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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랑 친한 그 후배놈 있잖아."
"누구."
'부승관."
"……어."
걔 진짜 뭐라도 될 건가 보다? 진짜 허구한 날 쌈질하고 다닌다고 소문 자자하던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표정으로 말을 던지는 친구 녀석을 흘끔 쳐다 보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주먹에 자연스레 힘이 잔뜩 들어가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을 남의 입에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취급되는건, 씁쓸하다. 나는 울컥 치미는 짜증을 토로 하는 대신, 내 쪽으로 불어 오는 찬 바람을 그대로 쐬며 눈을 천천히 감는걸 택했다. 싸늘한 바람이 자꾸만 얼굴을 감싸쥐고 아리게 했다. 쥐었던 주먹을 풀고 차가워진 손을 패딩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부승관과 알게 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나는 졸업을 앞둔 3학년이 되어 버렸다. 꽤나 시간이 경과 했음에도, 내가 바라는 딱히 흡족한 결과가 있었던 건 아니다. 부승관은 여전히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니고, 나와 자주 연락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겨우 그 뿐이었다. 그냥 평범하지만 질 나쁘게 친한 학교 선배, 후배 사이가 전부. 한성지는 이제 완전히 우리 학교의 간판이 되었을 정도로 위상을 떨친다. 둘은 여전히 교제 하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어떠한 해나, 익을 끼치지 않고 공존 한다. 나는 처음에 이 둘을 알기 전에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건지 상상조차 못했다. 한성지와 교제 한다고 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 하고 다니며, 경찰서에 들락 날락 하는 빈도수를 점점 높여 가는 부승관의 이미지가 깨끗해 지는 게 아니었다. 한성지가 부승관이랑 교제 한다고 해서 그 깨끗하고 만인에게 친절한 천사 같은 이미지에 어떠한 해를 입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부승관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무나도 완벽한 이미지로 부승관의 옆에 붙어 있는 한성지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 했었고, 한성지의 인생에 특별하게 개입되어 있는 부승관 존재에 눈을 떴다. 그리고 한성지가 내게 이성적인 호기심을 보인 다는 사실과, 무언가 한성지와 부승관 관계에 접근 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진전없이 그 뿐이었다.
내가 부승관에게 관심을 가진 이후 부터 나는 더욱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부승관은 결코 내가 갖는 관심의 절반 만큼도 화답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자신의 치부도 터놓고 털어 놓는 일도 없을 거란 걸. 나는 실로 많은 기회를 틈탔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부승관과 더욱 가까워 지려 노력 했다. 내 예감이 예감으로만 끝나지 않는 다는 걸 증명 해보이고 싶었다. 만약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내가 해야 할 조취는, 그 상황이 닥치면 생각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연하게도 실패 했다. 일단 제일 단서를 많이 가지고 있을 부승관은 감정을 숨기는 것에 누구 보다 허술한 주제에, 누구보다 심하게 방어적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다 이골이 날 정도로 선을 마구 그었다. 아마 내가 한성지를 대놓고 경계하고 무시하기 시작한 이 후 부터 였을 것이다. 나는 부승관이 나에게 선을 긋는 만큼,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한성지에게 선을 그었다. 부승관에게 나와 만날 때는 한성지를 데려 오지마라 강도 높은 경고를 하고, 그 녀석과 함께 있는 한성지에게는 일말의 시선 하나 조차 주지 않았다. 그게 한성지의 자존심을 긁었는지, 분에 오르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한성지는 그 불편한 호감을 내게서 거둬 냈다. 나는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보면 여전히 착한 이미지를 유지 하기 위해 살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나는 그 속에 숨은 독기 어린 눈빛을 귀신 같이 캐치해 내고는 했다.
진짜 좆같네. 부승관이 뭐길래? 한성지가 뭐길래?
요즘은 내가 1년 넘게 했던 수고가 비참해질 정도로 허무했다. 부승관이 하는 싸움에 한성지도 관여 돼있다는 그 사실만 알아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잖아. 이미 처음부터 그런 가정을 하고 시작했는데, 그 가정에 확신을 줄 만한 조미료는 아무것도 없다. 부승관이 정말 한성지를 사랑해서 한성지 요구에 응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한성지에게 무언가 거대하게 책 잡힌게 있는 건지, 아님 그냥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인건지... 내가 알 수 있는 답은 존재 하지 않는다.
내 옆에서 휴대폰 불빛만 끊임 없이 보고 있던 친구 녀석이 문득 생각 난 듯 말을 꺼냈다.
"이러다가 그 새끼, 김민규랑 삐까 뜨겠다."
'김민규?"
"정도중 다니는 개양아치새끼. 걔도 부승관 못지 않게 허구 한 날 싸움 존나게 하고 다니 잖아. 지금 스코어로 따져 보면 부승관보다 한 술 더 뜰걸?"
