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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늘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 마종기, 꿈꾸는 당신
-
김민규, 김민규...
대한민국 누구라도 들어봄직한 흔한 이름을 가져서, 내겐 더욱 더 이질감이 드는 김민규. 이름이 흔하다는건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내 앞에 나타난 정도 중학교 3학년 김민규라는 인물은 내가 겪어왔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주관이 뚜렷하고, 곤혹스러울 정도로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내 머릿속 중심을 파고 들어가보면 항상 진아가 있었다. 영원할 것처럼 잔잔하게 머물렀던 진아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차츰 흔적을 지우고 난 뒤에는, 성지가 초연하고 고고하게 나타나서 당연한 듯 그 자리를 오래, 오랫동안 각인을 새기며 독식 했다. 그리고, 아직 성지가 떠나지도 않은 그 비좁은 공간에, 누군가가 자리를 비집고 존재감 있게 치고 들어왔다.
그게 김민규 였다.
-
그 사건 이후에 김민규가 나를 찾아온 것은 어쩌면 예상 했던 일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했다. 두 갈래로 나뉘어서 예상을 했던 이유는, 내가 짐작한 김민규라는 인물은 내가 한 충격적인 행위에 대한 보복을 당연시 가할거라 생각 했기 때문 이었다. 김민규는 내 눈으로 그저 짧은 시간에 한 순간 본게 전부지만, 그 찰나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존심과 더불어 자존감이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 다는 신조와 남다른 프라이드를 가진 녀석 답게 자신이 피해보고, 굽히고 들어 가는걸 절대 못 견뎌 하는 것이다. 나와 붙었던 그 날에도 자신이 했을 예상과 크게 다른 내 외관에 대한 당황감은 잠깐 표출 했지만,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철저하게 이성을 되찾고 처절히 나를 적으로 인식하며 망설임 없이 짓이겼다.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적은 무참하게 밟아 버리고, 분명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꾼 짓을 하며 자신을 내던져 불살랐던 대상인 성지가 자신의 기대와 어긋나는 본심을 드러내니, 단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내팽겨쳐 버리지 않았던가. 김민규는 중학생 답지 않게 영리하고 실속 있는 판단을 내리는 인물 이었다. 서열 상위에서 오랜 시간동안 점거하면서 만들어진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 말투와, 몰인정하고 냉정함을 가지게 된 녀석인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견딜 수 없는 비참함과 착란으로 젖어 키스를 해버렸고, 김민규는 그 이후 누가봐도 뻣뻣하게 굳어서 내가 혼란을 그리며 무너져 우는 것을 똑똑히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그곳에 그대로 두고 뒤돌아 말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 그 날 김민규가 대응한 일은 그것 뿐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예상하는 김민규가 할 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연히 김민규가 또 한 번 나를 찾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김민규는 2주 만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왜 왔냐?”
“뭐긴 뭐야. 씨발아. 그때 니가 한 그 짓 책임 물으려고 찾아왔다 왜.”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모르는 척 했지만, 김민규가 내 앞에 나타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일주일만에 다시 본 교복을 입은 김민규는 누가봐도, 어떻게 봐도 그냥 양아치 스러워서 왠지 모르게 웃기기도 했다. 현실 감각 없이 치이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는, 불현듯 다시 앞에 나타난 김민규를 보며 짧게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김민규에게 난 무얼 해줘야 하지? 그냥 분 풀릴때까지 때리라고 맞아줄까? 돈을 줄까? 신고하라 할까? 보는 앞에서 콱 죽어줄까?
그 날 이후 성지는 김민규라는 존재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운 것 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잠깐 돌려졌던 성지의 흥미 대상이 다시 나로 포커스가 맞추어진 것이다. 난 다시 내게로 돌아와 내 옆에서 잠시 멈춰 있었던 많은 것들을 능숙하게 조장하는 성지의 존재에 늘 그랬듯 지독스러운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굴종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김민규에게는 축하할 일이다. 너는 나와도, 성지와도 관련 없는 외부 인물로 다시금 밀려 났다는 이야기니까.
물론, 그건 적어도 내가 그 날 충동적으로 김민규에게 키스를 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진다. 그 날 성지도 집으로 가고, 김민규도 그냥 나를 보지 않고 집으로 가버렸다면, 적어도 남아서 내게 호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착란을 느낄 틈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 둘의 접점은 다시 처음처럼 희미해졌을 것이다. 찝찝한 불순물으로 남은 그 날의 나와 김민규만의 비밀 하나가 서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주는 계기가 된것이다. 난 그에 합당한 대가를 김민규에게 치뤄줘야 한다는 건 각오 했다. 그건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너 번호 좀 줘.”
