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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씹냐?”
잠시 과거를 회상하고 생각에 잠겨 돌아보고 있었더니,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멍 때리고 있었나 보다. 중학교 3학년 양아치 부승관이 고등학교 2학년 양아치 부승관으로 순식간에 변해서는 나를 벌레 씹은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현실로 빠르게 컴백했다. 지나치게 기나긴 침묵은 자칫하면 상대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건 정말 진심으로 사절하고 싶다. 그래서, 아까 부승관이 한 질문이 정확하게 뭐 였더라? 뭐? 아직도 자기 좋아하냐고? 그건 또 무슨 양심에 털 숭숭 난 소리인지? 대답할 가치 또한 없는 물음이니,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와 상응하게 대답했다.
“지랄.”
“……”
“네가 객관적으로 생각 해봐. 너 같은 새끼 좋아하게 생겼는지.”
애초에 너 좋아한 적 자체가 없는데.
라는 아주 정 없고, 단호한 부정의 말도 이 기세를 타서 목구멍을 타고 질척하게 올라왔지만, 이상하게 그걸 속 시원하게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 말 까지 해줘야 저 '오만' 이라는 단어의 인간화, 그 자체인 부승관을 더 확실히 맥일 수 있는데. 역시나 고단수 부승관이 입 밖으로 낸 질문은 정말 영악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통제하는 묘한 술수를 부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 재회 하고, 한 번도 입에 거론한 적 없었던 과거를 과감하게 베이스로 깔고 들어간 오만 방자한 질문을 저딴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옜다, 하고 던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과거를 부정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도록. 아주 계략 적인 놈이 아닐 수 없다.
……흠, 사실 부승관 성격상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계산 없이 머리에서 나온 질문일 가능성도 있다지만, 어느 쪽이든 일단 말을 꺼낸 부승관 쪽의 실이라는 거. 그건 팩트.
내 대답에 부승관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재는 행동이겠지. 그래, 마음껏 재 봐라, 속을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 이 늦은 오밤중에 사내 둘이 서서는 무슨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기꺼이 응해줄 수 있다. 예전의 나와는 다르다. 부승관 이름 하나에 날리고 있던 주먹도 무기력하게 멈추고, 가오 없게 더러운 성질 참아가며 빌빌 기고 살았던 과거의 그 순정마초 김민규가 아니라는 거다.
“……아, 씨발.”
의외로 우리 둘 사이 경계서린 침묵을 깬 건 부승관의 벨 소리였다. 주인을 똑 닮은 단조로운 벨 소리가 아까부터 주위보다 더 싸늘한 온도로 직선 하향하고 있는 둘 사이 공간을 가르며 이질적으로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나를 보고 있던 부승관은 나에게서 천천히 눈을 떼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이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무채색에서 떠오른 짜증스러운 표정만 봐도 별로 달갑지 않은 좆같은 새끼한테 전화 왔다는 짐작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몇 시지?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이석민 입 털기 한 번에 넘어가서 왔다가 대체 이게 무슨 우스운 꼴인지……. 내일 당장 이석민부터 조지던가 해야지. 나 역시도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 했다. 더 늦으면 최근 들어 감시가 심해진 부모님이 나를 반 시체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다.
“전화 안 받냐?”
내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휴대폰을 꺼내고 나서도, 부승관의 벨 소리는 끊어짐 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어째 벨소리가 내 알람 소리랑 동일한 휴대폰 내장음이라 그런지 괜스레 거슬리고, 울컥 이유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에 한 마디 했더니, 유구무언으로 묵묵히 액정만 바라보고 있던 부승관이 고개를 치켜 올렸다.
“왜, 누군데.”
대꾸도 없이 고민이 심화된 표정으로 휴대폰만 든 채, 어찌할 줄 모르는 부승관의 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자체 검수 없는 꽤 오지랖 넓은 질문이 반짝 튀어 나와 버렸다. 물론 곧바로 지금 내 위치에서 너무도 비약적인 질문이 나갔다는 생각이 머리를 장악했지만. 부승관은 역시나 내 오지랖 넓은 질문에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끝내 받지 않은 전화는 장렬하게 울려 퍼지던 벨소리와 함께 뚝, 끊어졌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부승관은 누구 보다 빠르게 기기 옆에 위치한 전원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전원을 꺼버렸다. 나는 고개를 살짝 빼서 부승관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부재중 표시가 딱지처럼 붙어 있던 화면이 순식간에 암전되며 통신사 로고와 함께 꺼졌다.