김민규. 그래, 이름은 꽤 많이 들어 본 것 같다. 내가 관심 있는 일 말고는 사실 딱히 흥미가 가지는 않아서 금세 잊혀진 이름이기는 해도. 이번에도 난 김민규 라는 이름을 떠올렸지만, 금세 머리속에서 지워냈다. 나는 이미 머릿속에 부승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잡념이 너무 심해졌다. 한 번 시동을 걸면 자꾸만 그것 에만 사로 잡혀서 현일에 방해를 받을 정도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도대체 왜, 나랑 일말의 관련도 없는 타인에게 이렇게 집착을 가지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 되지 않았지만, 내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다. 그게 지긋 지긋하게 반복 되는 게 내 인생을 점점 좀 먹고 있는 게 느껴졌다.
-
김민규라는 이름이 한 번 더 내 머릿속에 보다 보다 정확하게 각인 된 건, 내가 고등학생으로 신분이 바뀌었을 때다.
나는 바른중을 졸업 하고 나서 정도 고등학교로 입학 했다. 중학교를 졸업 하고 나서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게 시들 시들 활기를 잃어갔다. 다 귀찮아. 공부도, 양아치 짓 하고 다니는 것도,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지긋한 중학교 생활을 종치고 나니, 부승관에 대한 집착도 스물 스물 가라 앉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물론 가끔 부승관을 술자리에서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심장에서 울컥 울컥 핏덩이를 토 해내는 것 같이 답답한 아픔이 지속 되긴 하지만, 이제 경과 없는 일에 내 모든 걸 걸어 가며 헛수고를 할 만큼 의욕이 넘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내가 그냥 넘겨 짚기로 사람을 너무 판단하려 들었을 수도 있다는 여유로운 생각까지 들었다. 부승관과 다른 학교로 떨어지고 나서 부터는 전 보다 볼 기회가 적어진 것도 내게 크게 영향을 미친 듯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던가. 그 순리대로 모든 게 흘러 가고 있었다. 부승관을 향한 아리송한 집착의 이유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고, 순조롭지 못했던 반항과 의심 가득한 항해는 끝나가는 듯했다.
"그거 아냐? 한성지 김민규랑 사귄다고 소문 있는 거."
물고 있던 담배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황급히 손가락으로 잡았다. 친구 녀석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무언가 덜컥 하면서 돌덩이가 내려 앉은 기분이었다. 지금 말을 꺼내면 지나칠 정도로 내 감정을 녹여서 말을 내뱉을까봐, 나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한 템포 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그게 뭔 말이야. 부승관은 어쩌고.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지만, 예상보다는 태연하게 나갔다.
"정도중에 내 아는 후배 있잖아. 걔가 말해주더라. 요즘 한성지랑 정도중에 그 김민규랑 붙어다닌다고."
"...부승관이랑은 깨진거고?"
"아니. 또 존나 웃긴게 깨진 건 아니래."
그럼 대체 뭔데? 진심으로 그냥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사귄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김민규와 한성지는 붙어 다니고 있는데, 부승관이랑 깨진 건 아니라면, 이건 또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말로만 들어서 한성지가 정말 부승관을 두고 김민규와 어떠한 썸이 있는 거라면, 나는 한성지의 일방적인 바람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부승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학교가 다른 여기까지 그 소문이 흘러 흘러왔는데 부승관이 모를 수가 없다. 그럼 부승관은 이에 대해 무슨 조취를 취했을까? 왜 헤어지지 않은 거지? 울면서 매달렸을까? 그냥 들어도, 보여도 그저 눈 귀 막모르는 척 하고 있을까? 나는 당장 전화해서 이 모든 정황을 부승관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다는 욕구를 억눌러 담았다. 갑자기 둘 사이에 김민규가 난데없이 왜 낀 것이며, 부승관과 지고 지순하게 헛점도 드러 내지 않은 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 하던 한성지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김민규로 환승한걸까.
