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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민규. 전화 좀 받아봐.
얏빠릿! 하교 후에는 피시방 가서 한 번 갈겨줘야 한다는 내 좌우명을 오늘도 빠짐없이 실천하고 있는데, 배그를 갈구고 있는 나를 툭툭 치는 기분 나쁜 손짓이 있었다. 아, 씨바 걍 끊어버려. 겜에만 온 신경과 세포를 집중한 내가 건성으로 대답했음에도 옆에 앉은 이석민은 지치지도 않는지 나를 끊임없이 재촉했다. 야! 빨리 받으라고 동구 형님이라고! 지금은 전화한 사람이 조상신이어도 수신 거부할 중요한 판이지만, 전화한 사람이 '동구 형님'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하던 게임을 art+a4를 눌러버렸다. 동구형이 덩치는 산만한데, 애석하게도 그 속은 7살 유아기 시절에 멈추어 있기 때문에 전화 한 번 안 받았다 하면 남들보다 마상을 과하게 입기 때문이다.
“아, 그 형은 왜 맨날 전화질이지? 진심 친구 없나. 졸라 귀찮게.”
끝내는 끼고 있던 헤드셋을 던져 버리고, 이석민에게 휴대폰을 받아 들며 투덜투덜했다. 이야, 님 인성 갑인 듯. 옆에서 듣고 있던 김민규전용리액션러 이석민이 의자를 잔뜩 뒤로 젖힌 채 턱을 추어올리며 한 줄 감상평을 남겨 주었다. 나는 입꼬리와 중지를 동시에 멀티로 올려 보이며 수신 버튼을 신경질적이게 눌렀다. 흠흠, 일단 목부터 가다듬고. 아아,
“아이고~ ! 우리 동구 형님 만수무강하십니까!”
아, 김민규 가식 보기 싫어서 나가 뒈지든가 해야지. 단숨에 태도가 바뀌어선 딸랑딸랑을 전개하고 있는 모습을 4D로 감상하던 이석민은 질색팔색을 하며 또 한줄 감상평을 남겨 주었다. 그 말 그대로 진심으로 꼴 보기가 싫었던 것인지, 담배 피우러 간다는 한 마디과 함께 내 롱패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을 꺼내더니, 당당하게 제 것 마냥 뽀려 갔다. 아, 이석민 손버릇 나쁜 건 어찌 고치지? 잘라 버려야 하나.
뒤. 질. 래? 소리 없는 입 모양으로 말하며 아래위로 눈을 크게 뜨고 부라렸더니, 아까 나처럼 중지 손가락을 조용히 올려주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흡연실을 향해 문워크를 선보이며 사라졌다. 아, 올해 끝나기 전까지는 저 새끼가 뽀려간 담뱃값은 다 정산 때려야 하는데. 난 통화중 인것도 잊고, 삼천포에 깊이 빠졌다.
- 어. 민규아 별일 없지
“…아, 예! 형님 덕분이죠, 뭐.”
- 너 혹시 지금 부승관 어디 있는 줄 아냐?
…예? 부승관이요? 아까 헤드셋 볼륨 사운드좀 빵빵하게 했다고 고새 귓구멍이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며 귓구멍과 동공을 동시에 확장하고 되물었다. 응 부승관. 수화기 너머에서 나오는 떨어지는 단호한 대답에, 이번에는 실종되기 일보 직전인 어이를 사방팔방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왜죠? 나랑 관계 1도 없는 금마를 왜 하필 저한테서 찾으시죠? 너무 얼척이 없어서 맥 없는 웃음을 헛,헛,헛 날렸다. 부승관을 제가 우찌압니까 형님. 저 걔랑 조또 사이 안 좋은데. 숨소리와 말소리를 4:8비율로 잘 섞어서 난 지금 졸라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이게 뭔 한강에서 강성돔 낚시 하는 소리냐? 대충 이런 뜻을 우겨 담아 말했다.
-아 모르냐? 남지훈이 너한테 전화하면 알 수도 있을 거라 하던데. 너랑 존나 각별한 사이라고.
