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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필요 하냐?”

 

문을 열고 밖을 나오니, 바로 앞에서 담배 필터를 꾹꾹 누르고 있던 최승철 선배가 나를 흘끔 보며 놀라지도 않고 물었다. 그는 손에 쥔 라이터로 불을 막 붙이려는 참이었다. 나는 괜히 바닥을 한 번 쳐다보다가 최승철 선배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아니오, 끊었어요. 엄동설한이 따로 없는 지금의 날씨만큼이나 쌀쌀 맞은 내 대답에 선배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웃었다. 왠지 이 선배를 따라 나와야 할 것 같아서 허둥지둥 나답지 않게 여유없이 자리를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이게 잘한 일인지, 뭔지 내 스스로도 아리송한 상태였다. 여운이 보이는 분위기어서 그냥 이끌려 따라 나왔는데, 내가 헛물 켠거면 어떡하지? 괜한 불안감에 담배 대신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꽉 쥐었다. 그 짧은 새 얼어 붙어버린 차가운 손에 미지근하고 딱딱한 휴대폰의 감촉이 느껴졌다. 저 옆에서 할 일 없이 멍 때리며 서 있는 나는 관심도 없다는 듯, 선배는 말 대신 애꿎은 담배연기만 뻑뻑 뱉어 내었다. 나는 그 연기속에서 잠자코 침묵을 고수하며 기다려주었지만, 사실 내가 무얼 기대하고 여길 따라 나왔는지 아직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어쩌면 그냥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에 이끌린 것일 수도 있다. 그가 나한테 무언갈 말 해줄 수도 있다는 섣부른 판단에 따라 나왔을 수도 있고. 나는 선배의 손에서 짧아질대로 짧아진 꽁초가 바닥에 수직 낙하 하는 장면을 숨 죽이며 지켜보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나왔던 출입문이 열리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안면만 익숙한 무리들이 경박한 웃음 소리와 함께 왁자지꺽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문 앞에 서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저들끼리 의미심장한 눈빛교환을 하더니, 결국 어정쩡한 고갯짓을 하며 아는 척을 했다.

 

“좀 걷자.”

 

목례 후에 내가 서 있는 자리 옆에서 분주하게 담배타임을 가질 준비를 하는 그들을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으려니, 지금까지 입을 열지 않던 최승철 선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별 반항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김민규, 너 유명하더라.”

 

네? 술집을 벗어나서도 그냥 대화 없이 걷기만 하던 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뜸을 들이면서 꺼낸 말이 도무지 뜬금 없어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확 찌푸리고 되물었다. 선배는 표정 변화 없이 다시 한 번 내게 각인 시키듯 천천히 말해주었다.

 

“너도 참 난 놈이네. 중학교 때도 존나 양아치짓 하며 이름 날리더니.”

“……”

“부승관 좋아한다 했다며.”

 

내 걸음도 멈췄고, 반짝반짝 왔다 갔다 거리던 내 생각 회로도 동시에 멈췄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이렇게까지 감이 잡히지 않은 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갑자기 들어온 한 방의 강한 공격. 나는 여기에 대고 무어라 방어 해야할지 생각했다. 무슨 소리냐고 화를 내고 싶기도 하고, 당신이 뭔데 아는 척 하냐고 한 없이 띠거워 지고 싶기도 하고, 미친듯이 부정하고 싶기도 하고, 그냥 대꾸 없이 가버리고 싶기도 하고, 뭐래 씨발? 한 마디 뱉어 주고 꼽주며 개무시 해버리고 싶기도하고, 미친듯이 긍정하고 싶기도 하고...내가 선택 할 만한 선택지는 많았는데 정작 내가 보여준 반응은 끔찍하게도 나답지 않은 정적이었다. 선배는 걸음을 멈추고 내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게 꼭 나를 시험하는 고문관처럼 느껴져서 껄끄러웠지만, 나는 눈을 애써 피하려고 들지지 않았다. 보나마나 소문을 주워 먹었을 것이다.

 

“엄청 당황하네. 좋아하는걸로 몰아 세울 생각은 없었는데.”

“…그럼 그런 말을 왜 하는데요?”