점점 식어 가던 내 호기심에 조그마한 불씨가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김민규라. 정도중 근처로 오게 되면서 더더욱 김민규에 관한 루머와 가십거리들은 어딜 가도 주워 담기 좋게 들려왔다. 싸움으로 한 끝발 한다는 것과, 얼굴이 연예인 급으로 잘생겼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제 소문 축에도 끼지 못했고, 게중에 입이 절로 벌려지는 굉장히 사적인 소문도 많았다. 부모님이 오랜 시간 정계에 몸 담고 있는 정치인이고, 친가 외가 모두 집안 권력이 막강해서 아들이 치는 사고는 모조리 다 묻어 주고 있다느니, 중학교 1학년때 이미 살인 미수로 소년원 들어 갈 뻔 한적이 있다느니, 지역구로 분산되어 음지에서 활동하는 조폭이랑 깊게 연관되어 있다느니, 1대 50으로 싸워서 자기는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긴 적이 있다느니, 여자편력이 심해 반나절을 못 가고 갈아 치운다느니, 삼촌이 연예인 한테도 로비해주는 음지 속 큰 손으로 불리우는 유명세 마약상이어서 김민규 집에 가면 온통 마약이 깔려 있다느니… 진실인지 아닌지 도무지 검증할 수 없는 온갖 허무맹랑한 소문들이 김민규 주위를 돌고 있었다. 난 사실 도통 그 녀석에게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소문은 소문으로 흘려듣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충격이 컸다. 김민규랑 한성지?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조화다. 김민규의 저 소문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 게 아니라면, 김민규가 정말로 여성편력이 심하고, 여자를 밝히는 거라면. 우리 지역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 난 한성지를 그냥 두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성지는? 김민규 급 정도의 거물과 얽히면 부승관과 교제해도 흠집 남지 않았던 이미지에 생채기가 생길 게 뻔하다. 그런 위험을 감수 하고서라도 만난다고? 그 한성지가 부승관을?
"근데 듣자 하니까 부승관이,"
"……"
"먼저 바람이 났대. 어떤 애하고."
이번에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 조차 없는 말이다. 부승관이 먼저 바람 났다고?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튀어 나올 뻔 했다. 말도 안 돼. 부승관은 바람을 피울만한 위인이 아니다. 부승관은 한성지를 제외한 아무에게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그냥,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는 녀석 이다. 어딘가 알게 모르게 자기 비하 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는 녀석이,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열고, 한성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건 내 세계 안에 담겨있는 부승관 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잠자코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다만 영문을 알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랜만에 부승관을 만나야 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고등학교로 올라오고 뚫었던 단골 술집 포이즌으로 부승관을 불렀다. 금방 갈게요. 거부하는 것도 없이 무미건조한 부승관의 답장을 한참이나 바라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냐? 표정이 왜 안 좋아? 서빙하는 알바형이 술잔과 술을 테이블에 올려 놓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 그냥요. 뭐 그런 일이있어요. 대충 둘러 대고 소주병의 입구를 돌렸다. 부승관을 너무나 쉽게 불러 냈는데, 나는 아직 할 말이 정리가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주제로 말을 섣불리 꺼냈다가는 부승관을 뜻하지 않게 궁지로 몰아 세울까봐, 그게 고민이 됐다. 술을 마시고 있을까? 차라리 알딸딸한 상태라면 더 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주잔에 투명한 액체를 가득히 채웠다. 괜한 긴장감에 자꾸만 목이타서, 나도 모르게 원샷 해버렸다. 식도를 타는 역한 맛이 입안을 씁쓸하게 훑고 지나갔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왔냐."
조금은 간만에 보는 부승관이 내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예상대로 파리하고 기운 없는 안색의 부승관을 묵묵히 바라 보았다. 가방을 던지듯 놓고 내 맞은편에 앉은 녀석이 그제야 나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다른 형들은요? 빈 테이블을 슥, 둘러보던 부승관이 물었다. 한 30분 걸린대. 사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한 잔 할래?”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고 있는 부승관에게 잔을 건네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부승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아서. 기운 없는 목소리에 나는 들고 있던 술잔을 다시 거두었다. 부승관은 담배를 꺼내던 손을 멈추고 이미 따여져 있는 초록 술병을 잡더니, 고개를 올리고 물었다.
“형 벌써 혼자 먹고 있었어요?”
의아한 말투였다.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만 끄덕해보였다. 부승관은 술병을 다시 테이블 위로 내려 놓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와있었는데요? 오늘 학교 안갔어요?”
“한 40분 전? 늦잠자서 학교는 그냥 빠졌어.”
내 무심한 대답에 녀석은 간만에 파리한 미소를 지었다. 가볍지만, 어쩐지 음울한 미소였다.
“아무리 일찍와도 그렇지 왜 혼자 술을 먹어요. 형 뭔 일이라도 있어요?”
남 일 걱정하듯, 대수롭지 않게 내게 묻는 부승관을 보며, 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다스렸다. 나는 최대한 덤덤하고, 감정을 빼버린 채 말했다.
“너는?“
“네?”
“나는 아무 일 없는데, 너는 무슨일 있냐고.”
나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며 부승관을 쳐다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녀석은 티나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렇거 반응 해버리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말문을 꺼내야 할지... 나는 후, 짧은 숨을 몰아 쉬고 그 기세에 탑승했다. 나는 오늘, 내가 한 번도 넘지않은 선을 넘어 보려 했다.