내가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건, 김민규가 나를 표적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돈을 받는 것도, 나를 때리는 것도 마다한 김민규는 내게 가까이 다가 왔다. 지는 해를 등지고 그 눈에 띄는 큰 키로 성큼 성큼 다가 오는 모습은, 그 옛날 옥상에서 지는 해를 등지고 웃고 있었던 진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난 긴장을 풀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민규가 이번에는 본인이 나서서 주도적으로 내게 키스를 했을때도 예상 했던 것처럼 받아 들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에 이어 다시 반복된 또 한 번의 짧은 입맞춤 끝나고 나서도, 김민규에게 왜 내게 키스를 했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냥 쌤쌤 친거라 생각 하며 스스로도 자꾸만 드는 모순점을 파괴해서 맥을 풀었고, 그 생각을 쉽게 입 밖으로 뱉었다. 하지만 김민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김민규가 내게 번호를 요구 하고, 빌미로 삼았을때 나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 됐다는 걸 깨달았다. 김민규는 내게 위험한 호기심을 가졌다는 걸.
“곱게 안 알려주면 성지한테 물어 보는 방법도 있지.”
“...미친새끼지, 너.”
“나 아직 성지랑 안 깨졌어. 깨지고 싶어도 한성지가 아직 완전히 날 놓아준 것도 아니라서. 이 상황에서 한성지한테 네 행동 꼬바르면 피해 보는건 순전히 너 뿐이지. 나는 한성지한테 좆도 관심 없어서 까이든 말든 상관 없지만. 너는 좋아하잖아, 한성지.”
“너 나한테 대체 왜 이래? 나 좋아해?”
“아니. 그냥, 재밌잖아.”
“......”
“그러게 괜히 키스 해가지고 사람 시험에 들게 한건 너니까 그냥 네 업보겠거니 생각해라.”
내가 저지른 행동을 절절히 뉘우치게 하는 말이었다. 성지를 가지고 나를 시험하던 그 말 앞에서 대놓고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주저앉고 싶을 만큼 무서웠다는걸 너는 모르겠지. 김민규, 너는 성지가 어떤 앤줄 몰라. 너는 네가 성지의 마수에서 벗어 난 걸 얼마나 감사 해야 하는지 몰라. 너와 내가 이런 이상한 관계로 얽히면 얼마나 진저리 나는 꼴을 겪게 되는지 너는 몰라.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거부할 수 없는 구실을 잡고 나를 만나려는 것 뿐이잖아. 나는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지우며 김민규의 휴대폰을 빼았듯 쥐고 내 번호를 입력했다. 손에서는 식은 땀이 나고 있었다. 김민규는 내게서 휴대폰을 받아 들며 나를 내려다 보았다. 눈이 정직하게 마주쳤다. 내가 가지고 있는 깊고 어두운 심연을 정 가로 지를 듯한 그 김민규 특유의 눈빛이 고스란히 내게 머물렀다. 나는 그 눈이 괴로웠다.
김민규,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근데 왜 넌 마치 내 모든걸 알고 있는 것처럼, 왜 그런 눈빛으로 날 봐?
“연락할게.”
연락하지마.
-
김민규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그 후로 부터 한 달 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이다.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아 만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우연히 김민규 동네에서 벌어진 술자리 안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싸움에 휘말렸다가, 싸움의 스케일이 커지고 경찰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덜컥 겁이 나서 도망쳐 나온 자리에서 김민규를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들키지 않을 것 같은 회색 건물 뒤에 몸을 숨기려 뛰어갔더니, 그곳에 잔인한 우연이 겹친 것이다. 정말이지 경찰보다 피하고 싶었던 김민규가 있는 걸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아까 내가 싸웠던 시비털린 애들의 교복이 익숙하다 싶었더니, 정도중 패거리 였나 보다. 뒤돌아 서있어 나를 발견하지 못한 김민규가 눈치 채기 전에 다시 뛰어서 도망갈까, 그런 생각이 은연 중 머리로 흘러 들어 왔지만, 뇌에서 그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나는 무심코 김민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김민규는 갑자기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에 깜짝 놀란건지 모양 빠지는 비명을 짧게 지르며 뒤돌았다. 또 한 달 만에 김민규는 나와 재회했다.
“왜 소릴 질러. 조용히 해. 너 여기서 뭐하냐?”
