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편/[규부] 배틀로맨스

[규부] 배틀로맨스 02

아카슈아로 2017. 12. 31. 13:22

인연이든 악연이든 모든 시작에는 만남이 있다. 부승관과의 첫 대면을 서술하려면 중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간다. 느림의 미학으로 천천히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우선 챕터 원. 중학교때의 난 어땠는가. 온갖 백해무익한 세상 근본 없는 나쁜 짓들은 다 통달한 zl존날라리였다. 사실 초딩때까지로 내려가 봐도 클라스가 다른 성질 머리와, 딴 초딩들보다 대굴통 하나는 더 큰 키, 어딜가면 오 아역배우각 아니냐~! 한 소리 듣는 핸썸한 외모의 영향으로 보통 초딩의 범주에서는 심하게 벗어나 있었고.

5학년 때 호기심에 피우기 시작한 담배가 본격적 탈선의 시발점이 되어, 내 탈선의 골은 날이 갈수록 하염없이 깊어져만 갔다. 탈선 길을 걸으며 자연스레 대놓고 일찐 자리로 승진하고 나니, 나만의 낙원! 핫플레이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후까시 오지게 잡고 침을 캭 퉤!! 뱉으며 '아, 오늘 급식 존맛탱ㅋ'  뜻도,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3무첨가 한 마디만 싸질러도 '소시지 멸치 볶음이 맛있었어? 급식소 가서 남은 반찬 있음 싸달라 할까?!' 하며 고개 조아리고 떠받들어 주는 착하고 순종적인 초딩 놈들이 있었으니까. 나는 어린 마음에 그런 내 영향력을 과시하고, 쎈 척 하는 걸 즐겼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한참은 작은 초딩들 뿐이라 난데없이 군림하기 시작한 성질 더러운 내게 함부로 대하는 애들도 없었고, 내가 제패하는 초딩들의 세상은 숙제와 축구와 노는 게 전부인, 그야말로 '어린이'들의 리그였다.

나의 본격적인 쌈박질은 초딩 6학년, 울 학교 골목 쪽에서 지나다니는 초딩 애샛기들 코찔찔 묻은 용돈과 학원비를 삥 뜯고 다니는 동네 중딩 횽아들을 조지기 위해 계획한 패싸움에서 시작한다. 쌈 좀 한다는 초딩 애샛기들이랑 학교 마치고 우르르- 몰려가서, 그릉뱅이도 아니고 찔찔하게 담배 한 대로 네 명이서 돌려 피고 있는 인생 찐따 형아들을 인정 사정 없이 싸그리 모아 뭉그러트리고 밟았다. 물론 내가 선발 선수로 날라다녔다. 초딩들한테 머릿수도 딸리고, 힘도 딸린 형들이 아, 시발 쵸딩애샛기들이 애법하네ㅠㅠ 질질 짜며 결국엔 결과에 승복 했다.
그 와중에 발차기 한 번에 옥수수가 하나가 나간 우두머리 격의 형이 의리도 없이 친구들 냅두고 냅다 튀려 하길래, 그대로 머리채 잡아서 내 앞에 무릎 꿇리고 웃으며 말했었다. 정도 중학교 다니죠? 형 저두 내년에 입학하는데. 거기서 또 마주치면 아구창 터는걸로 안 끝날 거예요. 그니까 조용히 살라고요.


아, 초딩 김민규…. 저래 세상 허세 다 떨어놓고 집에 돌아가서는 구몬학습 선생님께 숙제 밀려서 손바닥 맞았다는 게 킬링포인트.


암튼, 나름 온건하고 왕처럼 평화롭게 지냈던 초딩을 졸업하고 중학교를 입학하고 나니, 이제는 왕에서 외로운 늑대로 단숨에 역할과 상황이 역전됐다. 야, 너 쌈 점 한다며? ㅋ 방과 후 뒤뜰로 와. 싸움 꽤나 한다는 소문이 자꾸만 나도 모르는 사이 암암리에 순환하고 이 동네 저 동네 돌고 도니, 우리 학교부터 시작해서 다른 학교에서 쌈 좀 한다는 놈들이 허구한 날 다이 치자며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신발장에 가득 있어야 할 러브레터보다 다이 치자는 도전장이 압도적인 비율로 활개를 칠 정도였으니… 초딩때는 내 할거 다 하고 살라는 듯 동네에서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녀도 자유 방임하셨던 부모님이 중학교 들어올 나이 되니 간섭이 심해지기 시작해서 얌전히 짜져 있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주위와 상황이 나를 파이터로 자꾸만 회귀를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냐고? 말해지 않았는가! 중학생 때는 zl존날라리 였다고. 한 번 싸움이 들어왔다? 오케이ㅇㅋㄷㅋ 두 번 다시는 쪽팔려서 그 바닥에서 기세를 펼칠 수 없을 정도로 후드리찹찹 패주는게 나의 임무 아닌 임무 였다. 나 때문에 탈선 루트에서 반강제 빠꾸 당하고 건전한 학생 신분 루트 탄 새끼들도 세 트럭은 나올거다.

