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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지는 유명했다.
아니, 유명했다는 단순한 표현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있지는 않을까? 왼손으로 느긋하게 쥐고 있던 검은 휴대폰 액정 화면에 불빛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잠금을 푸는 내 손이 절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성지?니네 학교에 그 졸라예쁜애?」
답장이 오기만을 끈기 있게 기다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시덥잖은 글자가 액정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절로 맥이 탁 풀렸다. 졸라 예쁜애. 나는 어제도, 그저께도, 3일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각자 다른 사람 입에서도 숱하게 나온, 그 지긋하고도 단물 빠진 수식어를 오늘도 씹었다. 내가 이때까지 들은 한성지에 대한 이야기라고는 졸라 예쁜애 혹은, 졸라 예쁜데 졸라 착하기 까지 한 애. 고작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한 사람의 평판이 이렇게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 되는 게 가능한 일 이었던가? 마치 어디 기업체에서 소비자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은, 하자 따위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최상의 상품 같다. 따분할리만큼 너무나 완벽하고 밋밋해서, 오히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아무리 긁어 모아도 부스럼 하나 남기지 않는 한성지를 보며,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기대한 한성지는 고작 그런 예쁘다, 착하다 따위의 당사자에게 불필요 할 미사어구들로 정의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는데. 애초에 내가 굳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될 크고 작은 수고 까지 감수 해가며 조금씩 물 밑 작업을 친 이유는, 한성지가 숨기고 있을 그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수의 누군가에게 강림하는 예쁘고 선한 모습을 열외하고,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게 잘 숨겨둔 다른 이면이 존재 하는 건지, 그 이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 하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보다 궁금 했던 건, 부승관에게 그 이면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였다.
물론 아직 형태조차도 잡지 못한 상태이다. 사실 섣부른 내 판단 하나로 정말 예쁘고 그저 착하기만 한 게 전부인, 틀에 박힌채로 사는 재미 없는 아이를, 뭐라도 되는 양 과장하며 넘겨 짚을 확률도 높다. 제법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내 감 하나만 믿고 판단 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는 문제였으니까. 특히, 틈만나면 사방에 적을 만드는 내가 모두의 호감을 사버릴 수 있는 한성지를 상대로 모함 하다가는, 도리어 그게 내게 예리한 칼날이 되어 큰 위협으로 돌아 올 수도 있다
나와 다른학교에 다니는 친구 녀석과의 대화는 졸라예쁜애?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어 지지 않았다. 이 이상의 한성지에 대한 이견은 없다는 듯. 명료한 단문을 끝으로 끊어져 버린 대화를 미련 있게 쳐다 보았다.
사실 근 일주일 간 내가 물어보고, 만났던 대다수가 그랬다. 누군가 억지로 입력이라도 한 마냥 고루한 대답이 기계처럼 즉각적으로 흘러 나왔다. 나는 허망해지는 마음을 감추고 교복 주머니 안에 휴대폰을 넣었다. 내가 해야하는 모든 일을 안중에도 없이 제쳐두고, 근 일주일 내내 이 작업에 매달렸는데도 야속하리만큼 그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이 짓은 누군가 하라고 떠민 숙제도 아니었고, 내게 딱히 득이 되는 일도 아닌데... 나는 무얼 기대하고 한성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물색하고, 그들에게 한성지에 관한 걸 묻고 다녔을까. 본인이 잘 모르는 선배가 자신의 뒤를 캐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아무리 착한 한성지라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화가 날 수도 있다.
승관아.
너랑 친한 그 선배있잖아.
좀 이상해.
자꾸 내 뒤를 캐고 다녀.