“넌 왜 애가 맨날 그렇게 우울해 보이냐.”
“글쎄요. 요즘 잠을 잘 못자ㅅ...”
“한성지 때문이지.”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말을 내뱉던 부승관의 입이 다물렸다. 정곡을 찔렀구나. 직감이 왔다. 이상하게도 묘하게 쾌감이 느껴졌다. 부승관은 이내 정신을 차린듯 빠르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성지랑은 관련 없어요.”
“…표정보니 한성지가 정도중 다니는 김민규랑 사귀고 있는건 안 말해줘도 알고 있나보네.”
부승관은 다시 꿀 먹은듯 조용해졌다. 기나긴 침묵 속에 녀석이 지옥 같은 1초를 보내고 있다는 건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그건, 내 직감이 옳은 항로로 가고 있다는 신호기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싸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속이 마냥 시원 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아까보다 더한 답답함이 눈처럼 쌓였다. 가슴을 억지로 쳐서 질퍽하게 토하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기세를 대놓고 몰았는데, 한 발짝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내가 말했잖아, 무슨 일 있으면 말하라고.”
“…형, 그 성지 얘기 그만해요.”
마침내 부승관이 고개를 들고 내 말을 멈추려고 나섰다. 그 녀석 본인은 모를 얼어붙은 표정과 냉정한 말투가 툭, 방어적으로 튀어 나왔다. 나는 여기까지 오면 늘 항상 한 수 접어 주고는 했다. 이 이상 파고들면 부승관이 심한 압박을 느끼고 더 이상 날 안 보려 할까봐. 그게 내가 선을 넘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신을 캐내려는 내게 심한 반감을 가질까봐. 생각해보면 늘상의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만해? 뭘 그만할까. 네가 성지한테 등신처럼 당하고 산다는거?”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갑자기 내 멱살이 끌려 갔다. 충격에 바닥으로 밀린 술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나는 내 멱살을 쥔 하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한 번 내려다 보았다. 동요로 일그러진 눈빛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부승관이 바리케이드로 만들어 놓은 태풍의 한 가운데로 걸어 가고 있었다.
“그만하라고요.”
분노로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게 느껴졌다. 멱살은 잡아 놓고 빈틈이 가득하고, 엉성했다. 나는 손으로들아 내 멱살을 쥔 부승관의 손을 꽉 쥐고 내팽겨쳤다. 그리고 부승관이 앉아 있는 맞은편으로 걸어가 그 자리 그대로 얼어 있는 부승관의 멱살을 낚아 채듯 잡았다. 녀석의 몸이 가벼운 종잇장 처럼 손쉽게 딸려왔다. 나는 넋이 나가 있는 녀석을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아까의 울렁 거림은, 어쩐지 화로 변한 듯 하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부승관에게. 모든 걸 자꾸 숨기려고만 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녀석에게. 한성지와의 관계를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덮으려는 필사적인 모습에. 오늘 부승관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이미 답은, 내 예상을 벗어 나지 않은 범주 안으로 정해져 있었다. 난 그것에 내 스스로에게 환멸이 날 정도로 오랜시간을 소비했다. 이 선을 넘기까지 정말 힘겨웠다. 그 말은 곧, 내가 부승관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인정하기까지도 굉장히 힘들고 긴 여정이었다는 거다.
“너 나랑 싸워본 적 없지.”
나즈막히 말했다. 싸워본 적? 당연히 없다. 나는 맹세컨 대 부승관을 때린다는 상상조차도 해본 적 없다. 부승관은 텅 빈 동공으로 내 눈을 마주 보다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때릴 거라면, 때리라는 체념의 신호였다. 나는 녀석의 질끈 감은 눈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잘 들어. 치킨게임이고, 룰은 딱하나야.”
“……”
“내빼면 지는거다. 알겠냐?”
주저함이 조금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주저 없이 난 녀석에게 입을 맞추어 버렸다. 놀란 녀석이 숨을 급하게 들이 쉬는 것 마저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녀석의 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으며, 딱딱하게 굳어서 나를 내치지도 않는 부승관의 멱살을 천천히 놓았다. 녀석이 그와 동시에 뒤로 넘어갔다. 나는 녀석의 뜨끈한 숨결이 아직도 남겨져 있는 입술을 온전히 느끼며 동공이 크게 확장 된 채 나를 올려다 보는 부승관을 조용히 바라 보았다.
“호구 같은 새끼.”
호구 같은 부승관. 나는 분명 그렇게 부승관에게 비수를 꽂고 뒤돌았지만,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정말 호구 같고, 저열하고, 비겁한 건 부승관을 좋아하는 마음을 2년 동안이나 호기심과 관심으로 포장하고 감추고, 돌아서고, 무서워서 도망쳤던, 바로 나 였다는 걸.