오는 싸움 안 막고, 눈에 띄는 새끼들 속 시원하게 다 패주고 다녔더니 난 중학생에 올라와서도 굳건하게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정착 기간이 1년 정도 걸렸다. 울 학교뿐만 아니라 타 학교 애들까지 시비를 걸어와서 거기에다 응수하고, 바쁘게 본의 아닌 세력 확장까지 하고 나니 1학년이 금세 끝나 있었다. 미친 듯이 쌈박질만 하고 다녔던 1학년이 종지부 끝엔, 난 노예가 되어있었다.
담배의 노예, 술의 노예, 폭주의 노예, 싸움의 노예 등등 온갖 노예 딱지를 등에 붙인 나는 중2로 올라오면서 또 신규 노예계약서 1부를 작성했다. 그것은 바로 이성의 노예.
 
바야흐로 한창 사춘기, 이성에 무지하게 관심 많을 사내의 본능이 내게도 도래했다. 그 중1 때부터 내가 자부하는 수려한 외모와 중학생 학생 주제 179를 찍은 훨칠한 키로 온갖 여자들을 거느리며 편력했지만, 본격적인 교제에 나선 건 이때부터다. 여자 중에서 일짱 먹은 예쁘장한 여자애들을 많이 꾀어서 사흘 한 번꼴로 갈아 치우고, 의자왕 삼천궁녀 부럽지 않게 흥청망청 온갖 여자를 다 만나보며 살았다. 물론 교제 기간은 일주일 가도 용할 정도로 무진장 짧았다. 사실 서로 단물만 뽑는 교제여서 관계가 만족 되면 그냥 종료 쳐버렸으니까.


그렇게 모든 백해무익한 것의 노예였던 내 일과를 대충 나열해보면 이렇다.


학교를 마치고 담벼락에 모여서 나를 따르는 패거리들이랑 침을 뱉으며 그동안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줄담배를 내리 피운다->내 구역에서 나대고 있는 새끼들을 조지거나, 겁대가리 없이 시비 거는 새끼들을 밟는다 ->졸업을 앞둔 승호 형님이 2년 간 주인 아저씨랑 짬짜미~ 야부리 털며 간신히 뚫어 놓은 술집에서 온갖 종류 술을 세팅해두고 애들 더 불러서 술을 진탕 마신다-> 그 이후엔 다른 애들이랑 노래방 가서 2차로 음주 가무 달리거나, 공원에서 알게 된 자퇴한 고딩형 두 명이랑 모여서 삼삼한 폭주를 뛰러 가고->그 이후엔 피시방 가서 밤새거나, 엄빠에게 죽을 각오를 다지며 집 들어가거나, 나 따라온 여자애들이랑 하러 가거나.
...나열하고 나니 난 정말 쓰레기였어.


그래. 너 날라리 인 건 잘 알겠구…. 그래서 부승관은 대체 언제 만나냐! 할 사람들을 위해 이제 소개하겠다. 아, 잠깐! 부승관을 소개하기 전에는 필수적으로 소개해야 할 여자애가 한 명 있다. 한성지. 이 애는 누구냐면, 여자를 3일에 한 번꼴로 갈아치웠던 내가 무려 두 달이나 교제했었던 엑스 걸프렌드 되시겠다. 얘를 왜 먼저 소개 하냐구? 들어 보면 될 일.


내가 성지를 만났을 때는 중3,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학기초 였다. 학교 마치고 옆 동네에 마실 나갔다가, 시내버스터미널 옆에 붙어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컵라면 하나를 안고 나오는 존예 여자애에게 첫눈에 꽂혀 버렸다…. 예쁜 사람은 절대 안 놓치는 내가 그 길로 당장 달려가 번호 좀 달라고 수작 좀 부렸더니, 약간 놀랐다는 듯 복잡 미묘? 한 헵- 웃는 얼굴로 번호를 찍어주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번호를 따고 며칠간 정성과 공을 들여서 자상하고 신사적인 남자로 빙의된 메소드 연기를 펼치다가(이걸 본 애색들은 야, 님 가식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급; 하며 비꼬았다) 드디어! 노력의 결실로 사귀기 시작한 나는 답지 않게 매우 달달구리한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인을 3일 한 번 갈아 치울만큼 심한 이성편력쟁이라도 내가 난생 처음 첫눈에 반한 상대한테는 그럴 수 없다. 우리 성지 정말 예뻤거든.