…아, 남뻐렁 이 좆같은 새끼는 저번에 다이 떴을 때 확실히 조졌어야 했는데. 분명 요즘 정도고에 흉흉하게 떠돌고 돌고 도는 나랑 부승관 사이의 소문을 듣고 신나서 사실 마냥 동네방네 기쁨으로 전도하며 나불대고 다녔겠지. 그 과거에 그 거만한 뻐드렁니 두 짝을 미련 없이 어퍼컷으로 날려 버려야 했다. 나는 괜히 애꿎은 휴대폰만 부술 듯 세게 쥔 상태로 어금니를 맞다 물고, 애써 이성을 잃지 않은 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에이, 형님! 그럴 리가요… 근데, 부승관은 왜요?”
- 아. 오늘 남지훈이랑 뜨기로 했다는데 잠적했다고 같이 찾아 봐달라 해서.
이야, 부승관 요즘 죽었네. 쌈 앞두고 꽁무니나 빼고. 순간 속 편하게 그런 말이 반자동으로 튀어 나올 뻔했다. 아, 그렇구나. 내 미적지근하고 심드렁한 반응에 동구형은 수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침묵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여백의 시간이 길어지자,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혹시나 말입니다…. 삐진 건 아니겠지요…? 뒤늦게 나의 크나큰 미스를 눈치챈 내가 형…. 하면서 내뱉은 말에 살을 붙이려는 순간, 삐로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통화가 종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백 퍼센트다. 시발, 또 야! 또 삐졌어. 이 형!!
“웬 죽을상이야?”
담배 내를 폴폴 풍기며 자리에 다시 착석한 이석민이 내 썩어 있는 표정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아, 동구형 또 삐졌다. 자책의 의미로 키보드에 얼굴을 뭉기며 대답했다. 이석민은 또 질릴 대로 질린 표정으로 그 형은 9살이야? 왜 맨날 삐지고 지롤; 하며 나 대신 팩트 폭격을 날려주었다. 나는 대꾸없이 얼굴을 들고 힘 없이 피시방 잔여 시간을 확인했다. 죠팔, 한 시간이나 남았어. 졸라 아까운데... 아 쓰바, 다 때려 치우고 동구형 삐진 거 풀어 주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새 잠시 종료했었던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헤드셋을 찾아 끼고 있는 속 편한 이석민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후려쳤다. 난데없이 매운 손으로 세게 후려 맞은 이석민이 진심 빡친표정으로 끼려던 헤드셋을 던졌다. 괘씸죄다, 이석민.
“…아, 씨발 뒤질래? 왜 머리를 때려!!”
“야, 너는 이 형님이 고민 하는 건 관심 없음이지? 돈 없는 그지 한테 피방비 2주 연속으로 적선 해준 은인하테 할 태도야?”
“카톡으로 계좌 찍어. 내일 니가 낸 돈 싹 다 정산 때려서 오차 범위 십 원도 안 내고 입금해줌.”
“니 계산을 어떻게 믿냐 등신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 진심 어떡하냐고. 속 좁은 동구형 삐져서 내 따까리짓 안 한다 하면!”
“이야, 이 말 녹취 따서 동구형한테 고대로 옮기면 끝장나겠는데?”
“…아마 그와 동시에 내 손에 니 인생도 끝장날 거야, 석민아.”
“근데 동구 형님은 갑자기 왜 전화했대?”
이제야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의사가 생겼는지 이석민이 그나마 좀 풀린 목소리로 인심 쓰듯 물어 주었다. 몰라, 갑자기 나보고 부승관 어디 있는 줄 아느냐고 물어서. 불퉁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이석민의 눈이 휘 동그래졌다. 그 눈은 '아니 동구형마저도 너희 사일…? 이러다가 서로 민망해서라도 사귀어야 할 각 아님?'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덕에 안 그래도 좆같았던 기분이 앗싸리 더 꽁기 해지기 시작했다. 이석민 엿 까먹고 있을 생각들은 집어치우고. 부승관, 그 새끼는 왜 갑자기 신출귀몰해져서는 하나도 안 궁금한 자신의 소식을 내게 들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진심…. 노 궁금, 투머치 인포라고. 특히 지금 같이 예민하고, 흉흉한 시기에는 누군가의 입에서 같이 흘러나오는 쓸데없는 말 중 일부로도 얽히고 싶지 않은 심정인데 말이야.