부재중……. 부재중……. 나는 방금 얼핏 훔쳐보았던 부재중으로 띄워져 있던 낯설지 않은 이름을 생각했다.
“……나 집 못 들어가.”
내가 한 질문에는 사람 무안하게 입 벙긋 조차 해주지 않더니 부승관은 휴대폰을 끄고 난 뒤, 참으로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왜? 또 의식 없이 물었는데, 이번 역시도 부승관은 개무시를 시전하며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자기 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아니…… 진짜 저 새끼는 존나 지 말만 하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경청 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저 싹수없는 새끼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갱생 되는 거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과 함께 곧 바로 대답했다
“집 못 들어가면 어쩌라고?”
“일단 됐고. 돈 좀 빌려줘.”
부승관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내가 오래 전, 내 마음 한 구석에 매장해버린 괴팍한 파괴본능까지 각성 하려고 든다. 음, 나한테 돈을 빌리려 하는 저 뻔뻔스러운 생각의 뉴클리어는 어디지? 어떻게 하면 저런 철면피 같은 행동으로 살아가면서 어디 사지하나 안 찢기고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지?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다른 고차원적으로 재수탱 없는 부승관의 이데올로기는 정부적으로 접근해서 제제할 필요가 있다. 누가 전문가 좀 소환해서 저 사고방식 좀 정신병으로 분류 해주라. 저거 그냥 방치하면 이 사회가 본질적으로 썩어 들어간다니까? 얼탱 없는 내 마음을 여실히 표현하며 경악한 표정으로 그냥 부승관을 멍히 바라보기만 했더니, 부승관은 짜증스러운 말투로 한 마디 덧 붙였다. 아, 걍 빌려달라고. 이자 쳐서 갚을게.
“이자고, 지랄이고요. 씨발, 난 지금 너의 그 졸렬함과 뻔뻔함에 기립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안 빌려 줄 거면 그냥 좀 꺼져주라.”
아……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하나님……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야 너 이번에도 묻는 말대답 안하면, 진짜 그 자리에서 벼락죽음으로 임종 칠 줄 알아라.”
“뭐라냐? 내가 왜? 너 말에는 대답 안 할 거니까 좀 꺼지라고.”
“말해. 집에 왜 못 들어가는지.”
아, 드럽게도 구질구질한 새끼. 니가 내 애인이세요? ㅆ바; 졸라 집착 쩔어가지고 새끼가 가오는 또 오지게 잡네. 가오리 멀대같은 새끼가
내 질문에 진저리를 치며 온갖 새끼를 다 소환해대며 나를 원 없이 까던 부승관이 이내 질렸다는 듯, 그 끝에 결국 내가 원하는 대답을 뱉었다.
“가면 귀찮아져.”
“왜 귀찮아지는데?”
“님아 그만하시고요. 돈 안 빌릴 테니까 님도 집에나 처 들어가시라고요.”
“너 아까 전화 온 거.”
“님아, 쫌!!”
“아까 전화 온 거. 최승철 선배 아냐?”
드디어 의표를 찔렸다. 부승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내 말에 한참을 멍하니 나를 보던 부승관이 무어라 입을 벙긋 거렸다. 입만 벙긋하지, 말소리는 나오지 않아서 지금 부승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아까 휴대폰 꺼지기 전에 부재중 표시에 떠 있는 이름을 보았다. 딱 정확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부재중 전화 1통, 발신자는 최승철 선배. 양쪽 시력 2.0 을 찍는 내 눈에 들어왔으니, 거의 확실하다. 훔쳐 볼 의도가 있었냐고? 응 훔쳐 볼 의도 있었다. 그래도 부승관이 왜 집에 못 들어가는지 이유만 잘 설명 해줬어도 그냥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아까 술 진탕 같이 먹은, 그것도 선배 놈이 또 전화 와서 자신을 찾으면 나 같아도 졸라 진절머리 날 것 같으니까. 동구 형으로 비유하며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전화를 안 받은 그 이유는 나도 충분히 이해한단 말이다. 근데 내가 진짜 궁금한 건, 왜 최승철 선배한테 온 그 전화가 끊기자마자, 안절부절못하며 집에 못 들어간다는 이상한 소리만 늘어 놓는 건지. 나는 그게 궁금해. 부승관. 부승관은 멍한 표정을 점차 지워갔다.
“……김민규 예나 지금이나 졸라 집착하네.”
“내가 또 궁금한 건 못 참아서.”
“이래놓고? 이래놓고 나 안 좋아한다고?”
“어느 똘추가 호기심이랑 좋아하는 감정이랑 동일 선상으로 보는 거지?”