"누구."
'부승관."
"……어."
걔 진짜 뭐라도 될 건가 보다? 진짜 허구한 날 쌈질하고 다닌다고 소문 자자하던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표정으로 말을 던지는 친구 녀석을 흘끔 쳐다 보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주먹에 자연스레 힘이 잔뜩 들어가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을 남의 입에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취급되는건, 씁쓸하다. 나는 울컥 치미는 짜증을 토로 하는 대신, 내 쪽으로 불어 오는 찬 바람을 그대로 쐬며 눈을 천천히 감는걸 택했다. 싸늘한 바람이 자꾸만 얼굴을 감싸쥐고 아리게 했다. 쥐었던 주먹을 풀고 차가워진 손을 패딩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부승관과 알게 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나는 졸업을 앞둔 3학년이 되어 버렸다. 꽤나 시간이 경과 했음에도, 내가 바라는 딱히 흡족한 결과가 있었던 건 아니다. 부승관은 여전히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니고, 나와 자주 연락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겨우 그 뿐이었다. 그냥 평범하지만 질 나쁘게 친한 학교 선배, 후배 사이가 전부. 한성지는 이제 완전히 우리 학교의 간판이 되었을 정도로 위상을 떨친다. 둘은 여전히 교제 하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어떠한 해나, 익을 끼치지 않고 공존 한다. 나는 처음에 이 둘을 알기 전에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건지 상상조차 못했다. 한성지와 교제 한다고 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 하고 다니며, 경찰서에 들락 날락 하는 빈도수를 점점 높여 가는 부승관의 이미지가 깨끗해 지는 게 아니었다. 한성지가 부승관이랑 교제 한다고 해서 그 깨끗하고 만인에게 친절한 천사 같은 이미지에 어떠한 해를 입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부승관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무나도 완벽한 이미지로 부승관의 옆에 붙어 있는 한성지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 했었고, 한성지의 인생에 특별하게 개입되어 있는 부승관 존재에 눈을 떴다. 그리고 한성지가 내게 이성적인 호기심을 보인 다는 사실과, 무언가 한성지와 부승관 관계에 접근 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진전없이 그 뿐이었다.
내가 부승관에게 관심을 가진 이후 부터 나는 더욱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부승관은 결코 내가 갖는 관심의 절반 만큼도 화답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자신의 치부도 터놓고 털어 놓는 일도 없을 거란 걸. 나는 실로 많은 기회를 틈탔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부승관과 더욱 가까워 지려 노력 했다. 내 예감이 예감으로만 끝나지 않는 다는 걸 증명 해보이고 싶었다. 만약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내가 해야 할 조취는, 그 상황이 닥치면 생각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연하게도 실패 했다. 일단 제일 단서를 많이 가지고 있을 부승관은 감정을 숨기는 것에 누구 보다 허술한 주제에, 누구보다 심하게 방어적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다 이골이 날 정도로 선을 마구 그었다. 아마 내가 한성지를 대놓고 경계하고 무시하기 시작한 이 후 부터 였을 것이다. 나는 부승관이 나에게 선을 긋는 만큼,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한성지에게 선을 그었다. 부승관에게 나와 만날 때는 한성지를 데려 오지마라 강도 높은 경고를 하고, 그 녀석과 함께 있는 한성지에게는 일말의 시선 하나 조차 주지 않았다. 그게 한성지의 자존심을 긁었는지, 분에 오르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한성지는 그 불편한 호감을 내게서 거둬 냈다. 나는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보면 여전히 착한 이미지를 유지 하기 위해 살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나는 그 속에 숨은 독기 어린 눈빛을 귀신 같이 캐치해 내고는 했다.
진짜 좆같네. 부승관이 뭐길래? 한성지가 뭐길래?
요즘은 내가 1년 넘게 했던 수고가 비참해질 정도로 허무했다. 부승관이 하는 싸움에 한성지도 관여 돼있다는 그 사실만 알아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잖아. 이미 처음부터 그런 가정을 하고 시작했는데, 그 가정에 확신을 줄 만한 조미료는 아무것도 없다. 부승관이 정말 한성지를 사랑해서 한성지 요구에 응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한성지에게 무언가 거대하게 책 잡힌게 있는 건지, 아님 그냥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인건지... 내가 알 수 있는 답은 존재 하지 않는다.
내 옆에서 휴대폰 불빛만 끊임 없이 보고 있던 친구 녀석이 문득 생각 난 듯 말을 꺼냈다.
"이러다가 그 새끼, 김민규랑 삐까 뜨겠다."
'김민규?"
"정도중 다니는 개양아치새끼. 걔도 부승관 못지 않게 허구 한 날 싸움 존나게 하고 다니 잖아. 지금 스코어로 따져 보면 부승관보다 한 술 더 뜰걸?"