“동구형은 갑자기 왜 부승관을 찾아?”
“부승관이랑 남뻐렁이랑 다이 뜨기로 했대.”
“뭐냐, 남뻐렁은 전에도 한 번 떠서 부승관이 박살 내지 않음?”
“몰라. 알 바냐.”
건성으로 대답하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9시 27분. 기록적으로 쌓여 있는 수많은 카톡들을 무시하고 동구형을 찾았다.
<우리 동구형>
프사는 모노 필터 과하게 입힌 근접 눈물 셀카, 배경은 단골 술집 이찌방사이코에서 찍은 양손에 술병 든 설정 샷. 프로필 문구는 '사나이의 가슴에 눈물 나게 하는 자, 하늘이 심판하리…' 언제봐도 혁신적인 프로필과 프사까지 감상하고 나니,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내 자신의 죄를 속죄 하고 싶어졌다. 1:1 채팅하기를 누른다. 그리고, 최대한 딸랑딸랑 방울 흔들어 보는 거다. 형님, 아까 제가 버릇없게 ᄁ…. 주책맞게 떨리는 마음과 손으로 고민 고민하며 신중하게 타자를 치고 있는데, 옆에서 그걸 방해하는 이석민의 한 마디가 들렸다.
“근데 부승관 인생도 참 불쌍하다.”
뭐? 그 새끼가 왜 불쌍해? 반색하는 내 황당한 되물음에 이석민은 이미 몸과 정신이 게임에 반쯤 파묻힌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도 중딩때 끊은 쌈질을 아직 하고 다니잖아.”
“그게 왜. 지가 일치고 다니는구먼. 내가 보기엔 걘 철이 덜 들었어.”
“지랄 쌈바. 너도 동구형 아니면 아직도 그 짓 하고 다녔을 거면서. 글고 내가 보기엔 부승관이 좀 심함.”
뭐가? 나는 동구형을 위해 열심히 타자를 치는 걸 완전히 멈추고 물었다.
아니, 진심으로 궁금하네. 대체 부승관이 왜 불쌍해? 되려 눈물 나게 불쌍한 건 오히려 내 입장이다. 한 달 전 불현듯 나타난 낙서로 인해 요즘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살고 있던 내가, 부승관의 엑스보이프렌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복귀해서 이달 화제 인물로 급부상하고 있으니까. 역시 부승관이랑 있으면 이딴 식으로 더럽게 얽힌다. 한성지 사건도 그렇고, 지금 터진 소문도 그렇고, 나랑 부승관 사이에 루머의루머의루머들도 그렇고. 서로 정말, 한치의 도움도 없고, 쌍방으로 피해만 주는 해로운 관계인데 어째서 악연도 이런 악연이 저 구실 하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정말 중학교 그 사건 이후 부승관이랑 두 번 다시 얼굴 안 보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일짱짓 손 털고 접은 것도 고등학교 때 부승관이랑 또 세력 다툼하다가 혹여라도 부딪히는 일 생길까 봐서였는데… 그런 내 피나는 노력에 찬물을 부으며 부승관은 다음 해, 나와 같은 고등학교로 입학을 했다. 처음 입학식 때 들어오는 부승관을 즉각 알아보고, 얼마나 기함을 했던지 모른다. 당장 달려가서 화장실로 끌고 가서는 씨발, 니가 이 학교에 왜 왔냐, 스토커냐? 멱살 낚아채며 물었더니, 부승관은 양손으로 내 손을 퍽 내리 치고는 살벌하게 대꾸했다.
“씨발, 지도 내신관리 좆같아서 꼴통고 입학한거면서 뭔 텃세질인지.”
……그래 잊고 있었다. 부승관도 꼴통, 나도 꼴통. 이 지역에서 갈 수 있는 고등학교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정말로 당연하고 옳은 이치였다. 왜 그걸 고려 못 했을까? 또 한 번 내 미스를 인정하고 나니 원통하고, 울분이 터져 나왔지만 별수가 없었다. 내가 자퇴를 할 수도 없고(부모님), 부승관은 자퇴할 생각이 없다(아마도). 그래. 이왕 내가 공들여 꿰매어 놓은 실밥이 풀려 버린 거, 어떻게든 최소한 그 상태 그대로라도 유지하기 위해 참아 보려 했다. 어차피 나는 날리던 과거를 지난 피땀나는 노력으로 깨끗하게 청산 했고, 고딩이 된 내게 손 뻗어올 수만 가지 시비와, 나쁜 경로의 유혹들을 대신 바리케이드 쳐 줄 꼭두각시도 세웠다(우리 동구형)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난데없이 개입한 부승관은 변수였지만, 좌우지간 서로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면 의외로 간단히 끝날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또 오산이었다.