어쩌면 한성지라면 내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않고, 부승관에게 저렇게 말을 전할 수도 있겠지. 나는 눈을 감고 눈 언저리를 꽉,꽉 힘 주어 눌렀다. 뼈를 섬짓하게 누르는 아릿한 자극이 신경을 타고 전해졌다. 만약, 만약 그 상황이라면 부승관은 나를 어떻게 대할지도 의문이 든다. 서슬 퍼런 눈으로 왜 내 여자친구 뒤를 캐고 다니냐고 화를 낼까? 그냥 아무 언동 없이 나를 무시하기 시작할까? 어쩌면 혹시 형도 성지를 좋아 하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다. 조금은 씁쓸한 웃음이 튀어 나왔다. 나는 부승관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우울함의 원인이 궁금했었다. 늘 짓고 있는 칙칙한 회색의 표정과, 어딘가 기죽어 있는 소슬한 뒷모습, 지나치게 염세적인 태도라던가... 그 모든 밑천이 대체 어디서 튀어 나오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한성지와 함께 있는 부승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무언가 해답을 어렴풋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열기 어린 눈을 감추지 않았던 한성지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 순간, 그건 더욱 확실해졌다. 끊어져 있던 연결고리가 다시 연결 된 느낌.
분명 정답이 있는 곳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고단한 길을 돌아 돌아,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온 기분이다. 아무런 성과 하나 없이.
나는 미세한 진동을 느끼고 다시 빠르게 주머니 속 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방금까지 더 이상 답이 없던 친구에게서 카톡이 하나 더 와 있었다.
「근데 내아는 형님은 한성지를 한성깔이라 부름ㅋㅋㅋ애가 보기보다 성깔있다고 한성깔이라 부른대」
나는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문자의 배열을 뚫어 지게 쳐다 보았다. 낡고 케케 묵은 지루한 패턴을 깬 새로운 흐름이 판을 가르고 등장했다. 나는 더운 숨을 내뱉었다. 혹시나 너무나도 집요하게 쳐다보면 겨우 얻은 이 소중한 글자들이 꽁무니를 감춰 버릴까, 나는 애써 태연하게 시선을 떼고 재빠르게 타자를 쳤다. 저 너머에서 학교 종소리가 어렴풋 들리고 있었다.
「그 형이 누군데」
_
성깔이? 애가 좀 무섭지.
난 뭣도 모르고 좋아한 적도 있었다니까.
아니 친구들끼리 당구장 갔다가 그 앞에서 처음 만났는데, 아니 무슨 이때까지 살면서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예쁘고 귀여운 애가 휙, 지나가는거야. 와, 쟤는 절대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딱 들대? 그래서 뭐 딴 말 할 필요 있겠냐. 오질나게 챙기던 가오 그런거 다 갖다 버리고 번호 좀 달라고 추근덕댔지. 근데 얘가 꼴랑 중딩 주제, 존나 나같은건 거들떠도 안 보고 개무시 하면서 지나치는 거야. 그럼 괜히 용기 내서 나댄 내 입장은 어떻겠냐? 좆나게 빡치고 열 오르는 거지. 중학교 1학년 짜리 번호 딴 것도 내 딴에는 졸라 용기 내서 한 짓 이었는데, 애들 다 지켜 보는 앞에서 완전 개씹힘 당했으니까. 어버버 하고 있다가, 너무 쪽팔려서 상황 좀 모면 시켜 보겠다고 뒤에서 좀 욕을 했지. 그렇게라도 안 하면 분이 안 풀릴 것 같았거든. 아~ 나라고 모르겠냐. 존나 찌질하구 없어 보이는 짓이었다는 거. 근데, 씨발 존나 쪽팔려서 머리가 하얘지는데, 대가리에 찬 게 욕 밖에 없는 걸 어떡하냐. 그래도 분명 내 딴에는 조용히 욕을 한다고 했는데 그게 성깔이 귀에 들렸나봐. 갑자기 뭐가 눈 앞으로 홱, 날라와서 봤더니, 뒤돌아서 가고 있던 성깔이가 졸라 열받은 표정으로 서 있는거야. 보니까 성깔이 가방이 내 눈 앞에 떨어져 있고. 아 나는 좆됐구나 싶었지. 걔 노려 볼 때 눈 장난 아니거든. 너 안광아냐? 무슨 짐승 눈에서 볼 법한 안광이 나와 눈에서. 뭔가 표독스럽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순간 좀 무서웠는데 내 옆에 있던 애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나 보더라고? 갑분싸 됐지...뭐. 뭔 행동을 해야할 지 감이 안 잡히는 거.