 


이 선배도 부승관과 똑같다. 사람 속을 은근히 끓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거. 나는 반박할 수 없는 주제로 세상의 청문을 받는 죄인이 된 것만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두를 변명은 많지만 누가봐도 변명일 게 뻔해서 입을 떼면 오히려 의심을 살까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특히 이 선배 앞에서는 그 무엇도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 3학년 실세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올라갈 수 있는 만만한 자리는 아니지. 그냥 저렇게 서있기만 해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조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원체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막 나가기로 유명한 나 역시도 이 선배 앞에서는 원래 성질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턱, 제약이 걸려 버린 느낌이었다. 그럴싸한 변명도 결국 찾지 못한채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저 노려 보고 있었더니, 그는 비웃듯 올라간 입꼬리와 동시에 목소리를 한 단계 높였다.

 

“너 중학교 때 부터 좋아했잖아.”

“뭐라고요?”

 

다시 이어진 그의 말에는 나를 몰아 세울만한 확신이 너무 가득해서 다시 말문이 턱, 막혔다.어떻게 아는거지?

중학교때의 나와 부승관의 사이를 저 사람이 어떻게 아냐고. 하나의 관계도 없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흘러 들어온 수많은 생각들 사이에서 나는 하나의 키워드를 건져 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

“니가 중학교 때 부승관 때문에 무슨 존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다녔는지 까지도 다 알아.”

 

한성지. 그 키워드를 떠올리는 순간, 모든 큐브가 맞춰졌다. 나는 지난번 노래방에서 범상치 않은 텐션을 보였던 최승철 선배와 한성지의 관계를 생각했다. 한성지는 중학교 시절 나와 부승관 사이를 은밀하게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한성지라면 분명 확실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승관을 미끼로 나를 더욱 수렁으로 떨어트릴 궁리를 할 수 있었을테니까. 한성지가 말한걸까? 나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난 한성지를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된 한성지. 분위기는 그대로다. 어딘가 쎄하고 섬뜩한 분위기. 선하게 웃고 있는 인상이지만, 그 속을 파보면 남들에게 언제든 겨눌 수 있는 장전된 총이 있다. 그 총은 숨기고 다녔다가 사냥하기 좋은 표적이 나타나면 망설임 없이 쏴 버린다. 예술적이기 까지 한 한성지의 그 모습은 아직도 세월의 풍파속에서도  흐릿 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오자마자 보란 듯 다시 부승관을 꽉 쥐었으니까. 부승관의 몸과 마음을 흔드는, 유일하고 유일한 존재니까. 부승관을 이용해서 나까지 동시에 맥이고 드는 한성지라면 충분히 타인에게 우리 둘의 관계를 공공연한 비밀처럼 누설할 수 있다. 최승철 선배는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필터를 지근 지근 누르고 깨는 손놀림이 점점 느려졌다. 반응이 없는 나를 흘끔보던 그가 나를 떠보듯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안 궁금하냐?”

“아니요. 안 궁금한데요.”

 

내 입장에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나는 내가 봐도 싸가지 없다 느낄 정도로 짜증을 억누르지 않고 말했다. 나를 배려하지 않는 말에는 나 또한 배려 할 필요 없으니까. 괜히 따라 나왔다는 후회에 젖어 가던 참이었다.

 

“나도 예전에 부승관 좋아했거든.”

 

뭐?

방금까지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짜증이 이번엔 순식간에 증발했다. 나는 일부러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깊숙하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불쑥, 치켜 올렸다. 이렇다 할 변화 없는 표정은 장난을 치는 건지, 진심을 이야기 하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최승철 선배가 부승관을 좋아했다고? 좋아했다고? 문맥상 나와 동일한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초단위로 바뀌어 가는 내 표정을 흥미롭게 관찰 하던 그는 말을 덧붙였다.

 

“중학생 때 잠시 좋아했어. 지금은 아니니까 걱정 마.”