김민규. 그래, 이름은 꽤 많이 들어 본 것 같다. 내가 관심 있는 일 말고는 사실 딱히 흥미가 가지는 않아서 금세 잊혀진 이름이기는 해도. 이번에도 난 김민규 라는 이름을 떠올렸지만, 금세 머리속에서 지워냈다. 나는 이미 머릿속에 부승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잡념이 너무 심해졌다. 한 번 시동을 걸면 자꾸만 그것 에만 사로 잡혀서 현일에 방해를 받을 정도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도대체 왜, 나랑 일말의 관련도 없는 타인에게 이렇게 집착을 가지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 되지 않았지만, 내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다. 그게 지긋 지긋하게 반복 되는 게 내 인생을 점점 좀 먹고 있는 게 느껴졌다.
-
김민규라는 이름이 한 번 더 내 머릿속에 보다 보다 정확하게 각인 된 건, 내가 고등학생으로 신분이 바뀌었을 때다.
나는 바른중을 졸업 하고 나서 정도 고등학교로 입학 했다. 중학교를 졸업 하고 나서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게 시들 시들 활기를 잃어갔다. 다 귀찮아. 공부도, 양아치 짓 하고 다니는 것도,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지긋한 중학교 생활을 종치고 나니, 부승관에 대한 집착도 스물 스물 가라 앉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물론 가끔 부승관을 술자리에서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심장에서 울컥 울컥 핏덩이를 토 해내는 것 같이 답답한 아픔이 지속 되긴 하지만, 이제 경과 없는 일에 내 모든 걸 걸어 가며 헛수고를 할 만큼 의욕이 넘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내가 그냥 넘겨 짚기로 사람을 너무 판단하려 들었을 수도 있다는 여유로운 생각까지 들었다. 부승관과 다른 학교로 떨어지고 나서 부터는 전 보다 볼 기회가 적어진 것도 내게 크게 영향을 미친 듯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던가. 그 순리대로 모든 게 흘러 가고 있었다. 부승관을 향한 아리송한 집착의 이유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고, 순조롭지 못했던 반항과 의심 가득한 항해는 끝나가는 듯했다.
"그거 아냐? 한성지 김민규랑 사귄다고 소문 있는 거."
물고 있던 담배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황급히 손가락으로 잡았다. 친구 녀석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무언가 덜컥 하면서 돌덩이가 내려 앉은 기분이었다. 지금 말을 꺼내면 지나칠 정도로 내 감정을 녹여서 말을 내뱉을까봐, 나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한 템포 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그게 뭔 말이야. 부승관은 어쩌고.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지만, 예상보다는 태연하게 나갔다.
"정도중에 내 아는 후배 있잖아. 걔가 말해주더라. 요즘 한성지랑 정도중에 그 김민규랑 붙어다닌다고."
"...부승관이랑은 깨진거고?"
"아니. 또 존나 웃긴게 깨진 건 아니래."
그럼 대체 뭔데? 진심으로 그냥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사귄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김민규와 한성지는 붙어 다니고 있는데, 부승관이랑 깨진 건 아니라면, 이건 또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말로만 들어서 한성지가 정말 부승관을 두고 김민규와 어떠한 썸이 있는 거라면, 나는 한성지의 일방적인 바람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부승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학교가 다른 여기까지 그 소문이 흘러 흘러왔는데 부승관이 모를 수가 없다. 그럼 부승관은 이에 대해 무슨 조취를 취했을까? 왜 헤어지지 않은 거지? 울면서 매달렸을까? 그냥 들어도, 보여도 그저 눈 귀 막모르는 척 하고 있을까? 나는 당장 전화해서 이 모든 정황을 부승관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다는 욕구를 억눌러 담았다. 갑자기 둘 사이에 김민규가 난데없이 왜 낀 것이며, 부승관과 지고 지순하게 헛점도 드러 내지 않은 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 하던 한성지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김민규로 환승한걸까.