“……그 형은 집 보내 놓고도 또 3차 가서 술 먹자고 꼬신단 말이야.”
아까 복화술 버금가는 스킬로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다급하게 자기 데리고 나가 달라고 했던 부승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서 였나? 좀 석연찮은 점은 있지만 일단 납득했다. 그럼 집에서 모르는 척 자면 되지. 집에는 왜 안 들어 가겠다는 건데? 내 질문에 부승관은 하, 긴 한숨을 내뱉었다. 누가 봐도 대답하기 싫은 표정이었다.
“가끔 집 앞 까지도 찾아와서 그래. 그래서 숙박업소라도 가 있으려는 거니까 돈 좀 빌려줘. 이제 됐냐?”
집 앞까지 찾아온다고? 그 형도 여간 집착 하는 게 아니구나. 아까 부승관 부축 해줄 때도 좀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했다. 나랑 이야기 할 때도 웃는 호랑이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좀. 확실히 피부로 느껴지는 포스가 있었다. 거기다가 집착까지 더 해지면, 어우 각 나온다.
“어디 있을 건데.”
“이 새끼 진짜 왜 이래?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고.”
“아니 미짜 신분으로 이 밤에 어디 가서 있을 거냐고. 신문 펴고 노숙이라도 할 거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손님 없는 숙박업소 하나 작정하고 뚫어서 중딩때 허구한 날 제 집 드나들 듯 다녔던 내가 이런 교과서적인 말이나 하고 있으니 새삼 좀 소름이 돋았다. 씨발 방금 친 멘트 클라스만 보면 나 세상 평범한 학생이네? 나의 변화를 다시 한 번 확연히 느꼈다. 부승관은 내 후진 멘트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더러운 멘트는 뭐냐? 꼭 니가 재워주기라도 할 것처럼 입 터네?”
“아. 그럼 그렇게 하던지.”
“뭐?”
“차라리 우리 집에서 자고 가던지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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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서 있는 엄마 때문에 심장이 저 밑으로 떨어질 뻔 했다. 아, 엄마 쫌!! 내가 짜증을 낼 구색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는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 준비를 했다. 내가 이 더러운 성질을 어디서 물려받았냐 하면, 엄마 70% + 아빠 30% 이다. 젊을 때 한 가닥 하셨다던 엄마는 아직도 아빠보다 우세하게 파이터 본능이 살아 있다. 내가 예전부터 눈치 보는 날라리 였던 이유의 절반이 나보다 더 한 성깔 하시는 부모님의 덕분이었다. 물려받은 유전자와 내 천부적인 본능으로 양아치 짓은 어찌저찌 해야 겠고, 화내는 부모님은 무섭고……그런?
엄마가 잔소리 폭격을 개시하기 위해 김민……! 까지 외치자마자, 내 뒤를 따라 들어온 부승관이 좁은 현관에서 내 옆으로 비켜서며 엄마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엄마는 열려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누구냐고 묻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음 뭐라 설명해야 하지. 바른중광라리? 정도고일찐쨩? 싹노새끼?(싹수 노란) 엄마 아들 처음으로 전치 끊게 일조한 주인공?
“민규 친구 부승관이라고 합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며 부승관을 바라보았다. 예? 친구요?? 그런 전례 없는 개소리를 내뱉은 사람치고는 부승관은 꽤 여유 있게 웃고 있기 까지 했다. 실로 내가 내 두 눈으로는 거의 볼 수 없는 부승관의 웃는 얼굴이었다. 엄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래; 어정쩡한 대답을 하셨다. 여기서 부승관의 외향 덕을 본다. 거듭 말하지만, 부승관은 얼굴만 보면 최고 평범한 놈이니까. 동글하고 제법 쫌 귀엽게 생겨 먹어서는, 평범하다 못해 순수한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어디까지나 껍데기 하나는 기가 막히다. 위장 전술 중 하나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 애가 작정하고 착한 척 웃으며 예의 바른 척을 시전 하니 아까 나랑 우리 집에 가니, 마니 20분 동안 길거리에서 부터 바로 우리 아파트 입구 앞까지 설전하며 바락 바락 싸웠던 그 광라리 부승관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게다가,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고딩 같지도 않은 우락부락한 새끼들만 친구라고 데리고 오다가, 좀 평범해 보이는 부승관을 데리고 오니 엄마 표정도 한결 누그러져 보였다.
“엄마, 이 새ㄲ……아니, 승관이랑 놀다가 좀 늦어져서. 오늘 하루만 이 새ㄲ……아니 승관이 좀 재울게.”