성깔이가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내 앞으로 엄청 빨리 걸어오면서 지금 뭐라 했어요? 라고 묻는데, 무슨 공포 영화 하나 보는 줄 알았다니까. 근데 또 내가 욕한 건 잘못 했어. 여기서 또 더 깽판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거지. 아 쫄아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처음에 내가 잘못했으니까 일단 미안하다구 했지. 어쨌든 나랑 내 일행이랑 나서서 사과했는데도 계속 화난 표정이더라고? 그래서 그냥 쳐다보고 있었더니... 뭐라했더라? 저 남자 친구 있는데 되게 무례하다 했나? 아무튼 그런 뉘앙스로 말하면서 내 번호를 달라는 거야. 순간 난 졸라 쫄았지. 얘가 무슨 신고라도 할까봐. 그래서 싫다 했더니 신고 같은 거 안하고 그냥 조만간 자기가 연락 할테니까 번호만 달래. 내가 아까만 해도 번호 따고 싶어 했던 졸라 예쁜애가 내 번호를 달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신고고 뭐고, 그냥 주고 싶길래 줘 버렸어. 내 번호 받자 마자 성깔히 표정 다시 존나 평온해지더니 아까 던진 가방만 챙기고 가버리고…
그러고나서 한 3일 지났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 왔길래 혹시나 해서 받았더니, 빙고! 그때 번호 가져갔던 그 학생이라는 거야. 그때 있었던 일은 걍 다 잊어지고 광대가 절로 올라가더라. 나는 존나 기뻐죽겠는데 정작 걔는 전화 걸어 놓고 한창동안 아무 말 안하더니, 갑자기 자기가 남자친구한테 그때 있었던 일을 말했다는 거야. 근데 남자친구가 존나 빡쳐했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대. 그 말이 뭔 말인줄 알겠냐? 나랑 한 판 뜨고 싶다는 말이지. 쫌 당황스러워서 너네 남자친구 뭐하는 새끼냐고 물어 봤더니, 그냥 동급생이래. 중학교 1학년 짜리. 솔직히 그 정도면 해볼만 하잖아. 안 그러냐?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모르는 새끼랑 갑자기 싸움까지 해야하나 좀 망설이고 있었더니, 성깔이가 완전 다운된 목소리로 제가 괜히 남자친구 한테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하다, 오빠한테 피해가는 거 싫은데 저도 중간에서 어쩔 수가 없다… 옥구슬 또르르 굴러 가는 목소리로 사정하는데 또 어떻게 가만히 듣고만 있겠어? 그 날 바로 학교 마치자 마자 바른중 찾아가서 그 남자친구라는 새끼 만났지. 딱 만났는데 와 진짜 한 주먹도 안 돼보이는 무슨 좆밥새끼가 남자친구라고 나와 있더라고? 그래서 옆에 서 있는 성깔이 한테 이 새끼가 진짜 니 남자친구 냐고 한 다섯번은 물었다. 그 새끼 이름도 특이했는데… 무슨 부 뭐시기 였는데… 아 맞아, 그래. 부승관이었어.
