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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냐. 오늘 동구형이 한 잔 하자는데.
“…야, 내일 개학이잖아.”
- 지랄한다. 쫌, 등신같이 집에만 처 박혀 있지말고 나와. 6시에 이싸 알지?
“야, 잠ㅁ...”
아, 개새끼야! 몽롱한 정신으로 뒤늦게 외쳐 보아도 이석민은 묵묵 대답, 돌아오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뜬 채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액정을 확인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남의 말과, 흐름은 모두 끊어먹는 맥커터 이석민답게 통화는 일찌감찌 깔끔하게 종료 돼있었다.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문자로나마 육두문자 퍼레이드를 날려 줄까, 싶었지만 이내 그럴 의욕조차 소멸 되고 말았다. 그래, 잠에 덜 깨서 수신인 확인도 안 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전화를 받은 내 죄지. 나는 머리 위로 휴대폰을 던지고 베게에 얼굴을 거칠게 파묻었다. 등허리가 제법 쌀랑쌀랑 하다 싶었더니, 돌돌 싸매고 잤던 이불이 어느새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넝마가 된 모양새로 처박힌 이불을 보다가,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그래, 해가 중천 인거 보니 오늘도 언제나 그랬듯 기상시간은 오후 3시를 넘겼나보구나. 나는 자기 전에 갑갑해서 책상에 대충 던지며 처박아 놓은 겉옷을 야무지게 챙겨 입고 거실로 나섰다.
“일찍 일어났네?”
티비에 나오는 이름 모를 예능을 보며 뭐가 그리 웃긴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던 엄마가 거실로 나온 나를 휙, 뒤돌아 보시며 말했다. 일찍 일어났다고? 뒤이어지는 내 기막힌 뒤물음에 엄마는 거실에 걸린 시계를 흘끔 곁눈질 하셨다. 1시 밖에 안됐잖아. 나도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을 시계로 돌렸다. 작은 바늘은 숫자 1, 큰 바늘은 막 숫자 5를 지나치고 있었다. 맞네. 항상 오후 3시 넘어서 비척비척 일어나 늦은 점심을 주워 먹는 나로서는 꽤나 이른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괜히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정수기 쪽으로 직행해서 컵을 집어들었다. 아, 시원하다. 아빠가 낼 법한 구수한 소리를 내며 냉수를 들이키는 나를 보던 엄마가, 방금까지만 해도 잘 보고 있던 티비를 리모콘으로 미련 없이 꺼버렸다. 거실에 잔잔하게 존재하던 소음이 단숨에 꺼지고 나니, 남는건 불안한 적막의 그늘이었다. 나는 컵을 싱크대에 조심스레 넣으며 내 안색을 살피는 듯, 심각하게 노려 보는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아니 근데 왜 이 시간에 엄마가 계시지? 엄마는 모 증권회사 영업점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평일에는 눈코뜰새 없이 일로 바쁜 엄마가 이 시간에 여기 있을리가 없을텐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한동안 집에서 은둔 생활 아닌 은둔 생활을 했더니 날짜랑 요일 개념도 흐려진다. 게다가 내일은 월요일이자, 더럽게 짜증나는 개학이고…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괜히 멋쩍은 표정을 지은 채 엄마의 눈초리를 필사적으로 피해보려 했으나, 눈치 빠른 엄마는 오늘 아들이 어딜 쏘다니며 나돌아 다닐지 이미 간파한 상태인듯 했다. 한참의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지고, 엄마가 냉냉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 나가?”
“…아무데도 안 나가는데?”
“누굴 속이려고. 너 또 어디 나쁜짓 하는 새끼들 만나러 가지? 한동안 잠잠하게 집에 처 박혀 있더니, 또 어딜 기어나가!”