마음대로 해. 호랑이 같은 엄마의 승낙이 결국 떨어졌다. 말 한마디 내 뱉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나는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승관에게 눈짓 했다. 부승관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신발을 가지런히 벗었다. 야, 술 냄새 좀 나니까 엄마랑 좀 떨어져서 들어가. 아까 문 열고 들어가기 전에 충고를 해주었더니, 말도 잘 듣고 야무지게 엄마가 서 있는 쪽이랑은 삥 둘러서 들어왔다. 그제야 안심한 나 역시도 신발을 벗고 먼저 앞서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부승관도 따라 들어왔다.
“내가 안 온다고 했지.”
“잘 넘어 갔잖아.”
“아, 좆같아.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방에 들어오자마자 표정이 썩어 버린 부승관은 입고 있던 패딩을 마스크와 함께 벗어 던졌다. 현타가 오지는 얼굴인 것 보니 자신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어리둥절하다. 내가 대체 왜 부승관을 끌고 온 거지…….? 우리 아파트 다와갈때즘에 정신이 퍼뜩 들었지만, 싫다는 새끼 회유하고 꼬셔서 이미 바로 앞까지 와버린 터라 결국 오기 때문에 밀어 붙여 버렸다. 나는 옷장 문을 벌컥 열었다.
“좆만이 한테 맞는 옷 없는데. 이거라도 입어라.”
추리닝 긴 바지들은 부승관 체격에 맞을 리 만무하고. 중학교 때 입었던 체육복 하복 반바지랑 반팔을 대충 던져주었다. 저것도 엄청 클 것 같지만. 부승관은 똥 씹은 표정으로 구리기로는 둘째가라 하면 서러운 정도중 샛노란 체육복을 쳐다보았다. 나는 부승관의 패딩을 밀어버리고 바닥에 여름용 이불을 깔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부승관이 말했다.
“니가 바닥에서 자.”
“그게 니가 할 소리는 아닌데?”
“딱딱한 곳에서 못 자.”
그럼 너네 집으로 꺼져, 씨밸롬아!
라고 외치기에는 거의 내가 끌고 오다 시피 해서 좀 민망하니 참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으유 씨발 씨발 데리고 온 내가 죄다. 나를 다독이며 고개를 대충 끄덕여주었다. 2년 전부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 부동 1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부승관을 대체 무슨 고집으로 집까지 데리고 온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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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승관이 먼저 씻으러 갔다 오고, 그 후에 나도 씻고 왔더니 부승관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야, 자냐? 들고 온 수건을 저만치 밀어 버리며 물었더니 부승관은 눈을 감은 채 대답 했다. 아니.
“안자고 뭐하냐?”
“생각.”
무슨 생각이냐고 물으면 넌 오늘 왜이리 나한테 궁금한 게 많지? 하며 졸라 비꼴게 뻔 하니 그냥 묻지 않았다. 불 끈다. 내 말에 부승관은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나는 스위치를 누르고 어둠 속에서 엉긍 엉금 딱딱한 바닥에 이불을 찾아 누웠다. 이 무슨 처량한 신세인가. 주인은 차가운 바닥신세, 손님 명분으로 온 새끼는 주저 없이 침대를 뺏어 안락하게 누워있고…… 나는 바닥에 내 긴 다리를 접고 멀뚱멀뚱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간도 꽤 됐는데 어쩐지 잠은 오지 않는다. 나는 부승관이 누워 있는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나를 등지고 누운 작은 뒷모습이 보니, 새삼 예전 생각이 흘러 들어왔다. 중학생때는 부승관이 우리 집에 자주 왔었다.
“부승관.”
“…….나 잔다. 말 걸지 마라.”
“재워주니까 보답 하나 해.”
“싫다는 사람 끌고 온 게 누군데.”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만 해주면 돼. 하나만 질문 할 거야.”
작은 뒷모습은 말이 없었다. 설마…… 너 씹고 자는 거니? 상체를 살짝 들어서 동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이내 작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하나만 물어라.”
저 쪼만한 새끼는 왜 뭐만 하면 명령조로 말하지? 절로 드는 불만을 삼키며 나는 생각을 정리 했다. 사실, 부승관에게 정말 궁금 했던 게 하나 있다. 재회 하자마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한데, 사이가 워낙 개떡 같다보니 물어 보지는 못했다. 부승관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문제니까. 잠시 잠잠 했던 궁금증이 또 불쑥 들이민 이유는 부승관이 오늘, 나한테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위를 먼저 당긴 건 부승관이라는 거다.