 

그가 뿜는 담배 연기가 내 쪽으로 퍼져 나왔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고장난 센서를 장착한 딱하고 불쌍한 로봇이 된 것만 같았다. 부승관에게 목 매던 상대가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무려 최승철 선배까지 속하고 있었다는 건 사실 믿기지 않는다. 물론 예전부터 최승철 선배가 부승관을 유난히 싸고 돈다는 소문은 존재했었고, 나 역시도 그 사실을 최근 들어 감지 하고 있었지만, 별 유난 없이 아끼는 후배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불현듯 겨울 방학 전에 내가 부승관을 데리러 포이즌에 갔을 때, 갑자기 부승관 앞에 나타난 나를 보고 명백한 적의를 강하게 뿜어 내던 최승철 선배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내 손을 빌려서 까지 그 자리를 빠져 나가고 싶어 했던 곤란한 부승관의 다급한 표정도. 그 후, 걸려 온 최승철 선배의 전화는 받지 않고 부승관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버리기 까지 했다.

정말로 최승철 선배가 부승관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내 입장에서 판가름 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부승관이 어느정도 최승철 선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지금와서 이런 말 하는지 모르겠지?”

 

그는 한참을 생각의 나래에 빠져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 애석하지만 그 말이 곧 정답이다. 나는 모르겠다. 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나도 이제 한성지 옆으로 다시 자리를 찾아간 부승관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하고 있는 시기인데, 어찌 된게 부승관에 관련된 모든 부속적인 것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이 모든 게 부승관을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아웃 해 버린 내가 엎지른 물이기도 하지만. 나는 최승철 선배우 똑같이 부승관을 좋아 한다는 그 씁쓸한 사실 하나로 별다르고, 어설픈 동지애 따위는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와서 자신도 좋아했다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내게 폭로한다 하더라도, 그게 대체 어디에 무슨 변화의 바람을 줄 수 있겠는가. 이미…

 

“모르겠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요. 정작 부승관 본인은 나한테도, 선배한테도 관심 없을테니까.”

“……”

“한성지한테 환장해서 간이며 쓸개며 다 내다 줄 미친놈인데,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자조적인 말을 내뱉고 나니, 오히려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나의 정중앙에 꽂히는 듯 했다. 그래 대체 지금 와서 그 사실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내가 부승관을 좋아하든, 저 선배가 과거에 부승관을 좋아했든 그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미 부승관 앞에 한성지가 다시 한 번 모습을 내보였고, 내 앞에서 여전히 한성지를 좋아한다고 단언했던 부승관은 다시 한성지 옆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아 갔다. 순리대로 흘러간 것이다. 이 모든 상황들이 지금의 현실이다. 과거를 뒤돌아 볼 이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깨부술 수 없는 현실이다.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나는 다시 눈을 돌려 꽤나 의아한 말투로 묻는 최승철 선배를 바라 보았다. 아마 내가 최승철 선배에게서 최초로 보는 진심으로 꽤나 놀란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담배 꽁초를 바닥에 꽉, 소리나게 짓누르며 다시 한 번 확인 받듯 되물었다.

 

“정말 부승관이 한성지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아닐리가 없잖아요.”

 

이제와서 아니라 하기에는 본인이 인정한 명백한 사실이고, 내게 보여준 수많은 모습들이 그 한 가지 진실 만을 이야기 한다. 부승관이 한성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부승관이 한성지를 위해 했던 모든 행동들이 심한 모순이 되어 버리니까. 누가봐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너 존나 착각하고 있나본데,”

“……”

“부승관은 그냥 한성지 한테 일방적으로 그냥 착취 당했던거야. 둘 사이에 니가 생각하는 그런건 없어.”

“……무슨 소리예요, 그게?”

 

그는 무서울 정도의 무표정으로 나를 노려 보았다. 꼭 영문도 모른 채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를 강하게 힐난 하는 듯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너 모르쇠하는게 존나 짜증나서 두 발로 못 걸어다니게 패고 싶은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너한테 건 기대가 아까워서 참는 거니까 닥치고 따라와.”

 

최승철 선배는 더이상 대꾸 할 가치가 없다는 듯, 나를 앞질러 성큼 성큼 걸어갔다. 나는 다시 한 번 질서 없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는 머리를 나도 모르게 손으로 부여 잡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걸음은 최승철 선배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엄습하는 조마조마하고 나약한 불안함을 잠재우려 애써 노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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