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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승관이랑 키스했다고요?”
“일방적으로 내가 밀어 붙인거지.”


최승철 선배는 나와 함께 걸으면서 무덤덤하게 자신과 부승관에게 있었던 과거를 내게 털어 놓았다. 세세한 것 하나까지도, 과거의 자신이 부승관에게 느꼈던 감정 하나 하나까지도. 어느것 하나 숨김이 없고 과감했다. 과장하는 것도 없이, 방어하거나, 자신을 포장하는 것도 없이 모든 걸 소신있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말 없이 그 긴 이야기를 경청 하면서, 이 선배가 지나왔던 부승관과 얽혀있는 과거가 놀랍도록 지금의 나와 유사한 양상으로 흘러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부승관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도출한 과정도 엇비슷 했다. 게다가 한성지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불합리적인 의심을 품게 된 것도 소름끼치릴 만큼 똑같았다. 이 선배의 말이 사실이라면, 부승관에게 있어서 틈을 파고 들어간 최초는 내가 아니었다.

 부승관에게 다가온 최초에는, 최승철 선배가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선배는 나보다 먼저 부승관을 만났고, 나보다 먼저 좋아하게 됐고, 옆에 있는 한성지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순수히 부승관을 위해 나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부승관이 품고 있는 울념을 이해하고 해소 하려 노력했고, 나보다 먼저 부승관에게 입 맞췄다. 내가 그 선배와 부승관의 존재를 모르고 한성지에 미쳐 있을 때, 그들은 이미 내 존재를 알아 차리고 있었다. 내가 부승관의 인생에 개입하기 바로 직전에…

모든 게 나보다 한 발짝 빨랐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수익을 건져낼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부승관을 만날 수 있는 차례가 돌아 온 것이다. 그걸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리고, 결과도 있다. 사람에게 벌어지는 모든일들은 유기적으로 연결 돼 있기 마련이다. 내가 한성지를 우연히 편의점 앞에서 마주치고 번호를 딴 그 순간, 한성지와 연인 행세를 하며 활보치고 다닌 그 순간, 내가 한성지가 바른중 짱인 부승관과 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시비를 털러 온 다른 학교 애들의 입에서 듣게 된 그 순간, 최승철 선배가 부승관에게 입을 맞추고, 부승관의 머릿속에서 또 다른 혼란이 심어졌을 그 순간… 모든 순간들이 흘렀고 누가 만들어 놓은 운명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부승관을 만났다. 일회성에 그치게 될 수도 있을 그 불편하고 위태로운 인연이, 아마도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최승철 선배한테 받았을 큰 영향과, 그 상황에 대한 울분으로 감정에 휘몰아쳐 내게 키스해버렸을 부승관 때문에 기묘하게 이어져 버렸다.


“근데, 부승관은 나 아직도 안 좋아해. 그건 느껴지지?”
“……”
“그때 그렇게 헤어지고, 다음 주에 바로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부승관 불러내고, 같이 술먹고, 무리들 사이에서 같이 끼워 놀고 했거든. 진짜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다시 관계 돌리려고.”
“…왜 그랬어요?”
“부승관이랑 멀어지기 싫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래.”


선배의 발걸음이 멈췄다. 난 그 착잡해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더 웃긴게 뭔 줄 알아? 부승관은 그 내 웃기지도 않은 태연한 척에 장단을 맞춰줬다는 거야.”
“……”
“…나는 부승관에게 딱 그 정도 까지 였나봐.”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그냥 포기 하게 되더라. 발전도, 후퇴도 없는 관계에 그냥 안주할 수 밖에 없는 기분 아냐? 무언가 하나도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그냥 더이상 시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한 발짝 물러나준거지.
그러고 난 뒤에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어.
물론 그 와중에도 부승관을 압박하는 게 무엇인지 형태를 알 것 같았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냥 무시했었어.
최승철 선배는 저 너머 빛이 모여 있는 아파트 단지로 눈을 돌렸다. 나는 그 모습에서 깊고도 낯선 동질감을 느꼈다. 현재 내 모습도 그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리라. 나는 냉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부승관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이 선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조차 없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친구로 조차 옆에 남지못한 내 신세가 더욱 비참한 건 역시 변하지않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설마 나보다 더 한 놈이 있을까, 했는데. 정말 나보다 더 한 놈이 있을 줄 몰랐다.”
“…무슨 말이에요?”
“2년 전에 한성지 전학 가게 한 거 너잖아.”


그건요…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수가 없다. 고의든, 아니든 내가 감히 한성지의 인생에 아무도 시도 할 수 없었던 거대한 한 방을 친 건 사실이니까. 나비효과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날 싸움을 하러 가기 전, 머리를 번뜩 스친 작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것이 그냥 목적을 다해도 소멸되지 않은 채 큰 일을 만들었다. 그 일만 생각하면, 한성지가 나를 찢어 죽여도 납득할 수 있다. 혹시 그래서 전학 온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로지, 내게 복수 하기 위해서.
최승철 선배는 뒤돌아서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감정은 여전히 읽어 낼 수 없었다.