“아직도 한성지 좋아하냐?”
난 부승관과 한성지의 정확한 끝을 모른다. 그냥 그때 중학교 3학년 2학기 그 사건 이후, 사이가 갈라 섰다는 것만 알고 있지.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왜냐면, 부승관은
“응.”
“......”
“존나게 좋아해.”
한성지를 정말 사랑했으니까.
“……”
“네가 객관적으로 생각 해봐. 너 같은 새끼 좋아하게 생겼는지.”
애초에 너 좋아한 적 자체가 없는데.
라는 아주 정 없고, 단호한 부정의 말도 이 기세를 타서 목구멍을 타고 질척하게 올라왔지만, 이상하게 그걸 속 시원하게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 말 까지 해줘야 저 '오만' 이라는 단어의 인간화, 그 자체인 부승관을 더 확실히 맥일 수 있는데. 역시나 고단수 부승관이 입 밖으로 낸 질문은 정말 영악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통제하는 묘한 술수를 부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 재회 하고, 한 번도 입에 거론한 적 없었던 과거를 과감하게 베이스로 깔고 들어간 오만 방자한 질문을 저딴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옜다, 하고 던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과거를 부정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도록. 아주 계략 적인 놈이 아닐 수 없다.
……흠, 사실 부승관 성격상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계산 없이 머리에서 나온 질문일 가능성도 있다지만, 어느 쪽이든 일단 말을 꺼낸 부승관 쪽의 실이라는 거. 그건 팩트.
내 대답에 부승관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재는 행동이겠지. 그래, 마음껏 재 봐라, 속을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 이 늦은 오밤중에 사내 둘이 서서는 무슨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기꺼이 응해줄 수 있다. 예전의 나와는 다르다. 부승관 이름 하나에 날리고 있던 주먹도 무기력하게 멈추고, 가오 없게 더러운 성질 참아가며 빌빌 기고 살았던 과거의 그 순정마초 김민규가 아니라는 거다.
“……아, 씨발.”
의외로 우리 둘 사이 경계서린 침묵을 깬 건 부승관의 벨 소리였다. 주인을 똑 닮은 단조로운 벨 소리가 아까부터 주위보다 더 싸늘한 온도로 직선 하향하고 있는 둘 사이 공간을 가르며 이질적으로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나를 보고 있던 부승관은 나에게서 천천히 눈을 떼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이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무채색에서 떠오른 짜증스러운 표정만 봐도 별로 달갑지 않은 좆같은 새끼한테 전화 왔다는 짐작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몇 시지?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이석민 입 털기 한 번에 넘어가서 왔다가 대체 이게 무슨 우스운 꼴인지……. 내일 당장 이석민부터 조지던가 해야지. 나 역시도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 했다. 더 늦으면 최근 들어 감시가 심해진 부모님이 나를 반 시체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다.
“전화 안 받냐?”
내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휴대폰을 꺼내고 나서도, 부승관의 벨 소리는 끊어짐 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어째 벨소리가 내 알람 소리랑 동일한 휴대폰 내장음이라 그런지 괜스레 거슬리고, 울컥 이유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에 한 마디 했더니, 유구무언으로 묵묵히 액정만 바라보고 있던 부승관이 고개를 치켜 올렸다.
“왜, 누군데.”
대꾸도 없이 고민이 심화된 표정으로 휴대폰만 든 채, 어찌할 줄 모르는 부승관의 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자체 검수 없는 꽤 오지랖 넓은 질문이 반짝 튀어 나와 버렸다. 물론 곧바로 지금 내 위치에서 너무도 비약적인 질문이 나갔다는 생각이 머리를 장악했지만. 부승관은 역시나 내 오지랖 넓은 질문에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끝내 받지 않은 전화는 장렬하게 울려 퍼지던 벨소리와 함께 뚝, 끊어졌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부승관은 누구 보다 빠르게 기기 옆에 위치한 전원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전원을 꺼버렸다. 나는 고개를 살짝 빼서 부승관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부재중 표시가 딱지처럼 붙어 있던 화면이 순식간에 암전되며 통신사 로고와 함께 꺼졌다.
부재중……. 부재중……. 나는 방금 얼핏 훔쳐보았던 부재중으로 띄워져 있던 낯설지 않은 이름을 생각했다.
“……나 집 못 들어가.”
내가 한 질문에는 사람 무안하게 입 벙긋 조차 해주지 않더니 부승관은 휴대폰을 끄고 난 뒤, 참으로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왜? 또 의식 없이 물었는데, 이번 역시도 부승관은 개무시를 시전하며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자기 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아니…… 진짜 저 새끼는 존나 지 말만 하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경청 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저 싹수없는 새끼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갱생 되는 거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과 함께 곧 바로 대답했다
“집 못 들어가면 어쩌라고?”