나는 눈을 슬그머니 피했다. 나는 엄마를 좀 많이 무서워 하는 편이다. 그 무서움을 이기고 중학교 시절 때는 반항과 유세를 떨어댔지만, 항상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한 구석에 확고하게 존재 했다. 외동아들이 헛물 켜는 짓을 일삼으며 엇나가는건 절대 두고 보지 못하시는 엄빠는 초딩때 부터 온갖 수단으로 내 기강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셨지만, 그 당시 나는 지지리도 말 안듣는 아들이었다. 물론 고딩 들어서 갑자기 일전에 전 지역구에 내 이름 석자 날리고 다녔던 과거를 청산하고 얌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기때문에 조금은 마음을 놓으신듯 하지만, 끝내 끊지 못했던 담배와(물론 지금은 금연중이다) 가끔 있는 술자리, 잦은 외박들을 아직도 부모님에게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중학생 때는 그 사사건건의 간섭이 미치도록 짜증나서 가출도 몇 번 하고, 통보없이 집에 며칠 동안 안 들어 가기도 했는데, 언제 부터인지 이제 그런 간섭을 받아도 그때처럼 반항 서린 짜증 치밀어 오르기 보다는, 그냥 눈치를 보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도 심하게 다쳐 온적 없던 내가 그때 오장효랑 싸우고 쓰러져서 처음으로 입원 했을 때, 엄마랑 아빠 둘 다 한 걸음에 달려와서 병원이 떠나가라 우시며 가슴 아파 하시는 걸 보고 난 뒤부터. 그게 내가 양아치 짓을 접은 이유들 중 하나 이기도 하다.
“너 진짜 철 언제 들래? 너 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이야. 이제까지 너 하고 싶은대로 막 살았으면 됐지, 언제까지 이런 짓 하고 다닐거야? 또 그 동수인가, 뭔가 하는 그 조폭같이 생긴 놈 만나러 가는거지?”
“동구야, 엄마. 그리고… 그 형은 착해.”
“뭐? 웃기지도 않네. 사람 패고 지역 뉴스까지 탄 놈이 착하긴 뭐가 착해? 이제 그런 애들 너 안 만날 때도 됐잖아.”
“...동구형 내년 졸업해. 졸업하고 나면 연 끊을 형인데 그냥 얼굴이나 보러 가는거지. 게다가 나 이번 방학에는 대부분 얌전히 집에 있었잖아. 잠깐만 놀다가 금방올거야.”
변명을 하면서도 내 고개는 땅으로 더욱 더 떨어졌다. 늘 방학 때마다 나돌아 다니기 바빴던 아들이 이번 방학에는 집에만 처 박혀 있으니 나름 흡족해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개학을 앞두고 또 , 그것도 엄마가 지독시리도 싫어하는 동구형을 만나러 나가는 낌새를 보이니 잠시 안심하며 가라앉았던 열이 다시 훅 오른게 틀림 없다. 아, 이석민 이 새끼가 전화만 안했어도. 사실 무시 하고 안나가 버려도 되는 일인데, 오랫동안 집에서 멍하니 이상하고 우울한 공상만 하고 있었더니, 안 그래도 여러모로 상한 몸과 마음이 더 피페 해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좀이 쑤셔서 밖의 바람을 쐬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한참의 신경전 아닌 신경전 후에야 엄마의 한숨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곧 한 수 접어주겠다는 신호였다.
“동구인가, 뭔가 그 놈은 졸업하면 다시 안 볼 애는 맞는거니?”
“…어.”
“너 내년에는 절대 이렇게 안 둬. 짤 없어.”
사실 동구형이 졸업하고 다시 안 본다는 장담은 못한다. 연 끊으면 삐질 형이라. 하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착한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말 없이 다시 티비를 켜셨다. 아까하고 있던 예능이 끝나고 광고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씻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열려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붙잡기 전 까지는.
“그러고 보니 걔랑은 요즘 안 놀아?”
“누구?”
“그 저번에 집에 데리고 와서 자고 간 친구.”
네 친구 치고는 착하게 생긴 애 한 명 있었잖아.
아,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 문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승관이다. 애써 생각에서 밀어 버리고 있었던 이름이 엄마로 인해서 다시금 얼떨결에 상기 되고 말았다. 솔직히 급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것 처럼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걔랑 별로 안 친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재운 거고.”