부승관과 같은 반이 되어버렸으니까.
나와 부승관이 배정받은 1학년 4반은, 정도고등학교 역사에도 대대손손 기록 될 저승死자반으로 불리우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딩때부터 그 뿌리 깊은 명성을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삐라처럼 날리고 살던 나와 부승관이 무려 같은 반이 됐는데! 삐걱 거리는 것도 없이 그 반이 정상적으로 운영 될리가 있겠냐고. 김민규와 부승관이 있는 4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4반 소속된 죄없는 다른 애들은 항상 다른 반의 전례 없는 동정심을 한 몸에 받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동정심이 무색하지않게 매일 매일 4반 교실은 거의 전쟁터 난리 수준의 폭격과 크리 데미지를 먹어가며 황폐 됐다는 그것은 물론 팩트.
그 좁디좁은 20평 남짓한 좁은 교실 안에서 나와 부승관은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매일 맬 왕왕! 개처럼 물고, 뜯고,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보여 주며 싸웠다. 사실 매일 싸움으로 번지는 루트를 관찰하면, 늘 사소한 것부터 물꼬를 틀기 시작한다. 일단 같은 공간 안에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굉장한 불쾌감을 안겨 주기 때문에, 그냥 수업을 듣다가 정말 우연히 눈만 마주쳐도 '야, 씨발 뭘 보냐?' 하며 책상이 날아가기 일쑤고, 쉬는 시간에 교복 와이셔츠 자락만 살짝 스쳐도 '너 지금 나 쳤냐?' 하며 주먹이 날라 가는 식의 주먹구구식 언쟁과 막무가내 몸싸움이 수없이 오갔다. 그 결과가 어찌 됐느냐, 기물파손으로 말 할 것 같으면 한 달 만에 교실에 의자가 8개, 책상다리가 4번이 부러지고, 뒷문 들어오는 입구 쪽 벽 위치한 거울도 한 3번 깨졌는데, 3번 까지 깨지고 난 뒤에는, 더이상 거울을 달아 봤자 또 깨질거니 무의미 하다, 라는 아주 현명한 판단하에 더는 달지 않았다.
늘 우리 서열 싸움을 입 닫고 목격 해야 하는 애들의 스트레스는 사실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선생님이 있건 없건 시도 때도 없이 으르렁대며 싸워댔더니, '4반은 공포스러워서 수업을 할 수가 없다'라며 과목 선생님들이 4반 수업을 거부하는 기이 현상까지 발생했다. 연륜이 깊고 나이가 지긋하신 우리 담임 선생님마저도 교직 생활 20년을 했지만 이런 근본 없는 프로 싸움러들은 처음이라며 나와 부승관을 제발 다른 반으로 보내 달라고 교무부에 요청하기까지 이른다. 입학 한지 한 달이 겨우 지났을 뿐인데, 피해는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늘어나니 또 제삼자에게 피해 주는 건 지양하고자 다짐하고 있는 나의 신조가 깨진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단의 결단을 내렸다. 선생님, 저 부승관이랑 반 좀 갈라주세요. 조용히 살겠습니다. 교무실 가서 열중쉬어 자세로 오랜만에 각 잡고 포부를 외쳤더니, 선생님은 놀라지도 않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승관이랑 짠 거니?”
“네?”
“오전에 승관이도 와서 너랑 똑같은 말을 하더구나. 다음 주에 반은 다시 갈라질 거다.”
부승관, 이 새끼는 가끔 보면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는다. 오전 조회 시작하기도 전에 교무실에 찾아와서 자신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한테 자꾸 피해 가는 게 싫은데, 내 얼굴이 자신의 시야가 닿는 반경 안에 있으면 재수 털려서 싸우게 되니 반을 갈라 달라 요청했단다.