“일단 됐고. 돈 좀 빌려줘.”
부승관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내가 오래 전, 내 마음 한 구석에 매장해버린 괴팍한 파괴본능까지 각성 하려고 든다. 음, 나한테 돈을 빌리려 하는 저 뻔뻔스러운 생각의 뉴클리어는 어디지? 어떻게 하면 저런 철면피 같은 행동으로 살아가면서 어디 사지하나 안 찢기고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지?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다른 고차원적으로 재수탱 없는 부승관의 이데올로기는 정부적으로 접근해서 제제할 필요가 있다. 누가 전문가 좀 소환해서 저 사고방식 좀 정신병으로 분류 해주라. 저거 그냥 방치하면 이 사회가 본질적으로 썩어 들어간다니까? 얼탱 없는 내 마음을 여실히 표현하며 경악한 표정으로 그냥 부승관을 멍히 바라보기만 했더니, 부승관은 짜증스러운 말투로 한 마디 덧 붙였다. 아, 걍 빌려달라고. 이자 쳐서 갚을게.
“이자고, 지랄이고요. 씨발, 난 지금 너의 그 졸렬함과 뻔뻔함에 기립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안 빌려 줄 거면 그냥 좀 꺼져주라.”
아……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하나님……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야 너 이번에도 묻는 말대답 안하면, 진짜 그 자리에서 벼락죽음으로 임종 칠 줄 알아라.”
“뭐라냐? 내가 왜? 너 말에는 대답 안 할 거니까 좀 꺼지라고.”
“말해. 집에 왜 못 들어가는지.”
아, 드럽게도 구질구질한 새끼. 니가 내 애인이세요? ㅆ바; 졸라 집착 쩔어가지고 새끼가 가오는 또 오지게 잡네. 가오리 멀대같은 새끼가
내 질문에 진저리를 치며 온갖 새끼를 다 소환해대며 나를 원 없이 까던 부승관이 이내 질렸다는 듯, 그 끝에 결국 내가 원하는 대답을 뱉었다.
“가면 귀찮아져.”
“왜 귀찮아지는데?”
“님아 그만하시고요. 돈 안 빌릴 테니까 님도 집에나 처 들어가시라고요.”
“너 아까 전화 온 거.”
“님아, 쫌!!”
“아까 전화 온 거. 최승철 선배 아냐?”
드디어 의표를 찔렸다. 부승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내 말에 한참을 멍하니 나를 보던 부승관이 무어라 입을 벙긋 거렸다. 입만 벙긋하지, 말소리는 나오지 않아서 지금 부승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아까 휴대폰 꺼지기 전에 부재중 표시에 떠 있는 이름을 보았다. 딱 정확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부재중 전화 1통, 발신자는 최승철 선배. 양쪽 시력 2.0 을 찍는 내 눈에 들어왔으니, 거의 확실하다. 훔쳐 볼 의도가 있었냐고? 응 훔쳐 볼 의도 있었다. 그래도 부승관이 왜 집에 못 들어가는지 이유만 잘 설명 해줬어도 그냥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아까 술 진탕 같이 먹은, 그것도 선배 놈이 또 전화 와서 자신을 찾으면 나 같아도 졸라 진절머리 날 것 같으니까. 동구 형으로 비유하며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전화를 안 받은 그 이유는 나도 충분히 이해한단 말이다. 근데 내가 진짜 궁금한 건, 왜 최승철 선배한테 온 그 전화가 끊기자마자, 안절부절못하며 집에 못 들어간다는 이상한 소리만 늘어 놓는 건지. 나는 그게 궁금해. 부승관. 부승관은 멍한 표정을 점차 지워갔다.
“……김민규 예나 지금이나 졸라 집착하네.”
“내가 또 궁금한 건 못 참아서.”
“이래놓고? 이래놓고 나 안 좋아한다고?”
“어느 똘추가 호기심이랑 좋아하는 감정이랑 동일 선상으로 보는 거지?”
“……그 형은 집 보내 놓고도 또 3차 가서 술 먹자고 꼬신단 말이야.”
아까 복화술 버금가는 스킬로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다급하게 자기 데리고 나가 달라고 했던 부승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서 였나? 좀 석연찮은 점은 있지만 일단 납득했다. 그럼 집에서 모르는 척 자면 되지. 집에는 왜 안 들어 가겠다는 건데? 내 질문에 부승관은 하, 긴 한숨을 내뱉었다. 누가 봐도 대답하기 싫은 표정이었다.