“하... 씨발, 깜짝이야.”
날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는 그 모습이 순간적으로 우스워서 웃음이 흘러 나올 뻔 한걸 꿋꿋이 참았다. 김민규는 날 잠시 내려다 보더니, 금세 의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너 저기서 싸움하고 있었던거 아냐?”
“도망쳐 나왔어. 안 걸리고 조용히 나갈 수 있었는데... 주인한테 들키는 바람에 존나 튀었지.”
“우리 애들이랑 싸움은 왜 한거야?”
“...먼저 앉아 있었는데 지네 자리라고 시비 털었대. 나도 몰라. 늦게 왔더니 쌈질 하고 있길래 얼떨결에 낀거라. 야, 너도 저거 갈때까지는 나가지마.지금 잠시 동안은 이 주위에 정도중, 바른중 교복입은 애새끼들 보이면 다 단속할거야.”
꽤 오지랖 섞인 말을 하는 구나, 내가. 왜 그랬지. 김민규를 보면 왜인지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들과 말들은 나를 꽤나 궁지로 몰아 넣는다. 자중해야지. 성지를 빌미 삼고 있는 녀석에게 또 다른 건덕지를 보여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 하기가 무섭게 날 보고 있던 김민규가 긴 손을 뻗어 내 입가를 쓸었다.
왜 항상 이렇게 예고없이 훅 치고 들어오지, 이 새끼는?
나는 본능적으로 움츠려들며 김민규를 올려다 보았다.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김민규는 썩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눈빛으로 말했다.
“너 피나.”
내 얼굴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김민규의 오른속 엄지 손가락에는 내 피가 새긴 엷은 자국이 고스란히 묻어져 있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김민규의 그 행동 하나 때문에 온 몸에 순식간에 열이 훅, 오르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등으로 아까 김민규의 손이 배회했던 나의 입가를 몇 번 쓸었다. 이상하게도 김민규가 만졌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그 이상한 기분을 감추려 일부러 더 쌀쌀 맞은 대답을 흘렸다. 신경 꺼.
김민규는 내 정없는 대답에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때 부터 느꼈던거지만, 이 녀석은 매번 내게 집요할 정도의 시선을 흘린다. 성지한테도 그랬을까? 나를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적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그 미적지근하고, 고집벽 있는 끈질긴 시선의 조각이 나를 들쑤신다.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 그 눈과 마주하면 어떻게 되어 버린게, 관념으로 가득 찬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버리려고 하니까. 바로 지금처럼.
“만날 때 마다 이럴거야?”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맞은 편에 서있던 김민규가 내게 닿을랑 말랑, 가까이 다가왔다. 내 앞에 나보다 훨씬 큰 놈이 바싹 붙어 섰는데도, 그게 무려 김민규인데도, 이상하게 위협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김민규의 눈을 보며 최면이라도 걸린 듯 아무런 방어 태세도 갖추지 않고 다가 오는 담 벽에 기댔다.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가까워진 김민규의 큰 손이 내 얼굴을 가볍게 쥐었다. 손의 온도가 아주 뜨거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서늘한 감촉이어서 되려 뜨거워지고 있는 내 머리를 식혀 주는듯 했다. 나는 김민규가 내게 무얼 할지 알고 있었다.
김민규는 만날때 마다 이럴 거냐는 나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응.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며 처음으로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김민규는 나한테 왜 이러지? 나는 네가 좋아했던 성지의 호구 잡힌 남자친구일 뿐이다. 너에게는 내가 성지의 들러리 같은 존재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한 짓에 대한 보복으로 이러는 거라면, 내가 예상했던 폭력이나 금전적인 협박으로 날 압박해야만 이해가 되는데, 너는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거나 요구 하고 있는지.
“여기서 때리면 한성지 빌미로 협박할거지.”
“잘 아네.”
그리고, 나는 왜 너를 내치지 못하고 거기에 휘말려 가고 있는지. 나는 그림자와 함께 다가오는 김민규의 입술을 다시 한 번 받아들였다. 또다시 이상한 관계에 휘말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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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연재 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닙니다만... 역시 분량 조절 하는게 너무 힘드네요ㅠㅇㅠ
초반에 생각 했던것보다 승관이 과거가 너무 길어지고 있어요. 이거 진짜 완결은 날련지 ㅠㅠ
이 뒤에 더 썼다가 그거까지 쓰면 진짜 또 담주까지 미뤄질 것 같아서 23화는 분량 짧게 여기까지만 끊어서 올립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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