암튼 그래도 난 고등학생인데 중학생 이 좆밥으로도 안 보이는 새끼랑 싸워야 하나 솔직히 현타도 왔지. 근데 그 새끼는 날 보자 마자 별 말도 안 하고 쎄한 표정으로 그냥 주먹 먼저 날리더라고. 난 패기롭게 날 불러 냈으니 무슨 욕이라도 먼저 할 줄 알았지. 일단 나한테 선빵 먼저 날렸으니 나도 이제 각 잡고 싸웠는데…
아니, 남친새끼 생긴 건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먹어서는 싸움은 졸라 또 잘하는 거야. 괜히 고딩 상대로 패기 부린게 아니구나 싶었지. 그래도 체급차이가 있으니까 내가 이기긴 했는데. 애가 많이 다쳐 보이니까 좀 무섭고, 혹시 신고 당할까 싶어서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쳤어. 도망치고 난 뒤에 집에 도착하고 나니까 성깔이가 또 전화 했더라? 그때는 진짜 신고 당하는 줄 알고 전화 안 받았다. 근데 계속 전화가 오더라고. 그래서 결국에는 받았더니 엄청 차분한 목소리로 미안하대. 자기 남자친구 때문에 괜히 이런 곳에 나오게 했다고. 남자친구가 자기를 엄청 좋아하고 집착해서 고집을 많이 부린다고. 그래서 그냥 됐으니까 니 남친은 괜찮냐 물어봤더니 괜찮다 하더라고. 그러면서 이제 다시보니 오빠가 너무 마음 넓고 좋은 사람 같다면서 종종 연락해도 되냐고 하는거야. 니 남친은 어쩌고? 졸라 황당해서 되물으니까 이제 오해가 풀려서 괜찮대. 그럼 난 거절할 이유가 없지. 당연히 콜했지.
근데 특이한 건 가끔 성깔이랑 내 아는 친구들이랑 같이 만날 때도 있었거든. 그럼 친구들 중 십중팔구가 성깔이 한테 빠지는 거야. 걔가 홀리는데에는 진짜 천상 뭐가 있나 봐. 하나같이 다 성깔이한테 들이대고, 몹쓸 수작 걸고.
웃긴 게, 그럼 걔네는 십중팔구 부승관이라는 놈이랑 싸우더라고. 성깔이가 일러 바치는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니가 봐도 웃기지 않냐? 처 맞고 다니기만 하면서 걔는 뭘 믿고 기어 오르지... 성깔이가 인기 많은 거 못 견디겠으면 그냥 헤어지던가.
아 근데 왜 내가 성깔이라고 부르는 지 궁금 하댔지? 걔 엄청 착해 보이는데 몇 개월 지켜봤지만 사실 솔직히 가끔 약아 보이기도 하거든? 지 남친이 열받을 거 알면서도 나랑 내 친구들 만나고 다니는 거나, 그것 때문에 지 남친이 싸움 할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막 말리거나 하지도 않고… 내가 봐도 남친이 심하게 처 맞는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는 별 대처가 없고. 막 집착하고 간섭하는 남자친구가 싫으면 그냥 지가 헤어져도 되잖아. 그렇다고 남친을 자기가 엄청 사랑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끊어 내지 않으니까 자꾸 악순환이 반복되는 느낌? 위선적인 느낌?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막 이미지 대로 존나 착해 빠진 느낌은 아니고 내가 느끼기에 가끔 쎄한 부분도 있어서. 그냥 애칭인거지. 한성깔 한다고 성깔이라 부르는 거지.
-
“부승관.”
“네, 형.”
“한성지라는애, 괜찮냐?”
내가 모든 걸 알고 물었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었을까?
나는 한성지의 빈 자리를 너머로 흘끔 쳐다 보았다. 목적도 없이 불러낸 술자리. 최근들어 부승관과 나와 함께 만나는 자리에 끼기 시작한 한성지는 언제나처럼 느긋한 표정으로 따라왔지만, 통금 시간 때문에 다시 미련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할 말을 잃은 듯 눈을 도륵 굴리는 부승관을 쳐다 보았다. 끄덕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는 부승관을 잠자코 지켜 보다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걔에 대해 뭐 들은게 있어서.”
부승관은 꽤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이나 쳐다 보았다. 저 작은 머릿속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나는 부승관 앞으로 숙였던 상체를 다시 세우며 담배를 집어 들었다. 사실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 부승관이 답답하고 초조한데, 그걸 감히 앞에서 내색 할 수 없었다.
“괜찮으면 됐다. 근데, 너”
“……”
“혹시라도 무슨 일이나 고민 같은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혼자 앓지 말고.”
단지 이런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나는 그 당시에 부승관에게 이런 말을 할 명분 밖에는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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