너희 둘, 맨날 싸우더니 하는 행동은 똑같네. 오랜만에, 아니 사실 처음으로 날 보며 인상 구김 없이 웃으시는 선생님에 말에 나도 어색하게나마 하하, 착한 척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욕이 얼큰하게 한 사발 끓였다. 부승관은 이럴 때마저도 참 죠랄맞구나. 재수가 털려? 진짜 재수 털리는 게 누군데요.
그렇게 나는 1학년 4반 스테이, 부승관은 저 저 멀리 4반과는 층수까지 다른 1학년 8반으로 재배치를 받았다. 마침내 부승관과 떨어진 나는 선생님과 약속한 대로, 또 내가 원하는 대로 원만하고 안전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손도 안 대던 공부도 살짝, 정말 아주 살짝 발을 담가 보기 시작하고, 끊지 못한 담배 빼고는 나머지는 꽤 평범한 학생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찾아 가는 듯했다. 이제서야 느껴보는 내가 겪어 보지 못했던 일상들이 만족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동구 형님 보호 아래 지금까지 평범한 삶을 이어나갔다. 딱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물론, 지금은 벽에 적혀있던 대문짝 한 낙서 때문에 정도고 추문 주인공으로 낙점되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청산 이후 연락을 끊어버렸던 질 나쁜 새끼들도 어디서 소문을 냅다 주워 먹었는지, 민규 잘 지내느냐, 요새 광라리 부승관이랑 핑크빛 광 좀 내고 있다는 게 사실이냐, 은근히 물어보지를 않나. 모르는 새끼한테 게이 새끼라고 조롱 가득한 문자 폭탄이 오질 않나. 그 문자 보낸 사람 추적해서 맘 잡고 조지려다가, 예전으로 또다시 각성할까 봐 참았다.
과거를 되짚어 봐도, 현재에 와서도 부승관은 내게 도움 하나 주지 않는 유해한 존재. 그리고 존나 싸가지 X에, 고딩으로 와서도 매일 싸움으로 학교를 들썩거리게 하고, 양애취짓을 멈추지 못하는 한심한 놈.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런 부승관이 불쌍하다고? 나처럼 쌈질을 단번에 끊지 못하는 건 그 새끼가 타고난 싸움꾼에, 파이터 본능을 죽이지 못하는 광라리인 덕분이고. 나는 짧은 회상을 마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내 생각에 반박하듯 이석민이 중얼중얼 이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야 솔직히 까놓고 말해봐. 중딩땐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고딩때 부승관이 먼저 나서서 싸움 거는 거 봤냐? 야 너는 동구형도 동구형이지만, 얼굴이랑 덩치가 남들 깝대지 못할 만큼 생겨 먹은 덕도 보잖아. 근데 부승관은 졸라 허졉범생이에, 한 대 치면 날아갈 것처럼 생겨 먹어 가지곤 실상은 존나 세니까 애새끼들이 더 가만 안두는거라고. 알간? 부승관한테 싸움 걸어서 좆 발려도 납득 안하고 꼭 이겨 먹을때까지 들러 붙는 새끼들이 어디 한 둘 이어야지. 부승관은 너처럼 싸움 때려치우고 싶어도 타의로 못 그만 두는걸 수도 있어. 하루를 가만 안 놨두는데, 뭐.
솔직히 난 좀 불쌍하더라니까? 나 1학년 때 부승관이랑 같은 반이었잖아. 교실에 맨날 선배들이 찾아와. 그럼 걘 거기 또 가서 싸워, 같이 싸우는데 싸움은 또 오지게 잘하는 덕분에 징계는 걔 혼자 다 먹어. 가만 보면 자꾸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냥 얘 인생 자체가 불쌍하고, 지켜주고 싶은 느낌도 들고.”
“……뭐야. 너 부승관 좋아하냐? 뭐, 지켜준다고? 야 부승관은 사람을 찢어; 너는 부승관 주먹 하나에 그냥 날아갈 새끼라니까?”
“아니. 그냥 그렇다고, 새끼야. 그런 느낌도 모르냐? 사스가 공감 능력제로 최고답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땀까지 뱉은 내 말에 이석민은 헤드셋을 벗으며 진지하게 정색으로 응답했다.