“안 친하다고? 중학생때부터 놀던 애잖아. ”
“알던 애는 맞는데 안 ㅊ...”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 나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말을 멈추었다. 걔랑 나랑 중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인 거 엄마가 어떻게 알아? 나는 멍하니 되물었다. 부승관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한 번 이라도 우리집에 부모님이 계셨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내 기억에는 한 번도 없었다. 부승관도 꺼려했고, 평일 오후 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집에 계실리 만무했다. 또 어쩌다 계신 날은 의식해서 일부러라도 부승관을 집에 데려 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빈틈을 뒤져 보아도, 엄마가 부승관을 볼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겪고 있는 혼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고개를 완전히 내 쪽으로 돌리며 갸우뚱 해보였다.
“그럼 내가 생각 하는 애가 걔가 아닌가? 왜, 그때 너 중학교 때...맞고 와서 입원한 그 날에, 우리 집 찾아 왔었던 친구. 걔가 저번에 온 그 친구 아니니?”
“…그때 찾아 온 애가 있었다고?”
가슴에 작게 돋으려 하는 설마, 라는 가정을 밟으려 했다.
“응. 그때 비 홀딱 맞고 찾아 와서는 너 있냐고 엄청 다급하게 묻던 친구 한 명 있었지. 내가 말 안했었니? 그 이후 얼마 안 돼서 바로 너 다쳐서 입원했다는 소식 듣고 엄마가 정신이 없었나 보다. 그래... 걔가 유독 기억이 나는게, 네 친구치고 엄청 얌전했거든. 너 없다 하니까 엄청 힘 빠져 하면서 돌아가더라. 엄마 기억으로는 지난 번 자고 간 그 애가 그때 그 친구 맞는 것 같은데? 아니니? 네 친구 중에 그런 스타일은 드무니까 엄마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내가 다친 날이라면 오장효랑 싸웠던 그 날이다.
무언가 깨닫는 순간, 지금 내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는게 다행이라는 무의식적 생각이 스쳤다. 손에 뭐라도 쥐고 있었다면, 필시 바닥에 부주의 하게 떨어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 당황하고, 혼돈스러운 내 모습을 꼼짝없이 엄마 앞에서 노출 시켰을테니까. 나는 눈을 깜빡이며 내 반응을 의아한 듯 지켜 보는 엄마를 뒤로 한 채 화장실 문을 태연하게 열었다. 백화현상이 일어난 머릿속은 정신없이 서로 다른 기억들이 억세게 맞물려가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중학교때는 친했지.”
내 의지로 간신히 이어진 대답과 동시에 문을 쾅, 소리나게 닫아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세면대로 달려가 물을 틀었다. 뿌옇게 보이는 물이 콸콸, 우렁찬 소리와 함께 거세게 토해져 나왔다. 멍하니 앞에서 물이 세면대로 줄줄 흘러가는 모양을 보고 있다가, 두 손을 물줄기 사이에 잠자코 대어 보았다. 올곧게 수직으로 흘러 나오는 굵고 억센 물줄기가 내 손바닥 위에 닿자 마자 작은 자극과 함께 물이 가느다란 모양으로 사방곳곳 흩어졌다. 나는 축축하게 젖어버린 손바닥을 얼굴에 대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 번을 물길에 내 얼굴을 씻어냈다. 그 무의미한 행동들로나마 내 복잡한 생각들을 비우기 위해서.
“말이 안 되잖아.”
고개를 들어 정면의 거울을 올려다 보았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물을 뚝뚝 흘리고 있며 미친놈처럼 증얼 거리고 있는 못난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힘주어 쓸어 내리며 다시 한 번 내뱉었다. 말도 안돼.
말도 안 돼. 그 날 부승관이 우리 집에 왔었다고?
