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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승관이 나를 나와 유사한 감정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한 번도 녀석에게 직접적으로 내 감정을 이야기 한 적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녀석이 내 마음을 에둘러 짐작하고 섣불리 거절의 표현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냥 녀석이 나를 대하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사실이었다. 물론 애초에 고백할 감정은 아니었으니, 깊은 곳에 묵혀두고 다시는 외부에 꺼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지금으로서 내가 바라는 건 오직 한 가지였으니까. 부승관이 행복해 지는 것. 난 녀석이 가지고 있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이 하루라도 지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 계기가 굳이 나를 통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어떤 방식으로라도 녀석이 치유받기를 원했다. 나는 내가 이 학교에 남아 있는 동안 부승관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기를 간절히 갈망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3학년이 되어버린 지금 까지도 부승관은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지 않았다. 한성지의 통치 아래 감정을 억누르고 살았던 중학생 때 보다는 분명히 나아지고 경과를 기대할 차도가 생겼지만, 근본적인 부분까지 혁명적인 변화를 끌어 내기는 힘들었다.
나는 거의 포기의 상태까지 왔다. 부승관을 3년 가까이 지켜 보고 좋아한 내가 변화시키지 못했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자책하며, 또 한편으로는 자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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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급식소 중심에는 부승관이 있었다. 키가 멀대같이 큰 노란 머리 남자애와 마주보며 서 있는 부승관의 무표정을 보고 다가갔다. 빡친 부승관이 식판을 엎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까지, 나는 나서지 않고 가만히 지켜 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내 시야에 목격된건 또 다시 김민규였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던 김민규와 부승관이 눈을 마주친 그 찰나를 목격했다. 나는 부승관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미묘하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김민규를 포착했다. 눈맞춤은 아주 잠깐이었고, 부승관은 김민규를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김민규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나는 김민규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몇 번이고 놓는 걸 지켜 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김민규의 저런 모습이 부승관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인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입술을 물었다가 놓는 것, 깜빡이지도 않고 처절하게 흔들리는 동공과 어쩔 줄 모르는 손을 말았다, 폈다 하는 무의미하고 다소 강박적인 행동… 김민규의 주위에 떠올라 있는 건 무엇도 아닌 걱정의 기류였다. 끝내 나서지 못하고 결국 외면해버리는 김민규에게서, 나와 닮은 씁쓸한 패배의 모습을 보았다.
김민규는 언제부터 부승관을 마음에 담았을까.
둘이 감정이 생겼을 접점은 불분명 하다. 처음부터 둘의 관계는 누구 하나 들춰 볼 수 없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루머들은 흘러 넘쳐나는데 무엇 하나 공인 된 것 없고, 무엇 하나 사실로 밝혀진 것도 없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조차 흐릿하다. 김민규는 부승관을 정말 좋아한 건지. 그렇다면 일방적이었는지, 아니면 부승관 역시도 김민규에게 단 하나의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었는지. 만약 헛소문이라면 둘은 왜 그렇게 서로를 아주 미묘한 거리를 둔 채 서로를 걱정하고, 피해주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하는 건지. 왜 먼저 다가 서지도 않으면서, 아주 물러서지도 않는 건지. 왜 둘만의 제로섬 게임은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건지.
결국 어떠한 사이로 정의가 되어 종말이 맺어질지, 내가 예측할 수 없었다.
“오빠, 오랜만이네요.”
지금까지 예상치 못한 어안이 벙벙해지는 변수들만 갑자기 한꺼번에 터진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변수 수준을 넘어서는 충격이었다. 내 앞에서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말갛게 웃고 있는 한성지의 얼굴에서 나는 한참이고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니 떼지 못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정말 내 앞에 있는 게 한성지인지, 혹시나 환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나로서는 해본 적도 없는 초현실적인 생각의 늪에 까지 빠졌다가, 오랜만이라는 조근한 인사를 건네는 상냥한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 왔다. 예전과 다르게 조금은 더 마르고, 길었던 머리를 짧게 단발로 자른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동공과 바뀌지 않은 태연한 얼굴빛은 분명 한성지 본인이라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내가 최근에 정학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한성지가 전학왔다는 소문은 언뜻 들었지만, 그냥 그건 말그대로 헛소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워낙 불명예로 뒤덮힌 채 떠난 한성지였기 때문에, 화제성 좆아가는 많은 덜 떨어진 놈들이 아직도 한성지의 이야기를 입방아에 올리곤 했으니까. 잔잔하고 고루한 일상을 탈피 하고 싶은 학생들이 자기 입맛대로 창작해 낸 헛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당사자가 내 앞에 나타날 줄은,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잘 지냈죠? 악의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일정하고 균일한 톤의 목소리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내 안부를 친절하게 물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의없이 입을 열어버렸다.
“잘 지냈지. 너는?”
한성지는 내가 역으로 질문을 던진 게 의외라는듯 눈썹을 살짝 찡긋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잘 지냈을것 처럼 보여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지지않고 내게 맞서 반박했다. 우리가 주고 받는 언어들은 명확한 대답 대신 물음표로 가득하다. 나는 멀뚱히 한성지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근데, 오빠는 진짜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요? 그것도 아니잖아.”