하얗고 뽀얀 얼굴
에, 강아지같이 동글동글 애교살이 살짝 접힌 큰 눈에, 작고 오똑한 콧날! 분홍빛 띄우는 얇고 작은 입술! 항상 묘하게 붉어져 있는 볼! 윤기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 160도 안 되는 가냘프고 마른 체격에, 어딘가 처연 해 보이고, 모성, 부성 본능 멀티 자극 가능한 분위기까지. 극강 비주얼을 가진 성지는 너무도 완벽하게 내 마음에 안착했다.  내가 성지를 얼마나 좋아했냐면 그 몇 년간 계속했던 양아치 짓도 하루아침에 때려치우고, 학교를 마치면 성지가 다니는 바른 중학교까지 꼬박꼬박 출근 도장을 찍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바른중 교문 앞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는데, 눈치 없는 바른중 애색들이 야, 오늘 김민규 여기서 짱뜨나봐! 찾아왔어! 와 김민규 실제로 보니 졸라 쌈 잘하게 생겼네...우리 짱도 한 성깔 하는데! 붙으면 어케 되지??ㄷㄷ 하며 호들갑 저들갑 육지랄 다 떨어서 나는 울희 ★성지★ 에게 혹여 피해가 갈까, 눈물을 머금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건 그만뒀다. 대신 500m 정도 떨어진 버스터미널 앞에서 오매불망 내 님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한 40분 정도 기다리면 성지가 방과 후 까지 모두 마치고 '민규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하며 토토토- 존귀 효과음이 나올 것 같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사실 내가 기존에 사귀었던 애들은 다 일찐짓하다 만난 거라 나와 비슷비슷한 애들만 만났었는데, 성지는 한~참 달랐다. 모범적인 교복 매무새, 비속어 없인 한마디도 하기 힘든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한국국립원에서 표창장은 하나 줘야할 바른말 지킴이적인 면모, 매우 따뜻하고 사려 깊은 성격. 어찌나 맘 약하구 착한지 내가 젖어 있는 버릇처럼 나쁜 행동과 말 뽐새가 나오려 하면 내 옆에서 민규야, 그러면 안돼…. 눈물 흘릴 듯 크고 촉촉한 눈으로 나를 제지했다. 이 얼마나 날개 없는 천사적 모먼트 인가! 나 같은 날라리가 사귀기에는 너무도 하이 클래스 부류 였달까? 덕분에 나도 좋은 영향을 흡수했다. 그래! 백해무익한 양아치 짓은 청산하고 성지와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되자! 그런 짱짱한 결심으로 어울려 놀던 질 나쁜 애들이랑도 무통보 거리를 두고, 숙면하는 게 전부였던 재미없는 수업에 집중하고,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모범적 행동을 했다. 내 큰 변화에 주위가 만류하며 야 니가 정도중 짱 짓을 놓음 어케?ㅠㅠ 하며 돌아오라고 회유했지만, 이미 난 성지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라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은 성지와 사귄지 두 어 달 때쯤 지났을 때 발생한다. 그 날이 유독 더 기억이 나는 게 하루 운수가 참 좋지 않았다. 등교할 때 헛발 디뎌서 가오 없이 넘어질 뻔하진 않나, 학교에서는 가만히 있었는데 내가 활개를 칠 땐 짜져있던 찌질이들이 기어오르질 않나, 책상에 넣어놨던 교과서가 없어지질 않나, 나도 있는지 몰랐던 숙제를 안 했다고 나와서 뜬금없이 손바닥 맞질 않나. 원래 본능이 꿈틀꿈틀 튀어 나올랑 말랑 하고 있을 정도로 빡이 친 상태에서, 성지를 만나기 위해 마치자마자 교문을 나가려다가 교문 앞에서 나랑 다이 치러 왔다는 다른 학교 무리한테 잡히기까지 했다. 내 앞에서 전형적인 온갖 시비로 껄렁대는 다른 학교 애들을 보며, 나는 이마에 힘줄이 솟으려는 걸 꾹 눌러 참고 말했다.


“님들아 미안한데 나 이제 싸움 안 하거든? 이 학교 짱도 관뒀음. 아! 김준용인가 뭐시긴가 걔가 이제 새로운 짱할거래. 걔 한테 가서 한 판 떠달라해. 그럼 수고!”


우주선에서~ 씹새끼들이 내려와 하! 는! 말!