“가끔 집 앞 까지도 찾아와서 그래. 그래서 숙박업소라도 가 있으려는 거니까 돈 좀 빌려줘. 이제 됐냐?”
집 앞까지 찾아온다고? 그 형도 여간 집착 하는 게 아니구나. 아까 부승관 부축 해줄 때도 좀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했다. 나랑 이야기 할 때도 웃는 호랑이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좀. 확실히 피부로 느껴지는 포스가 있었다. 거기다가 집착까지 더 해지면, 어우 각 나온다.
“어디 있을 건데.”
“이 새끼 진짜 왜 이래?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고.”
“아니 미짜 신분으로 이 밤에 어디 가서 있을 거냐고. 신문 펴고 노숙이라도 할 거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손님 없는 숙박업소 하나 작정하고 뚫어서 중딩때 허구한 날 제 집 드나들 듯 다녔던 내가 이런 교과서적인 말이나 하고 있으니 새삼 좀 소름이 돋았다. 씨발 방금 친 멘트 클라스만 보면 나 세상 평범한 학생이네? 나의 변화를 다시 한 번 확연히 느꼈다. 부승관은 내 후진 멘트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더러운 멘트는 뭐냐? 꼭 니가 재워주기라도 할 것처럼 입 터네?”
“아. 그럼 그렇게 하던지.”
“뭐?”
“차라리 우리 집에서 자고 가던지 하라고.”
-
“안녕하세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서 있는 엄마 때문에 심장이 저 밑으로 떨어질 뻔 했다. 아, 엄마 쫌!! 내가 짜증을 낼 구색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는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 준비를 했다. 내가 이 더러운 성질을 어디서 물려받았냐 하면, 엄마 70% + 아빠 30% 이다. 젊을 때 한 가닥 하셨다던 엄마는 아직도 아빠보다 우세하게 파이터 본능이 살아 있다. 내가 예전부터 눈치 보는 날라리 였던 이유의 절반이 나보다 더 한 성깔 하시는 부모님의 덕분이었다. 물려받은 유전자와 내 천부적인 본능으로 양아치 짓은 어찌저찌 해야 겠고, 화내는 부모님은 무섭고……그런?
엄마가 잔소리 폭격을 개시하기 위해 김민……! 까지 외치자마자, 내 뒤를 따라 들어온 부승관이 좁은 현관에서 내 옆으로 비켜서며 엄마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엄마는 열려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누구냐고 묻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음 뭐라 설명해야 하지. 바른중광라리? 정도고일찐쨩? 싹노새끼?(싹수 노란) 엄마 아들 처음으로 전치 끊게 일조한 주인공?
“민규 친구 부승관이라고 합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며 부승관을 바라보았다. 예? 친구요?? 그런 전례 없는 개소리를 내뱉은 사람치고는 부승관은 꽤 여유 있게 웃고 있기 까지 했다. 실로 내가 내 두 눈으로는 거의 볼 수 없는 부승관의 웃는 얼굴이었다. 엄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래; 어정쩡한 대답을 하셨다. 여기서 부승관의 외향 덕을 본다. 거듭 말하지만, 부승관은 얼굴만 보면 최고 평범한 놈이니까. 동글하고 제법 쫌 귀엽게 생겨 먹어서는, 평범하다 못해 순수한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어디까지나 껍데기 하나는 기가 막히다. 위장 전술 중 하나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 애가 작정하고 착한 척 웃으며 예의 바른 척을 시전 하니 아까 나랑 우리 집에 가니, 마니 20분 동안 길거리에서 부터 바로 우리 아파트 입구 앞까지 설전하며 바락 바락 싸웠던 그 광라리 부승관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게다가,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고딩 같지도 않은 우락부락한 새끼들만 친구라고 데리고 오다가, 좀 평범해 보이는 부승관을 데리고 오니 엄마 표정도 한결 누그러져 보였다.
“엄마, 이 새ㄲ……아니, 승관이랑 놀다가 좀 늦어져서. 오늘 하루만 이 새ㄲ……아니 승관이 좀 재울게.”
마음대로 해. 호랑이 같은 엄마의 승낙이 결국 떨어졌다. 말 한마디 내 뱉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나는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승관에게 눈짓 했다. 부승관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신발을 가지런히 벗었다. 야, 술 냄새 좀 나니까 엄마랑 좀 떨어져서 들어가. 아까 문 열고 들어가기 전에 충고를 해주었더니, 말도 잘 듣고 야무지게 엄마가 서 있는 쪽이랑은 삥 둘러서 들어왔다. 그제야 안심한 나 역시도 신발을 벗고 먼저 앞서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부승관도 따라 들어왔다.