“네가 나보다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거야. 인정하긴 싫지만 솔직히 네가 나보다 용기 있으니까.”
“뭘요?”
“넌 부승관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


몰라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야기 해주지 않으니까.
모른다고 대답 하려다가, 저 선배가 그런 나에게 실망해서 다시는 입을 열지 않을까봐,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최승철 선배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이건 예상하고 있었던 거 아냐? 한성지가 부승관 데리고 다니면서 싸움 시키고 다녔던 거.”
“…그건 당연하고요.”
“하지만 너는 그게 부승관이 한성지를 좋아해서 그랬다고 생각 한거고.”
“……”


어떻게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한성지를 아직도 좋아하냐고 불과 최근에 물었을 때도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 놈이 부승관 인데, 나는 뭘 보고 그게 진실이 아닐거라고 확신을 가져야 하는 건지. 아무리 나라도, 부승관과 한성지 사이에 있는 애정 대해 아무런 의심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내가 집착하고 좋아하게 된 유일한 상대인 부승관이, 한성지라는 영악한 사람한테 미쳐서 주위의 무엇도 거들떠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의심도 없이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이때까지 아무런 장애물 없이 순조롭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 나를 부정하는 짓이었다. 혹시 부승관이 한성지에게 엄청나게 책 잡힌게 있나, 그럴 듯한 의심을 해보기도 하고 싸움을 해주고 연인행세를 하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나, 라는 다소 드라마틱한 상상도 가끔 해보았다. 여러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해서 고민했지만, 역시 정답에 가깝나고 생각되는 건, 지금 까지도 내가 믿고 있는 이 사실 하나 뿐이었다. 부승관이 한성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런 다소 막무가내 일들을 그나마 수용하고 받아 들이고 있는 거라고. 둘의 행동에 모순이 존재 하더라도, 그 사이에 애정을 끼워 넣으면 기적처럼 합리화가 이루어진다. 나도 한성지랑 정면으로 맞설 생각으로 부승관의 일에 끼어들고, 그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도 안 갈 막무가내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렸다. 그 모든 건 내가 부승관에 대한 남다르고, 서글픈 혼자만의 애정이 버젓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부승관도 그런 맥락으로 생각하면 조금 더 내 기준에 맞추어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애써 빙빙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내 생각을 반론 할 거면, 정말 그에 합당한 근거 있는 말을 해줘야지. 알 수 없는 말들이나 하고 있으니, 내 혼란은 더욱 가증 될 수 밖에 없었다.


“한성지가 이 학교에 온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네?”
“그야 부승관이랑 내가 이 학교에 다니ㄴ…”
“그 학교에 다닐 때 자살소동 있었대.”


한성지..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너는 그때 니가 한성지한테 했던 모든 짓들이 얼마나 파장을 일으켰는지 모르는구나.”
“……”
“네가 한성지한테 트라우마가 남은 만큼, 너도 한성지한테 어떤 트라우마를 남긴거야.
한성지 같이 원하는 걸 손도 안 벌리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인생만 살아 온 애가 한 번 벽에 부딪히면 얼만큼 망가지는 줄 아냐? 그것도 자기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한테 그런 짓을 당하면.”
“…한성지가,”


한성지가 자살 하려고 했다고요?
내 입으로 내뱉고 있으면서도 한성지, 자살 이 두 단어 사이의 거리 때문에 너무나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한성지가 전학 갔던 학교가 엄청 시골 쪽 학교인 건 알지. 할머니 있는 쪽으로 보내졌는데  정도가 심하게 통제를 한 모양이더라. 한성지 아빠가 엄청 고지식하고, 엄한 사람이야. 그게 할머니를 닮은 거라 하더라. 딸이 자기딴에는 상상조차 못할 사고를 쳤으니, 갱생하라는 의미로 할머니한테로 넘겨버린거야. 반성 하라는 뜻이었겠지. 할머니가 학교에서 애들이랑 말도 제대로 못 섞게 했대. 전학 첫날부터 한성지가 했던 행적들 모조리 다 학교측에 말해주면서 모든 선생님들에게 특별관리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 게 한성지 아빠랑, 할머니야. 그럼 그 작은 학교에서 소문이 안났겠냐. 전교생이 200명도 되지 않는데. 전교로 쫙 퍼졌겠지. 왕따는 아니었는데, 모든 애들한테 기피 당하고, 무시 당했대. 중학생 부터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쭉. 시골이다 보니까 학교가 많이 없어서 중학교때 애들이 고스란히 같은 고등학교로 올라오니 상황에 별로 변화가 없었던 모양이야. 이때까지와 다르게 아무도 자신을 우상처럼 받들어 주지 않고 문제아 취급이나 하는 학교랑 학생들도 모자라, 사사건건 물 마시는 거 하나까지 할머니가 감시하는 감옥같은 집 안에서 지내려니 한성지는 어땠겠어? 미쳐가는 거지.”
“……”
“그래 우리학교로 전학 오기 두 달 전에 방 안에서 문을 잠그고 손목을 그었대.”


나는 봇물 퍼지듯 충격적인 사실에 말을 잇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전학을 오고 나와 처음 학교 앞에서 재회했을때, 봤던 한성지의 얼굴에는 정말, 전혀 그런 그늘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는데.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심하게 들어 간 건 아니어서 살았는데, 그 집 안에서 난리가 난 거겠지. 아무리 엄격한 부모랑 할머니라도 자식새끼가 자살시도 할 만큼 힘들다는데 계속 거기 있게 놨둘 수는 없었던 모양이겠지. 결국 이 지역으로 전학 가는 건 확정 났는데, 원래 바른고 가려다가 여러 이유로 팽 당하고, 돈만 있으면 다 받아 주는 우리 학교로 오게 된거야. 여기까지가 사실이야.”
“…… 잠깐만, 그럼 그런건 누구한테 들은 건데요?”


최승철 선배는 입술을 한 번 물었다 놓으며 창백한 미소를 지었다.


“한성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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