“뭐야, 김민규 저 새끼 저렇게 겁 많았냐? 질 것 같으니 졸라 도망가는데? 야. 소문으로는 철근도 때려 부순다 하지 않음?”
“아, 미친? 무슨. 걍 다 허세였겠지. 내 경험상 저렇게 덩치만 큰 애들은 다 줮밥 주제, 가오만 산 호구 새끼더라. 그니까 지 분수 안 맞는 짱 자리 내려놨겠지.”


내 경험상 저렇게 덩치만 큰 애들은 다 줮밥 주저 가오만 산 호구 새끼…내 경험상 저렇게 덩치만 큰 애들은 다 줮밥 호구 새끼, 가오만 산 호구 새끼…내 경험상 저렇게 덩치만 큰 애들은 다 줮밥 호구 새끼, 가오만 산 호구 새끼…웅앵웅 어쩌고저쩌고…

나는 갈등과 고뇌를 끝낸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시간 없으니 빨리 해결하자. 속전속결! 그대로 뒤돌아서 나를 돌려 까기 바쁜 혼모노 좆밥새끼들에게 주먹을 날렸다. 갑자기 들어온 공격에 방어를 하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녀석들에게 한 방! 두 방! 세 방! 아! 한두 대는 양심상 맞아주고 무한 갈구기만 반복했다.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를 때리다 보니 삘이 좀 꽂혀서 내 스킬 풍혈 날라 차기도 해주고, 턱주가리도 좀 날려주고… 그러다 보니 세 명은 나가리 되어 운동장 모래 바닥에 퓨슉 소리를 내며 힘 없이 꺼졌다. 휴, 손을 한 번 털고 그 새끼들 앞에 침을 퉤- 뱉었다. 하교 하면서 구경하고 있던 울학교 애들이 박수 갈채를 주었다. 아, 쌤들 나오기 전에 얼른 가야지.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기려는데 나가리 되어있던 무리 중 한 명이 힘겹게 일어서더니 내 뒤에서 소리쳤다.


“바른중 한성지한테 미쳐있다는 소문 사실인가 보지? 또 한성지 보러 가냐?!”


어허, 나는 또 걸음을 멈춰서 뒤돌았다. 아, 이 새끼 진짜 글러 먹었네? 학습능력도 없나? 얼마나 뇌가 없으면 내 앞에서 성지 이야기를 꺼내? 나는 이를 으득 물고 녀석을 향해 마지막 경고를 했다.


“아구창 날리기 전에 그 시궁창 입에서 성지 이름 올리지 마.”
“레알이네, 등신 새끼. 한성지 그 년 바른중 짱이랑 졸~라 오래 사귀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냐? 넌, 넌 그냥 한성지한테 호구 잡힌거야, 씨발아. 하하하 흐흐흐… 별거 아니네! 김민규 졸라 호ㄱ…억!!”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새끼의 면상에 다시 주먹을 날린 후에, 다시 멱살을 끌어올렸다. 똑바로 이야기해. 뭐라고? 내 앞에서 거짓부렁 나불댔다간 뼛가루만 안치 될 줄 알라고 경고하는듯한 내 목소리에 한참을 쿨럭이던 녀석이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성지. 그 년 바른중 다니는 짱이랑 사귄다고. 그 새끼 들어 봤지? 바른중 광라리로 유명한 새끼. 그 새끼랑 중1부터 사귀었어. 김민규. 넌 그냥… 한성지 바람 상대일 뿐이야. 이 불쌍한 새끼야.”




…네? 뭐라고요?



*



“민규야, 오늘 기분 별로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 있어?”


내 앞에서 얌전히 휘핑 잔뜩 올라간 자바 칩 프라푸치노를 먹고 있던 성지가 참으로 감사하게도 먼저 물어 주었다. 나는 아까 그 이름 모를 까까머리 새끼가 한 말을 무한 되새김질하다가, 어? 화들짝 놀라며 지나치게 과장된 상태로 고개를 무한으로 저었다. 아니. 별일이 있을 리가. 사실 별일이 없진 않지만 별일 없어… 내 누가 봐도 저 새낀 무언갈 숨기고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과장된 행동에 성지가 더욱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이상해.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렇게 묻는 말간 얼굴이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얼굴이어서,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던 걸 멈추고 환히 웃었다. 에이, 그래. 저 천사 성지가 바람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그 새끼가 어디서 나랑 성지랑 사귀는 거 주워듣고 나 열 받으라고 아갈 한 거겠지. 난 최대한 가볍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성지야. 너희 학교에 그…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유명한 일찐애 있잖아. 별명이 압구정 날라리인가, 바른중 광나리인가, 광라리인가… 그 뭐시기 하는 애.”
“…걔는 왜?”