말도 안 된다. 엄마가 단순한 착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부승관이 아닌 다른 녀석이 왔겠지. 나는 나를 달래며 애써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 시키려 했다. 그 날 우리 집에 찾아 왔을거라 짐작 가능한 인물이 없더라도, 그게 절대 부승관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부승관만은 아니어야 한다. 내가 누굴 위해 그런 사건에 자발적으로 휘말려 들었는지를 떠올리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상식적으로 자신의 공간 속에 발 한 짝 조차 디딜 틈도 주지 않고 가버렸던 놈이 그렇게 쉽게 나를 다시 찾을리 만무하지 않는가. 안 그래? 그 하루 사이에 마음을 그렇게 쉽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꿀리가 없잖아.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는 일에 이렇게 까지 평정을 빼앗겨 버리면, 통탄할 정도로 비참한 일이다. 아직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 부승관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니까.
-너 예전에,
-......
-나 대신 오장효랑 싸우러 갔었지.
등신새끼.
불현듯, 겨울방학 전에 부승관이 내게 꽂았던 비수가 둥둥 떠다니며 부유 하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화가 난것 같기도 했고, 어느정도 씁쓸한 것 같기도 했던, 묘하게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져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때, 짧은 순간 나를 사로 잡았던 위화감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그때 와서야 꺼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걸 깨닫고 나니 설마, 하는 생각이 다시 보란듯 나를 거세게 파고 들었지만, 나는 다시 틈을 주지 않고 밀어 냈다.
그 이유가 어찌 됐건, 결국은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냉정하게 본다면 진실이 무엇이든 지금 냉전상태인 나와 부승관의 관계를 바꿀 수는 없다. 그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일은 이미 효력을 뻗칠 수 있는 시효마저 넘어서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정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더는 구차하게 굴면서 까지 알 권리를 가지고 싶지도 않다. 작은 미련이라도 남으면 그게 나를 지금보다 더 잔인하게 겨우 버티고 있는 뿌리까지 갉아 먹을 것 같아서. 그래. 나는 더이상 알고 싶지 않다. 혹여 그게 눈 가린 진실이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제 정말로 부승관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꼭지를 잠그는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
뭐냐?
오랜만에 보는 주인 아저씨와 친밀한 인사를 나눈후에 익숙한 자리를 찾아 가자 마자, 정면에 보이는 뜻밖의 얼굴을 발견 하고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나는 육성으로 소리를 내는 대신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이석민에게 표정을 구기며 입모양으로 물었다. 이석민은 그저 눈썹을 까딱 하며, 어깨를 한 번 으쓱 해 보이는 게 전부였다. 예상치 못한 난감한 일이 있을 때 나오는 이석민 특유의 버릇이다. 나는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입고 있고 있던 패딩을 벗었다. 주변 인기척도 알아 차리지 못할 만큼 왁자 지껄한 소음에 묻혀있던 동구형이 내 존재를 드디어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어, 민규 왔냐. 너 요즘 왜 이리 조용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방학 때 뭐하고 돌아 다녔냐?”
동구형이 제법 친밀하게 말을 걸었지만, 나 또한 친밀하게 응답할 기분은 아니었다. 내게 시선이 쏠리자 마자 시장판 같았던 주위소음이 썰물 처럼 밀려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 괜히 나왔나. 새삼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읽고 나니, 일말의 후회에 젖어 들어갔다. 내가 부승관을 좋아한다고 선포한 이후부터, 일단 내가 무서워 대놓고 나를 까거나 무시하지는 못하지만 썩 탐탁지 않은 눈빛을 보내는 띨띨이들이 여기 다 모여있다. 사방에서 트집잡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새끼들 가득한 이 가시 방석에서, 내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며 기분을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동구형이 주최한 술자리에 갑자기 낀 저 이방인은 또 뭐고? 나는 웃고 있는 입꼬리와 다르게 제법 매섭고 집요하게 나를 쳐다보는 이방인, 최승철 선배를 그제서야 똑바로 마주보았다. 아니, 얼마 전 까지 동구형이랑 싸우니, 마니...죽이니, 살리니 패싸움이라도 벌릴 참 이었던거 아닌가. 내가 집에 짱 박힌 방학 동안 또 뭔 일이 있었길래 갑자기 또 무슨 연유로 둘이 붙어 먹고 술자리 까지 함께 하고 있는거지? 궁금증이 들이 닥쳤지만, 대놓고 물어 볼 수는 없다. 나는 자조적인 미소로 동구형에게 잘 지냈다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석민 옆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는 다시 꺼져 있던 볼륨 스위치가 켜진 듯, 다시 시끄러워 지기 시작했다.