뭐, 난 부승관에 대해서 처음부터 일거수일투족 아는 것도 아니었고, 걔 생각 따위는 아직도 모르겠고, 예전에 미친듯 알고 싶어했던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근데 이석민을 말을 듣고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싸움의 주도자가 부승관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야, 부승관이랑 000이랑 싸운대! 해서 팝콘 들고 구경 가보면 거의 100% 누군가가 부승관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서 일어난 싸움판이었다. 물론 이기는 게 항상 부승관 쪽이어서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 해본 적은 없는데, 아무튼 그랬다.
만약, 부승관이 정말 아직도 중학생때처럼 딜레마에서 못 빠져나와 마지 못해 싸움을 하고 있다면, 마지 못해서 광라리 짓을 아직도 하고 있다면. 그건 나 김민규도 쪼금은 가여워 해줄 수 있다. 나도 그 짱이라는 상전에 올라 꽤 오래 장기 집권을 해보았고, 그 자리를 내려놓는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귀찮고, 짜증 나는지 알거든.
“야야, 대박. 나 지금 부승관 어디 있는지 찾음.”
“뭐? 어딨대?”
“포이즌. 3학년에 최승철 선배 패거리랑 같이 한잔하고 있나 본데?”
눈물의 부승관 옹호론을 펼치던 이석민이 그새 질린 것인지 게임을 종료하고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내가 앉고 있는 의자를 급하게 잡아당기며 자신의 휴대폰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며칠 전 내가 장난으로 던지는 바람에 쩍쩍 금이 가 있는 액정 안에는, 3반에 최창근이 찍어 전송한 따끈따끈한 사진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시커먼 남자 무리가 셀 수없이 많은 초록병, 노란병들을 자랑스레 모아두고 그 주위를 둘러싸며 브이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부승관을 찾았다. 이미지로 봐서는 이 무리들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 부승관은, 거의 센터 자리를 차지해서는 반쯤 누운 채로 양손을 크로스한 브이를 하며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남뻐렁의 다이 약속 따위는 휘발 한 듯 보이는 아주 상큼 개운한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잊혔구나. 불쌍한 남뻐렁….
“팔자 좋네, 부승관. 오늘 다이 약속은 분명 잊은 듯. 아 이거 동구형한테 말해줘야 하나?”
“나 같음 말 안 해.”
“그럼 뭐 어떡하는데?”
“나 같음 포이즌 가서 부승관 납치 해가지고 동구형한테 데려다 준다. 동구형이 남뻐렁 엄청 아끼잖아. 너한테 삐졌는데 네가 부승관 찾아서 짠! 하고 데려 와주면 삐진 거 풀릴 듯. 백 퍼센트임.”
이 새끼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내가 직접 가서 암만 봐도 알코올 섭취로 평소보다 몇 배는 개새끼가 됐을 게 분명할 부승관을 동구형 앞에 데려다가 순순히 바치라고? 다시 한번 정리해서 되물었더니, 이석민은 당연한 거 아니냐, 넌 어떻게 애가 그 정도 센스도 없냐, 부승관이 무서우냐 등등 구구절절 반박할 수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득력 없이 들렸던 말이 이석민의 입 털기 하나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구형도 삐졌는데…. 삐진 거 풀려면 오래 걸릴 텐데 오늘 잠깐 개고생해서 부승관을 앞에 던져주면 정말 한 번에 풀리지 않을까?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굳게 다짐하고 입을 열었다.
“야, 포이즌이 어디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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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은 동네에서 네온사인 떡칠을 해놓은 포이즌 간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 나 최승철 선배 잘 모르는데. 어떻게 들어가서 부승관을 빼 오지? 부승관 졸라 지랄발광을 다 할 텐데. 막상 앞까지 오고 나니 좀 무모한 도전이었다는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 3학년에는 실세인 두 선배가 있다. 한 명은 동구형. 건장한 덩치와 절대 19살로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노안이 아주 큰 무기다. 싸움도 잘 하고, 모든 애들을 카리스마로 휘어잡고, 답지 않게 잔정도 많다. 나랑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밀하다. 다만, 속이 너무 좁아 잘 삐질 뿐.