“내가 안 온다고 했지.”
“잘 넘어 갔잖아.”
“아, 좆같아.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방에 들어오자마자 표정이 썩어 버린 부승관은 입고 있던 패딩을 마스크와 함께 벗어 던졌다. 현타가 오지는 얼굴인 것 보니 자신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어리둥절하다. 내가 대체 왜 부승관을 끌고 온 거지…….? 우리 아파트 다와갈때즘에 정신이 퍼뜩 들었지만, 싫다는 새끼 회유하고 꼬셔서 이미 바로 앞까지 와버린 터라 결국 오기 때문에 밀어 붙여 버렸다. 나는 옷장 문을 벌컥 열었다.
“좆만이 한테 맞는 옷 없는데. 이거라도 입어라.”
추리닝 긴 바지들은 부승관 체격에 맞을 리 만무하고. 중학교 때 입었던 체육복 하복 반바지랑 반팔을 대충 던져주었다. 저것도 엄청 클 것 같지만. 부승관은 똥 씹은 표정으로 구리기로는 둘째가라 하면 서러운 정도중 샛노란 체육복을 쳐다보았다. 나는 부승관의 패딩을 밀어버리고 바닥에 여름용 이불을 깔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부승관이 말했다.
“니가 바닥에서 자.”
“그게 니가 할 소리는 아닌데?”
“딱딱한 곳에서 못 자.”
그럼 너네 집으로 꺼져, 씨밸롬아!
라고 외치기에는 거의 내가 끌고 오다 시피 해서 좀 민망하니 참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으유 씨발 씨발 데리고 온 내가 죄다. 나를 다독이며 고개를 대충 끄덕여주었다. 2년 전부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 부동 1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부승관을 대체 무슨 고집으로 집까지 데리고 온 건지.
-
부승관이 먼저 씻으러 갔다 오고, 그 후에 나도 씻고 왔더니 부승관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야, 자냐? 들고 온 수건을 저만치 밀어 버리며 물었더니 부승관은 눈을 감은 채 대답 했다. 아니.
“안자고 뭐하냐?”
“생각.”
무슨 생각이냐고 물으면 넌 오늘 왜이리 나한테 궁금한 게 많지? 하며 졸라 비꼴게 뻔 하니 그냥 묻지 않았다. 불 끈다. 내 말에 부승관은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나는 스위치를 누르고 어둠 속에서 엉긍 엉금 딱딱한 바닥에 이불을 찾아 누웠다. 이 무슨 처량한 신세인가. 주인은 차가운 바닥신세, 손님 명분으로 온 새끼는 주저 없이 침대를 뺏어 안락하게 누워있고…… 나는 바닥에 내 긴 다리를 접고 멀뚱멀뚱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간도 꽤 됐는데 어쩐지 잠은 오지 않는다. 나는 부승관이 누워 있는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나를 등지고 누운 작은 뒷모습이 보니, 새삼 예전 생각이 흘러 들어왔다. 중학생때는 부승관이 우리 집에 자주 왔었다.
“부승관.”
“…….나 잔다. 말 걸지 마라.”
“재워주니까 보답 하나 해.”
“싫다는 사람 끌고 온 게 누군데.”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만 해주면 돼. 하나만 질문 할 거야.”
작은 뒷모습은 말이 없었다. 설마…… 너 씹고 자는 거니? 상체를 살짝 들어서 동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이내 작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하나만 물어라.”
저 쪼만한 새끼는 왜 뭐만 하면 명령조로 말하지? 절로 드는 불만을 삼키며 나는 생각을 정리 했다. 사실, 부승관에게 정말 궁금 했던 게 하나 있다. 재회 하자마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한데, 사이가 워낙 개떡 같다보니 물어 보지는 못했다. 부승관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문제니까. 잠시 잠잠 했던 궁금증이 또 불쑥 들이민 이유는 부승관이 오늘, 나한테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위를 먼저 당긴 건 부승관이라는 거다.
“아직도 한성지 좋아하냐?”
난 부승관과 한성지의 정확한 끝을 모른다. 그냥 그때 중학교 3학년 2학기 그 사건 이후, 사이가 갈라 섰다는 것만 알고 있지.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왜냐면, 부승관은
“응.”
“......”
“존나게 좋아해.”
한성지를 정말 사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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