“안녕.”
이석민 맞은편에 앉아있던 최승철 선배가 나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대답 대신 옆에 앉아 있는 이석민을 넌지시 바라 보며 눈짓했다. 대체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모르쇠를 시전하는 이석민의 표정을 보아하니, 납득 할 만한 설명을 듣기를 어려울 듯 했다. 나는 이해를 포기하고 고개를 까딱하며 간단한 목례를 했다. 방학 중에 우연찮게 로라노래방에서도 마주쳤었는데, 또 이런 곳에서 다시 한 번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무려 동구형이 주최한 술자리에서. 3학년 실세 양대산맥이 같이 만나서 사이좋게 술잔을 나눈다니. 이건 정말 다른 애들이 알게 된다면 기함할 일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는 것은 잦은 일이라지만… 이번은 정말 놀랐다. 그런 내 마음을 해소 시켜 주듯 동구형이 다시 나를 향해 데시벨을 높였다.
“야, 김민규야. 당황했냐? 사실 너 덕분에 최승철이랑 친해졌다. 너 아니었으면 부승관 털면서 이 새끼랑도 싸울 뻔했는데. 그 날 이후에 싸울 의욕 사라져서 그냥 불러 술 한잔 같이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새끼 참 괜찮은 놈이더라.”
...굳이 그게 내 덕분일 일인가. 나는 그냥 부승관이 털리는게 존나게 싫어서 솔직하게 나섰을 뿐인데. 그게 저 두 명을 결속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는게 떨떠름 해졌다. 내가 뭐라 반응을 하지 못하고 그냥 굳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으려니, 이석민이 나를 툭툭 치며 테이블 밑에 자신이 쥐고 있는 휴대폰을 가르켰다. 그에 따라 나는 자연스레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석민은 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걸 인지 하자 마자, 바로 손가락을 올려 메모장을 켜더니 빠르게 타자를 쳤다.
[야 사실 오늘 모이기전에 여기 너부르자고 한거 최승철선배임
다른ㅅㄲ들 다 부르기 싫어하고 동구형이랑 나도 그런 분위기알아서 괜히 너불렀다가 너 기분 잡칠까봐 안부르려고했는데
너도 꼭 부르라더라 저 형이. 좀 이상하지 않냐??
우리그때 노래방 찾아간것 때문에 존나 밉보인건가]
액정에 쓰인 이석민의 중구난방한 메모를 읽자마자,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치켜 올려 다시 한 번 최승철 선배를 바라 보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도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최승철 선배와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눈을 정면으로 다시 한 번 바로 보는 순간, 그 공간 안의 주위 소음이 점차적으로 자연스레 멎어 가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괜한 두려움과 긴장감이 나를 스치기 시작했다. 내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최승철 선배는 자신의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보였다. 오른손에는 잔뜩 구겨진 담배곽이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게 무슨 신호인지 알아 차리기도 전에, 최승철 선배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구야, 나 담배 좀.”
의자에 올려둔 겉옷을 챙기던 최승철 선배가 나와 다시 눈이 마주치자 턱짓으로 밖을 가르켰다. 나는 누가 명령을 하기라도 한듯, 바로 쇼파 뒤에 처박았던 패딩을 집어들고 일어났다. 내가 막 일어났을때, 최승철 선배는 이미 저만치 밖을 빠른걸음으로 나서고 있었다.
“저도 담배 좀 피고 올게요.”
내 말을 듣던 이석민이 내 팔목을 잡았다. 야, 너 담배 끊었지 않냐? 황당한 표정으로 묻는 이석민을 무시하고, 나는 최승철 선배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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