그리고 또 한 명은 최승철 선배인데 일단 좌우지간 잘 생겼다. 중학교 때 배구부 주장이었다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도 배구부 주장을 하고 있다. 실력은 거의 프로급이라 대회도 나가서 상도 몇 번 받고 했다. 듣자 하니 어느 기업에 있는 소속팀에서 벌써 스카우트하려고 눈독 들인다는 말도 있고. 아무튼, 체육 하는 사람답게 힘도 좋고, 이 세계 있는 사람답지 않게 공부도 꽤 한다(꼴통고에서 잘 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냐만) 성격은 좀 냉정하고 말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딱히 눈에 띄게 모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싸울 때는 진짜 눈이 휘돈다는데…. 사실 이미 난 이 세계에 손 씻은 지 오래라 그 명성을 자세히 까진 모른다. 또 아는 거 한 가지는, 최승철 선배랑 부승관이랑 친하다는 거? 최승철 선배도 바른 중학교를 나왔다. 졸업하기 전까지는 즉, 부승관이 광라리로 막 뜨기 전까지는 바른중 짱은 최승철 선배였다. 졸업한 후 부승관이 광라리로 훅 떴고. 같은 중학교에, 같은 물에서 놀아서 그런지 둘은 꽤 친밀하다고 들었다.
사실 뒤에 도는 소문에는 둘이 크게 한 번 주먹다짐 한 번 하고 그 이후에 급속히 친해졌다는데, 뭐. 그것까지 자세히는 모르겠고. 아무튼 중요한건 동구 형이 날 아끼는 것처럼 최승철 선배도 부승관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참을 포이즌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각만 재고 있는데, 갑자기 출입구 자동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나왔다. 나는 오도카니 멈춰 서서 나온 사람이 누구인지 유심히 살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만, 덩치가 유독 작은 거로 봐서는…. 또 저 노란 머리 꼭지로 봐서는 거의 90% 일치.
“야, 부승관!!”
오예, 부승관이다. 지금처럼 부승관이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부승관의 이름을 아주 반갑게 십년지기 친구처럼 친근하게 부르며 다가갔다. 휴대폰 불빛에 잠겨 있었던 푹 숙이고 있던 얼굴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놀란 듯 번뜩 들렸다.
“뭐야.”
그제야 부승관은 나를 알아보고 끼고 있던 흰색 마스크를 벗으며 인상을 색종이 구기듯 팍 구겼다. 한눈에 봐도 짜증이 가득 차 있는 상태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건 내 알빠야? 나는 그런 거 좆도 신경 안 쓴다.
“야, 너 오늘 남뻐렁이랑 다이 뜨기로 했다며. 남뻐렁이 너 오기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어. 가자”
“…아, 그 새끼. 맨날 좆발리면서. 씨발, 나 안가. 너는 또 뭐야. 왜 온 거야? 꺼져, 좀.”
“싸움 앞두고 도망치냐? 비겁하네?”
“비겁이고, 지랄이고 좀 꺼지라구.”
손을 휘휘 저으며 날 밀어내는 부승관을 이제야 제대로 확인해보니, 확실히 좀 취기가 있어 보였다. 추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볼도 발그스레하고, 몸도 좀 비틀비틀하고, 동공도 살짝 풀려있고, 혀도 좀 꼬이는 게… 영 상태가 메롱인데? 이 상태로 싸우다간 남뻐렁도 이 새끼 이겨 먹을수 있겠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눈만 깜박였다. 솔직히 이 상태면 그냥 내가 부승관 업고 냅다 튀어서 동구형한테 갖다 놔도 되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좀 망설여졌다. 취한 애새끼를 싸움판에 데리고 가는 건 옳은 일일까. 알 수 없는 말로 짜증만 푹푹 쏟아 내며 꺼지라는 시늉을 하는 부승관을 보다가 답답함의 한숨을 푹 쉬었다. 아, 담배 말려. 이런 생각을 하기도 싫다.
“안녕.”
그냥 내버려 두고 가야겠다.