그래도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우선 떠보기 맛스푼을 이용해서 슬쩍 말을 꺼냈는데, 성지가 먹고 있던 프라푸치노를 딱! 기분 나쁘다는 듯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기분 탓인가. 난생 첨 보는듯한 굳어 있는 얼굴에 차가운 말투인데… 어? 이거 진짜 뭐 있나? 나는 과감하게 떠보기 맛스푼을 버렸다.


“혹시 걔랑 사귄 적 있어?”


나왔다, 나의 직구. 내 말에 성지의 표정은 대놓고 더욱 굳어졌다. 오… 좀 무서운데. 주위 공기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 성지의 옆에는 북극에서 건너온 찬 바람이 씽씽 불고 있었다. 한참을 침묵을 유지하며 굳은 표정으로 내 눈을 보던 성지가 입을 열었다.


“어떤 새끼가 그리 입 털었어?”


가 아니라…사실 성지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헛소문은 어디서 들었어?' 였는데 이젠 누가 봐도 살벌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정말로 ㄹㅇ 그렇게 들렸다. 성지의 갑작스러운 봄에서 겨울로 바뀐 성격 변화에 계절 감각 없는 나는 덩칫값 못하고 헤, 멍만 때렸다.


“미안. 민규야. 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먼저 가볼게. 나중에 카톡 하자.”


성지는 옆에 둔 가방을 챙기더니, 더는 나랑 말 섞기 싫다는 듯 얼른 일어나 급하게 카페를 나가버렸다. 이거 뭐야? 진짜인 부분?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성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뭐하자는 거지….
 

그렇게 털래털래 집으로 돌아와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자꾸만 성지만 생각했다. 아니 걔는 왜 이리 의심의 여지를 두고 갔지? 진심 난 그냥 바람 상대? 그 새끼랑 사귀고 있는 것? 아닐 엑스보이프렌? 뭐야 대체. 늘 내게 모범적인 모습만 보여줬던 울희 착한 ♥성지♥가 진짜로 바른중 짱이랑 사귀고 나랑은 바람을 피운다고? 편력은 오졌지만 나도 안 피워봤던 바람을? 허허허…침대에 누워 허허허, 웃음만 날리고 있는데 조용하던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쥐었다.



♥성지가 있는 곳은 성지♥
민규야 나 지금 너희 학교 후문 쪽이야. 잠시만 와줄래? -오후 06:07



카톡을 읽다가 잠시 멈추었다. 후문 쪽으로 오라고? 몸 안 좋다고 나간 애가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왜 왔지? 또 왜 하필 후문이야? 혼란이 가증되고 있었다.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솔찍히 지금 성지 얼굴 보면 좀 화날 것 같기도 하고. 지금 헤어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고민되는 판국인데? 아니, 근데 결론은 지어야 하잖아. 머릿속 고민이 심화하기 시작했지만, 내 결론은 이미 치우쳤다. 아니, 미안. 지금 못 나가. 글자를 치자마자 1 표시가 사라졌지만, 답장은 없었다. 지금 본다 하면 말도 좋게 안 나갈 것 같고, 아직 우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니까. 그냥 안 보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결론지은 나는 또 휴대폰을 던지고 에이, 머리를 헝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나 해야지.



민규야 나 지금 너희 아파트 놀이터에 있어. 잠시만 와주면 안 될까? - 오후 06:39



헐 얘 뭐야.

샤워하고 와서 혹시 몰라 휴대폰 부터 봤더니 또 톡이 와있었다. 뭡니까, 이거. 나를 만나겠다는 집념이 너무 무서운데? 나랑 검은 마차 놀이 하는 거야? 이러다 우리 집 앞까지 오겠다? 나는 또 고민했지만 다짐했다. 그래. 성지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정말 나랑 대화로 풀려고, 혹은 모든 사실을 다 솔직히 전해주려고 일부러 시간 내서 노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천하의 김민규가 두 번 내뺄 순 없지. 그렇게 답장했다. 지금 나갈게.



-



어.


머리도 다 못 말리고 부랴부랴 놀이터로 나온 나는 육성으로 소리를 내며 놀랐다. 왔어? 그네에 앉아서는 평소와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나를 반기는 성지 때문이 아니라, 그런 성지를 둘러싸고 있는 족히 일곱은 되어 보이는 남자애들 무리…때문에. 이거 뭐야? 제대로 된 상황이 파악되기도 전에 나는 우선 성지를 불렀다. 성지야 일로와. 그리고 너희, 성지한테서 떨어져.

