가 졌다고 인정을 안 했는데.”
“니가 좋아 죽는 한성지 때문에 그 지랄이면 차라리 내가 진 걸로 쳐. 난 이제 한성지 볼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이건 내 진심이다. 난 앞으로 정말 한성지의 'ㅎ'만 들어도 치가 떨릴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년에게 지금껏 홀라당 속아서 여기 까지 오게된건지, 이건 정말 신의 농간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억울해서 지금 세상 다 때려 부수고 싶은데, 내 초월한 인내심으로 애써 감내하고 있는거다.
성지도 포기한다고 거듭 강조 했고, 그쯤에서 멈출 줄 알았던 부승관이 내 말에 다시 토를 달았다.
“웃기지마. 성지는 성지고, 승부는 승부지.”
“아, 이 새끼 체면은 드럽게 챙기네. 내가 진 걸로 하라니까? 이제 더는 못 싸워.”
“넌 가오도 없냐? 도망치지마.”
“…너 진짜 죽고 싶은거지.”
“아, 이 새끼 체면은 드럽게 챙기네. 내가 진 걸로 하라니까? 이제 더는 못 싸워.”
“넌 가오도 없냐? 도망치지마.”
“…너 진짜 죽고 싶은거지.”
내가 뚜들 맞은곳도 욱씬거리고, 이 이상 더 꼴이 피죽이 돼서 가면 부모님이 2차로 날 죽이러 들것 같아서 더욱 참고 있었는데... 부승관은 정말 끝장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그 정도 정성인데 또 김민규가 외면하면 예의가 아니지. 다시는 광라리라고 부르지도 못할 정도로 끝까지 밟아줘야지. 나는 다시 한 번 침을 뱉고 숨을 들이켰다. 뭐. 아직은 좀 더 싸울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럼 싸ㅇ…”
“치킨게임이야.”
“뭐?”
“치킨게임이야.”
“뭐?”
승부는 치킨게임이라고.
부승관의 말에 나는 이해 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바라 보았다. 치킨게임이 뭔데? 그렇게 되묻기도 전에 부승관이 입을 열었다.
“먼저 내빼는 사람이 지는거다. 알겠냐?”
무슨 소리야?
그 순간, 부승관이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기습했다. 쌍놈쌍년 남친 여친은 둘 다 쌍으로 옆구리만 공격해댄다. 부승관은 갑자기 들어온 공격에 허리를 살짝 굽히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내 얼굴을 어렵지 않게 한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아, 씨발 더럽게 치사한 새끼네, 이거. 치사하게 사람 혼 빼두고 난 뒤에 수 쓰고. 내가 다시 손을 들고 그대로 부승관을 내리치려는 순간, 나는 내리치려는 그 행동 그대로 동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처음에는 뭔가 몰캉하고 끈적한 무언가가 입술에 닿길래 한 5초 간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이게 뭐지? 이게 뭘까. 전쟁터가 따로 없었던 내용물이 썰물 밀려가듯 다 빠지고 비워진 머릿속이 쉽사리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을때, 입술에만 닿아있던 무언가가 내 입술새를 가르고 기술을 선보이며 현란하게 들어 왔다. 그제서야 나는 눈이 커졌다. 나는 지금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랑? 오늘 초멘인,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너죽나죽 하며 졸라 개싸움 해댔던 그 광라리 부승관이랑. 적나라하게 들어오는 비릿한 피맛이 잔뜩 섞인 혀를 느끼며 그제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허공을 부유하던 손으로 부승관의 가슴팍을 세게 밀쳤다. 아주 쉽게 떨어져나간 부승관은 그런 짓을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씨발…”
정말 씨발 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나는 입안에 감도는 온갖 육두문자들을 중구난방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일단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서 존나 패줘야 분이 풀릴 것 같은데,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그럴 기력 조차도 생기지 않았다. 정말 내가 상상하는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예측 불가의 돌발행동 이었기 때문에.
“내빼면 진다고 했잖아.”
겁쟁이 새끼.
경멸하듯 입꼬리를 올려 웃는 녀석의 얼굴 위로는 쌩쌩한 찬바람이 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부승관의 눈에서는 한 두방울씩, 피도 아닌 것이 저의 존재를 알리며 뚝뚝 처량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그저 멍히 바라봤을 뿐이다. 지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 야기된 혼란을 단숨에 잠재우는건 싸늘하게 식은 채로 떨궈지는 녀석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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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성지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악의 근원. 한성지의 죄는 크고 많다. 그 중 가장 큰 죄는 나와 부승관을 사이에 두고 태연자약하게 바람을 피운것도 아니고, 내게 다시금 맛 볼수 없는 큰 모욕감과 상실감을 준 것도 아니다. 한성지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정말 약아빠진 간사한 수로 나와 부승관을 만나게 했다. 그건 정말 용서 받지 못할 큰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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