점점 식어 가던 내 호기심에 조그마한 불씨가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김민규라. 정도중 근처로 오게 되면서 더더욱 김민규에 관한 루머와 가십거리들은 어딜 가도 주워 담기 좋게 들려왔다. 싸움으로 한 끝발 한다는 것과, 얼굴이 연예인 급으로 잘생겼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제 소문 축에도 끼지 못했고, 게중에 입이 절로 벌려지는 굉장히 사적인 소문도 많았다. 부모님이 오랜 시간 정계에 몸 담고 있는 정치인이고, 친가 외가 모두 집안 권력이 막강해서 아들이 치는 사고는 모조리 다 묻어 주고 있다느니, 중학교 1학년때 이미 살인 미수로 소년원 들어 갈 뻔 한적이 있다느니, 지역구로 분산되어 음지에서 활동하는 조폭이랑 깊게 연관되어 있다느니, 1대 50으로 싸워서 자기는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긴 적이 있다느니, 여자편력이 심해 반나절을 못 가고 갈아 치운다느니, 삼촌이 연예인 한테도 로비해주는 음지 속 큰 손으로 불리우는 유명세 마약상이어서 김민규 집에 가면 온통 마약이 깔려 있다느니… 진실인지 아닌지 도무지 검증할 수 없는 온갖 허무맹랑한 소문들이 김민규 주위를 돌고 있었다. 난 사실 도통 그 녀석에게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소문은 소문으로 흘려듣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충격이 컸다. 김민규랑 한성지?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조화다. 김민규의 저 소문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 게 아니라면, 김민규가 정말로 여성편력이 심하고, 여자를 밝히는 거라면. 우리 지역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 난 한성지를 그냥 두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성지는? 김민규 급 정도의 거물과 얽히면 부승관과 교제해도 흠집 남지 않았던 이미지에 생채기가 생길 게 뻔하다. 그런 위험을 감수 하고서라도 만난다고? 그 한성지가 부승관을?
"근데 듣자 하니까 부승관이,"
"……"
"먼저 바람이 났대. 어떤 애하고."
이번에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 조차 없는 말이다. 부승관이 먼저 바람 났다고?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튀어 나올 뻔 했다. 말도 안 돼. 부승관은 바람을 피울만한 위인이 아니다. 부승관은 한성지를 제외한 아무에게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그냥,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는 녀석 이다. 어딘가 알게 모르게 자기 비하 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는 녀석이,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열고, 한성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건 내 세계 안에 담겨있는 부승관 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잠자코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다만 영문을 알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랜만에 부승관을 만나야 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고등학교로 올라오고 뚫었던 단골 술집 포이즌으로 부승관을 불렀다. 금방 갈게요. 거부하는 것도 없이 무미건조한 부승관의 답장을 한참이나 바라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냐? 표정이 왜 안 좋아? 서빙하는 알바형이 술잔과 술을 테이블에 올려 놓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 그냥요. 뭐 그런 일이있어요. 대충 둘러 대고 소주병의 입구를 돌렸다. 부승관을 너무나 쉽게 불러 냈는데, 나는 아직 할 말이 정리가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주제로 말을 섣불리 꺼냈다가는 부승관을 뜻하지 않게 궁지로 몰아 세울까봐, 그게 고민이 됐다. 술을 마시고 있을까? 차라리 알딸딸한 상태라면 더 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주잔에 투명한 액체를 가득히 채웠다. 괜한 긴장감에 자꾸만 목이타서, 나도 모르게 원샷 해버렸다. 식도를 타는 역한 맛이 입안을 씁쓸하게 훑고 지나갔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왔냐."
조금은 간만에 보는 부승관이 내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예상대로 파리하고 기운 없는 안색의 부승관을 묵묵히 바라 보았다. 가방을 던지듯 놓고 내 맞은편에 앉은 녀석이 그제야 나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다른 형들은요? 빈 테이블을 슥, 둘러보던 부승관이 물었다. 한 30분 걸린대. 사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한 잔 할래?”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고 있는 부승관에게 잔을 건네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부승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아서. 기운 없는 목소리에 나는 들고 있던 술잔을 다시 거두었다. 부승관은 담배를 꺼내던 손을 멈추고 이미 따여져 있는 초록 술병을 잡더니, 고개를 올리고 물었다.
“형 벌써 혼자 먹고 있었어요?”
의아한 말투였다.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만 끄덕해보였다. 부승관은 술병을 다시 테이블 위로 내려 놓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와있었는데요? 오늘 학교 안갔어요?”
“한 40분 전? 늦잠자서 학교는 그냥 빠졌어.”
내 무심한 대답에 녀석은 간만에 파리한 미소를 지었다. 가볍지만, 어쩐지 음울한 미소였다.
“아무리 일찍와도 그렇지 왜 혼자 술을 먹어요. 형 뭔 일이라도 있어요?”
남 일 걱정하듯, 대수롭지 않게 내게 묻는 부승관을 보며, 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다스렸다. 나는 최대한 덤덤하고, 감정을 빼버린 채 말했다.
“너는?“
“네?”
“나는 아무 일 없는데, 너는 무슨일 있냐고.”
나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며 부승관을 쳐다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녀석은 티나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렇거 반응 해버리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말문을 꺼내야 할지... 나는 후, 짧은 숨을 몰아 쉬고 그 기세에 탑승했다. 나는 오늘, 내가 한 번도 넘지않은 선을 넘어 보려 했다.