호선을 그리며 깊게 웃고 있던 입매가 천천히 내려 왔다. 갑자기 눈에 띄게 싸늘 해진 한성지를 나는 어떻게 대처 해야할 지 머리가 마음대로 굴러지지 않았다. 예전에 나는 한성지를 어떻게 대했더라? 내가 아는 한성지는 저렇게 표독스러운 표정을 절대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대놓고 무시 하는 게 쉬웠는지도 모른다. 바뀐걸까? 이제 본성을 숨기고 사는 게 지겨워져서? 생각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머리에 지끈한 고통이 수반됐다. 과부화가 되기 전 머릿 속에 모든 회로를 차단하는 큰 판넬벽이 세워진 느낌이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성지는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았다. 저만치 자판기 앞에서 한성지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애 두 명이 서서 재촉하듯 손짓하며 한성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응, 갈게. 아까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굳힌 표정을 유지하며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가시덤불 같은 시선이 얼이 반쯤은 빠져 있는 나를 여유있게 조롱하는 듯 했다. 한성지는 비소에 가까운 웃음을 만들어 내었다.
“근데, 오빠.”
“……”
“아직도 승관이 좋아해요?”
“…뭐?”
“조심하세요. 승관이한테 유난 떠는게 오빠 하나 뿐이 아니거든요.”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차마 붙잡을 새도 없이 한성지는 곧바로 뒤돌아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 가버렸다. 나는 한성지의 금세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쩍 마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묘하게 안쓰러우면서도, 말문을 잃게 하는 이상하고, 교활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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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지와 부승관이 다시 사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그 이후 부터였다. 나는 정확히 그 시점부터는 거의 통달한 수준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내가 백날 천날 고민하고 혼자 아등바등 싸워 봤자, 결국은 순환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 와버리고 마는게 순리이다. 부승관은 부승관이고, 한성지는 한성지고다. 절대 내 생각대로, 내가 추론한대로 통제하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건 내 욕심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나는 더이상 부승관과 한성지의 관계를 내 마음대로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물록 부승관이 내가 처음으로 연민의 감정을 가졌던 대상이고, 내가 처음으로 연정에 가까운 끌림을 느꼈던 사람인건 부정하지 않는다. 내 초기 인생에 가장 크게 새겨질 인물이고, 등장하자 마자 내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말 한마디에, 작은 소문 하나에, 쳐다보는 눈빛 하나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올라오는 일련의 과정들. 그것들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그냥 내 스스로 떠올리고, 추측하지만 않으면 편해질 간단한 일을, 차마 아직까지도 제대로 놓지못해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괴로워하며 버텨왔다. 그 녀석에게 대놓고 묻거나 말 할 용기도 없으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모든 걸 이해하려 했다. 그게 얼마나 부질 없고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으면서. 나는 그저 하나의 껍데기 뿐인 그 녀석의 페르소나에 얼마나 집중했던가.
소문이 돌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즘, 겨울 방학을 앞두고 이번에는 다른 파장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김민규가 일으킨 파장이었다. 이동구가 있어서 대놓고 학교 안을 휩쓸지는 못하지만, 알만한 애들은 이미 흡수 시킨지 오래인 구설수였다. 이동구라는 녀석이 자신이 아끼는 후배와 시비가 붙은 부승관과 더불어 나까지 한 번에 조져버릴 계획을 세웠는데, 김민규가 그 앞에서 자신이 부승관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면서 단숨에 무산 시켰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큰 납으로 만든 종으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잠시 틈을 비워 두면 그 사이에 상상도 못할 기상 천외한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 냅다 메워 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김민규가 이런 기상천외한 패를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도 없이 냅다 집어 던질 줄은 몰랐다. 남들 앞에서 가오만 잡으며 잘난 모습으로만 살아 왔던 김민규가, 너무도 쉽사리 본인의 사생활을 오픈하고, 무슨 방향으로 보든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쉽게 꺼낼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런걸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도 타인에게 보복이나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이 있는 녀석이라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부승관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부승관의 반응을 엿보고 싶어도, 방학을 앞두고 녀석은 다시 자취를 행방을 감추었다. 자신을 주재료로 한 온갖 구설수에도 방어 없이 행적만 항상 묘하게 감추니,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겠노라 오매불망 다짐 했던 내 모습도 무색하게만 만들어 버린다.
나는 졸업을 목전에 앞둔 마지막 겨울 방학식 날, 출석율이 극으로 저조한 3학년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학교에 나와 부승관의 행방을 찾기 위해 1학년이 있는 층으로 내려 갔다. 아침에 오늘 학교에 나오냐는 카톡을 보냈지만, 녀석은 읽고도 답이없었다. 강당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동하는 무리들을 지나쳐 부승관의 반이 있는 쪽으로 다가서려는데, 저 멀리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급하게 걸어 가던 발걸음을 단번에 멈추었다. 김민규였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한성지. 머릿속에서 숨어 있던 또 하나 경우의 수가 번뜩 빛나며 떠올랐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다가, 다시 멈추어 그저 지켜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둘 사이의 대화는 대화다운 대화 형식으로 길게 이어 지지 못했다. 한성지가 먼저 말간 웃음을 지으며 김민규를 툭툭 치고 지나쳤을 뿐이다. 김민규는 그 자리에 말뚝을 박은 듯 한성지가 지나치는 순간에도 꼼짝 없이 서있었다. 나는 내 쪽으로 걸어 오는 한성지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나를 발견한 한성지는 별 다른 적의를 띄지 않은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한 인사를 건넸다. 오빠 안녕하세요, 인사 이후에 웬일인지 나를 그냥 스쳐가려는 한성지의 손을 나도 모르게 붙잡아 버렸다. 한성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꽤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손목을 잡은 내 손과 내 눈을 번갈아 가며 쳐다 보았다.
“잠시 얘기 좀.”
“지금은 강당 가야해서.”
“……”
“마치고 쉼터에서 볼까요?”
상냥한 목소리가 마치 꼬마아이를 달래듯 제안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순순히 끄덕이고 말았다. 내가 손을 풀자, 한성지는 뒤도 안돌아보고 유유히 계단을 내려 갔다. 그 사이 어느 새 김민규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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