그나마 가장 정답과 근사치는 저 한눈에 봐도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 성지를 인질로 나를 조지려고 성지를 통해 나를 불러낸 것. 나는 짧은 후회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괜히 중1 때 쌈박질 하고 다녀서!! 인생 좆창은 다 나고!!!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해? 내 인생에 대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근데…. 성지 쟤는 저들 사이에서 왜 여유만만하게 그네를 타고 있나? 그리고 쟤네는 왜 꼼짝을 안 하지? 왜 성지는 나를 쫌 놀란 표정으로 보지? 내가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 푸흡 하는 귀여운 웃음 소리가 터졌다. 주인은 그네를 열심히 타던 성지였다. 하하하, 하늘을 보며 난데없이 예쁜 웃음을 터트리는 성지를 보며 그 주위 남자애들도 함께 허허허, 븅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단체로 웃고 있는 꼴을 보자 하니 뭔가 광신도들 같기도 하고…. 아닌 밤중에 웃음 전염 시험이라도 하나…? 지금 다들 [웃어^^분위기 좆창내지말고] 모드 인거야? 입꼬리를 한 쪽을 씰룩 할까 말까 하다가 웃음을 딱 멈추고 그네에서 폴짝 뛰어내려 남자애들 중간에 자리 잡고 서는 성지를 보며 다시 표정을 굳혔다.


“민규야. 원래 알고는 있었는데.”
“…너 뭐해, 지금?”
“넌 좀 호구 같아.”


이름하여, 김민규 대 호구극의 시작.avi

성지는 너무 상냥히 웃으면서 그런말을 했다. 그 말에 아까부터 방청객 모드 시전 중인 남자애들이 빵빵 터져선 으하하 큰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내심 상처를 받았지만, 애써 괜찮은 척했다. 비록 여기서 아주 개썅 호구 취급 당하고 있었지만,
상황파악은 대강 되기 시작했다. 일단 성지는 절대 인질은 아니고…. 지금 포스는 거의 주도자 아니냐? 이거 뭔 어떻게 흘러가는 전개지?


“그래서 너한테 광라리 이야기 한 새끼가 누구야.”


…이건 진짜 내가 헛들은 게 아니다. 진짜로. 진심 참트루로 한성지 입에서 나온 소리임. 나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어…. 어, 어?? 바보 같이 되물었다.


“너한테 부승관 이야기 한 새끼가 누구냐구.”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부승관 이름의 파격적인 등장 개봉박두!


“그걸 왜 물어, 한성지. 나 지금 너 이해가 안 된다. 너무 낯설어.”
“민규야, 넌 다 좋아. 잘생기고, 키 크고, 몸 좋고, 싸움 잘 하고, 의리도 있고, 다정하고….”
“……”
“근데 눈치는 진짜 없다. 아직도 모르겠어?”


한성지는 샥 올린 입꼬리로 손가락을 까딱했다. 옆에 있는 방청객이 익숙하다는 듯 담배…. 담배?!?!
저 희끄무레 한 게 분필은 아닐 테고…? 와, 한성지. 진심 가관…. 담배를 익숙하게 물고 있으려니 방청객2가 친히 오른쪽 따까리 된 것처럼 불까지 붙여 주었다. 지금 나 몰래 영화 대부 촬영하고 있는 거니? 완전 골초 마냥 볼이 쪽, 빨리게 연기를 머금은 한성지가 연기를 영화처럼 뿜어내며 말하고 있었다. 와, 반전이 너무 쩔어서 어찌 반응 해야 할지….


“나 승관이랑 사귀는 거 맞아. 너랑 바람피웠던 것도 맞고.”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민규야, 난 네가 좀 더 격양된 반응일 줄 알았는데 아쉽다.”


아직 애티가 물씬 나는 중딩 얼굴로 그딴 애 늙은 소리나 해대는구먼. 성지의 가면이 벗겨지고 나니 찾아온 건 허무함이요, 이제는 만사가 귀찮아졌다. 어제만 해도 충만하던 성지에 대한 애정이 단숨에 후두두~ 가을 낙엽 떨어지듯 미련 없이 떨어졌다. 나의 강점 중 하나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빨리 떨치고 현실 순응은 빠르다. 흠, 근데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 두 어 달을 절제하며 살았을까? 저런 가식으로 무장된 거짓부렁 세뇨리따에 빠져 가지곤 가장 중요한 나를 버리고 살았구나. 쟤가 진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다 휩쓸어야 한다. 오스카 한 번 털어 주고 와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국제호구상 주연 후보에 오르구 말이야.


“한성지. 그래서 이제 어쩔거냐고. 빨리 말 해. 게다가 저것들은 왜 끌고 왔어? 이제 네 정체 들켰으니까 내가 죽어줘야 하는 거야? 네가 무슨 간첩이야?”
“오, 김민규 좀 비슷하게 맞춘다. 이제야 눈치가 좀 돌아가나 봐. 아쉽다, 그 새끼들이 입만 안 털었으면 쿨한 김민규랑 더 사귈 수 있었는데. 진짜 죽여야겠다, 걔네들.”