“넌 왜 애가 맨날 그렇게 우울해 보이냐.”
“글쎄요. 요즘 잠을 잘 못자ㅅ...”
“한성지 때문이지.”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말을 내뱉던 부승관의 입이 다물렸다. 정곡을 찔렀구나. 직감이 왔다. 이상하게도 묘하게 쾌감이 느껴졌다. 부승관은 이내 정신을 차린듯 빠르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성지랑은 관련 없어요.”
“…표정보니 한성지가 정도중 다니는 김민규랑 사귀고 있는건 안 말해줘도 알고 있나보네.”
부승관은 다시 꿀 먹은듯 조용해졌다. 기나긴 침묵 속에 녀석이 지옥 같은 1초를 보내고 있다는 건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그건, 내 직감이 옳은 항로로 가고 있다는 신호기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싸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속이 마냥 시원 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아까보다 더한 답답함이 눈처럼 쌓였다. 가슴을 억지로 쳐서 질퍽하게 토하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기세를 대놓고 몰았는데, 한 발짝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내가 말했잖아, 무슨 일 있으면 말하라고.”
“…형, 그 성지 얘기 그만해요.”
마침내 부승관이 고개를 들고 내 말을 멈추려고 나섰다. 그 녀석 본인은 모를 얼어붙은 표정과 냉정한 말투가 툭, 방어적으로 튀어 나왔다. 나는 여기까지 오면 늘 항상 한 수 접어 주고는 했다. 이 이상 파고들면 부승관이 심한 압박을 느끼고 더 이상 날 안 보려 할까봐. 그게 내가 선을 넘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신을 캐내려는 내게 심한 반감을 가질까봐. 생각해보면 늘상의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만해? 뭘 그만할까. 네가 성지한테 등신처럼 당하고 산다는거?”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갑자기 내 멱살이 끌려 갔다. 충격에 바닥으로 밀린 술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나는 내 멱살을 쥔 하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한 번 내려다 보았다. 동요로 일그러진 눈빛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부승관이 바리케이드로 만들어 놓은 태풍의 한 가운데로 걸어 가고 있었다.
“그만하라고요.”
분노로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게 느껴졌다. 멱살은 잡아 놓고 빈틈이 가득하고, 엉성했다. 나는 손으로들아 내 멱살을 쥔 부승관의 손을 꽉 쥐고 내팽겨쳤다. 그리고 부승관이 앉아 있는 맞은편으로 걸어가 그 자리 그대로 얼어 있는 부승관의 멱살을 낚아 채듯 잡았다. 녀석의 몸이 가벼운 종잇장 처럼 손쉽게 딸려왔다. 나는 넋이 나가 있는 녀석을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아까의 울렁 거림은, 어쩐지 화로 변한 듯 하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부승관에게. 모든 걸 자꾸 숨기려고만 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녀석에게. 한성지와의 관계를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덮으려는 필사적인 모습에. 오늘 부승관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이미 답은, 내 예상을 벗어 나지 않은 범주 안으로 정해져 있었다. 난 그것에 내 스스로에게 환멸이 날 정도로 오랜시간을 소비했다. 이 선을 넘기까지 정말 힘겨웠다. 그 말은 곧, 내가 부승관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인정하기까지도 굉장히 힘들고 긴 여정이었다는 거다.
“너 나랑 싸워본 적 없지.”
나즈막히 말했다. 싸워본 적? 당연히 없다. 나는 맹세컨 대 부승관을 때린다는 상상조차도 해본 적 없다. 부승관은 텅 빈 동공으로 내 눈을 마주 보다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때릴 거라면, 때리라는 체념의 신호였다. 나는 녀석의 질끈 감은 눈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잘 들어. 치킨게임이고, 룰은 딱하나야.”
“……”
“내빼면 지는거다. 알겠냐?”
주저함이 조금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주저 없이 난 녀석에게 입을 맞추어 버렸다. 놀란 녀석이 숨을 급하게 들이 쉬는 것 마저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녀석의 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으며, 딱딱하게 굳어서 나를 내치지도 않는 부승관의 멱살을 천천히 놓았다. 녀석이 그와 동시에 뒤로 넘어갔다. 나는 녀석의 뜨끈한 숨결이 아직도 남겨져 있는 입술을 온전히 느끼며 동공이 크게 확장 된 채 나를 올려다 보는 부승관을 조용히 바라 보았다.
“호구 같은 새끼.”
호구 같은 부승관. 나는 분명 그렇게 부승관에게 비수를 꽂고 뒤돌았지만,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정말 호구 같고, 저열하고, 비겁한 건 부승관을 좋아하는 마음을 2년 동안이나 호기심과 관심으로 포장하고 감추고, 돌아서고, 무서워서 도망쳤던, 바로 나 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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