부승관을 이 상태로 데리고 가면 분명 싸움판은 남뻐렁이 우세하게 되겠지. 그래도 비겁한 짓은 안 한다. 내가 아무리 부승관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승부는 언제나 공정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동구형은 어떻게 잘 구슬려보지 뭐. 사실 내 화려한 언변이면 일주일 안에 풀 수 있다
오늘도 내 신조를 지켜낸 내게 손뼉을 치고 뒤돌았다. 그리고 미련 없이 떠나려는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인사를 건넸다. 응? 목소리에 반응해서 뒤를 도니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아까 봤던 사진 안에서 부승관 옆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선배다. 그게 누구냐면,
“김민규 맞지.”
최승철 선배요.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이 선배를 이렇게 가까이서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좀 당황해서 가오 상하게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갑자기 나온 최승철 선배를 바라보았다. 먼저 인사를 건넨 건 본인이면서, 내가 인사를 건네니 이렇다 할 대꾸도 없이 벽에 기대서서 반쯤 눈을 감고 있는 부승관의 팔목을 천천히 잡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유심히 관찰하는 나를 돌아보더니, 그제야 내 존재를 다시 눈치챈 듯 좀 난감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부승관 많이 취해 보이지.”
“…네.”
“근데, 넌 여기 웬일로 온 거야?”
그렇게 물으신다면, 싸움판 데려가려고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지금 튀어나온 최승철 선배의 묘하게 공격성이 깔린 듯한 오지는 말투를 듣고 나니, 왠지 모를 날카로운 직감이 뇌리에 강하게 파고 들어왔다. 아, 여기서 내가 노골적이게 부승관에 대한 적의를 보이면 안 되겠구나, 하는 무언가의 깨달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최대한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냥, 지나가다 승관이가 보이길래요.”
승관이가… 내가 내뱉고도 현타가 와서 우울해질 뻔했다. 부승관이 맨정신이었다면 어디서 아가리를 터느냐고 죽빵을 날렸겠지. 하지만, 다행히도 부승관은 이미 정신줄 반은 놓고 있었다. 나와 최승철 선배의 대답에도 묵묵부답 그냥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내 태연한 대답에 최승철 선배는 잡고 있던 부승관의 손목을 천천히 놓으며, 몸을 돌려서 그제야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둠에 가라앉은 칠흑 같은 머리와 조화되는 칠흑같이 검은 눈이 나를 직사로 관통해서 들어왔다. 마치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스캐닝이라도 해보겠다는 듯.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실로 위협을 받는 느낌이 피부로 느껴졌다. 난 굉장히 오랜만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느꼈지만, 애써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얘 많이 취했는데 니가 좀 데려다줄 수 있겠어?”
그렇게 짧게나마 서로 적대감을 감춘 시선들이 오가고 난 후에, 최승철 선배는 짧은 한숨을 토하더니 내게서 눈을 돌리고 부승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부승관은 천천히 눈을 뜨며 쥐고 있던 마스크를 쓰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여러분 나는 이제 사라져도 되는 부분인가요. 나는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하지. 도망갈 타이밍을 슬슬 보고 있는 내게 최승철 선배가 내 존재를 상기시키며 다시 말을 걸었다. 부승관을 데려다줄 수 있겠냐고? 난 즉시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요. 안 친해서요.”
“미안한데 나는 뒷정리 해야 해서 부탁 좀 하자. 여기서 10분 거리 XX 아파트야.”
“죄송합니다.”
길게 말 할 것도 없다. 나는 바로 선수를 치며 고개를 숙였다. 내 단호한 대응에 흠. 짧게 고민하는 내색을 비춘 선배가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 수 없지 뭐.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드디어 갈 타이밍을 잡았다. 얼른 뒤돌아서 사라지려는데, 누군가 내 소매 끝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덕분에 나는 내 긴 다리를 살짝 휘청하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뭐야, 시발. 간 떨어질 뻔했네. 놀란 가슴을 쓸어넘겼다.
“형, 그냥 민규랑 같이 갈게요. 어지러워서 지금 더는 못 있겠어요.”
내 소매를 붙잡은 건 놀랍게도 부승관이었다. 나는 놀란 눈을 숨기지 않고 부승관을 내려다보았다. 부승관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부승관의 입이 미세하게 미동했다.
닥치고 그냥 나 데리고 가겠다 말해.
조용히, 하지만 다급하게 들린 부승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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