꽁초를 모래에 파묻는 익숙한 한성지의 가녀린 발목을 보다가, 고개를 올렸다. ^^ 이 모양으로 웃고 있는 한성지는 그 웃음과는 다르게 살 떨리는 기를 뿜고 있었다. 음…. 갑자기 아까 걔네한테 좀 미안해졌다. 살짝콩씩만 때려줄걸. 내일도 존나 처 맞을 운명이었는데. 얘들아, 한성지 정체 까발리게 해줘서 고맙다. 그래도 내가 한성지한테 너희 이름은 안 불었어. 몰라서 안 말한게 더 크지만. 나는 목을 돌리고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일곱 명이지만, 거뜬하게 해볼 수 있다.


“넌 진짜, 진심으로 쟤네들로 나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데리고 온 거지? 오케이 5분 컷 해드림.”


후, 후! 짧게 숨을 내쉬며 양손 주먹을 서로 맞쥐고 1대7의 역사를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한성지가 그 앞에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네가 싸울 애들은 쟤네 아냐. 승관이지.”
“...?  아니, 바람 상대 만나러 오는데 현남친도 데리고 왔냐? 너도 대단한 미친년이고 걔도 멘탈 오지네? 그럼 부승관은 어디있는데? 야! 부승관 깔끔하게 나와라. 정도중vs바른중으로 한 판 붙자.”
“민규야. 싸우기 전에 분명 말하는데, 난 너의 그 얼굴이 너무 좋아. 그래서 사귀자고 한 거 거절 안 한 거고. 지금도 솔직히 그 번지르르한 껍데기는 놓치기 싫거든? 그니까 나를 두고 승관이랑 싸워. 네가 이기면 승관이랑 헤어지고 계속 네가 원하는 모습의 여친으로 계속 옆에 있어 줄게.”
“야! 너 지랄 좀 하지 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이미 정은 아까 아까 다 뗐거든? 난 그런 전제조건이면 안 싸워. 줘도 안 가질 건데 뭐를 위해 싸...엌”
“아, 승관아. 왔어?”


나는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허벅지 부근의 강렬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며 다리를 접고 콱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 성지가 반가운 표정으로 내 뒤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아, 그 새끼가 찬 거구나, 지금? 이거 진짜 만만찮은 싸움이 될 거라고 예상됐다. 참고로 아무리 이기는 싸움만 하는 나도 사람이다 보니 중간에 많이 맞고도 다녔는데, 이렇게 아프고 치사하게 뒤에서 공격하는 새끼는 첨 본다. 아니 게다가, 무슨 돌로 찼나. 왜 이리 아파.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씨발. 좆같은 여친의 좆같은 남친다운 등장 이구나. 나는 주저 앉은 채 고개만 뒤로 돌렸다.



“일어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 중3 때부터 싸가지 뚝뚝 말투를 고대로 간직한 부승관과 첫 대면이 이뤄졌습니다.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뒤에 서 있는 건, 어둠 속에서 봐도 중3이라 믿을 수 없게 앳되어 보이고, 평균보다 덩치도 작은 남학생이었으므로. 고딩이 된 부승관은 그냥 평균 정도의 체격까지는 올라왔는데 중3 때만 해도 더 작았다. 그래서 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얘가 한 번 미치면 눈 돌아서 날라리 짓 하고 다닌다는 그 바른중 광라리라고? 바른중이랑은 한 번도 싸운 적도, 친한 새끼들도 없어서 정말 몰랐다. 소문에는 진짜 무시무시한 성격이랑 지랄 맞음만 유독 강조돼서 난 진짜 나 정도 되는 애가 군림하고 있는 줄 알았지. 광라리는 누가 먼저 시비 안 걸면 싸움 잘 안 한대. 근데 싸움은 존나 잘한대. 어디서 주워들었던 것 같다. 근데 이런 새끼일 줄 몰랐다. 내가 한 대 치면 날아가게 생겼는데? 부승관은 비척비척 일어나서 자신을 무슨 원숭이 구경하듯 뚫어지게 쳐다보는 내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지나쳤다. 뒷모습에서도 느껴지는 한성지 버금가게 말라보인 몸을 보며, 내가 과연 쟤를 때려도 되는 걸까. 아까 돌로 맞은 것 같은 그 고통은 다 잊고 심각한 고민을 했다.


“성지야. 이런 곳은 부르지 말라 했잖아.”
“미안. 얘가 그 호구 민규야. 오늘 너랑 싸울.”


아, 고놈의 호구 소리 좀 안 할 수 없겠니? 씨발, 욕이 다 나오네. 한성지를 보고 있던 부승관이 마침내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단정하게 잘려있는 앞머리 사이로 순박하기 그지없는 눈꼬리가 있었고, 그 속에 감춰진 눈동자가 소년처럼 반짝 빛나고 있었다. 졸지에 바람 상대로 전락한 나를 앞에 두고도 딱히 감정의 동요가 없는 멀끔한 표정이었다. 정말 무채색에 가까운, 평범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이어서 오히려 시선을 휘어잡았다. 소문 속에 숨겨진 바른중 광라리와 저 얼굴은 짜장면과 파스타만큼 비슷하면서 본질이 너~~무 다르다. 하나님…. 이건 반칙 아닌가요? 능력치는 최대 찍어 놓은 애가 저따위로 생겨 먹으면 저같이 맘 약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때린답니까? 내가 상대한 사람들은 다 덩치에, 나이를 거꾸로 뒤집은 것처럼 생긴 애늙은이들이었는데. 누가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은 다 내 생일 기념 몰카였다고 이야기 좀 해주라. 이경규 삼촌 나와도 이해할게. 생일은 아니지만 눈 감고 속아 넘어가 준다니까?

내가 멘탈이 털털 털리고 있을 때쯤, 성지랑 쇼부가 다 끝난 것인지 뭔지, 내 앞에 정면으로 선 녀석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기 위해선 좀 많이 내려봐야 할 정도로 체구가 작았다. 표정을 보니 아까 동요가 아예 없을 때랑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부승관은 나를 잠시 유심히 쳐다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넌 반격할 줄도 모르나 봐.”
“뭐라고?”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구먼. 진짜 등신이냐?”


그렇게 말한 녀석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습 주먹을 휘둘렀고, 다행히 키 차이가 있는 터라 반사신경 좋은 나는 허리만 살짝 젖혀서 피했...는데, 이번엔 아까와 같은 허벅지 부근에 또 돌에 찍힌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이 개새끼는 찼던 곳을 또 찬다. 나는 븅딱같이 다시 한 대 맞고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상대는 그 유명한 광라리다. 겉보기로 판단하고 방심하거나, 심란해하면 안 된다. 이 체격에서 나올 수 없는 파워를 봐라! 얜 진짜 광라리라고!!

정신은 들었다만 아까 맞은 곳 또 맞아서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살짝 다리를 굽힌 틈을 타, 녀석이 선두를 잡아 버렸다. 아까 안 찬 나머지 한 다리도 있는 힘껏 걷어차고 다리 힘이 완전히 풀려 버린 내 위에 빠르게 올라타서 내 턱을 손으로 거세게 움켜잡고 정확히 얼굴로 전통 주먹을 날렸다. 고개가 절로 옆으로 돌아갔다. 아; 진짜.


진짜 힘도 세고, 싸움도 오지게 잘 하네.
확실히 내가 싸워본 상대 중에서는 역대급 ㅇㅈ


입안이 터졌는지 입안에서 느껴지는 짭조름한 피를 모래에 바로 뱉은 후에 다시 빠르게 주먹을 날리려는 부승관의 손을 꽉, 쥐고 그대로 밀어냈다. 하, 이 씨발롬이. 밀어내고, 모래 바닥으로 내동댕이 치고 걷어 차려고 했는데. 금세 저 페이스를 찾은 녀석은 밀리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눈 앞에 서있었다.

부승관에게서는 야생 본능이 흘러나온다. 딱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저 유약해 보이는 중딩 남자애 몸 껍데기에 뭘 숨기고 있길래 저리 야쿠자, 삼합회, 마피아 갱단들 절루 가라 할 정도로 위험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지. 아~주 흥미로운데 싸우는 내 처지에서 좀 짜증도 아빠시리 난다. 그래 좋다 이기야. 진짜 단 한 소리 못하게 생선 가시 바르듯 발라주지. 나는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가 긴 다리를 이용해서 뻥 녀석을 차주고 드디어 모랫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녀석을 보며 사전 경고했다.



“싸우기 전에 미리 말하지만, 내가 이겨도 한성지는 절대 안 가진다.”


-


'장편 > [규부] 배틀로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규부] 배틀로맨스 06  (0) 2018.01.28
[규부] 배틀로맨스 05  (0) 2018.01.20
[규부] 배틀로맨스 04  (1) 2018.01.14
[규부] 배틀로맨스 03  (0) 2018.01.07
[규부] 배틀로맨스 01  (0) 2017.12.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