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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띠의 양면 이다.
근본적으로 달라 보여도, 사실상은 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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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겨울.
한성지가 전학 온 지 2일 정도가 지났다.
나는 정확히 한성지가 전학 오고 난 뒤 부터, 남들이 알아 차릴만큼 예민해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갔다는 애가 다시 이런 쓰레기 같은 고등학교로 돌아온거지? 한성지와 다시 마주 쳤을 때부터 나를 헤집었던 정서기억들은 그 짧은 2일 이라는 시간동안 지독한 악몽으로 인도했다. 겨우 미로 속을 벗어 났더니, 출구가 봉쇄되어 결국 나가지 못하는 실패자로 전락한 더러운 기분이다. 한성지를 마주함으로서, 지난 2년 간 잊고자 노력했던 단편적인 두려움이 기다렸다는듯 내 속을 갉아 먹었다. 인간의 학습 능력은 무섭다. 나는 2년 전, 중학생 탈을 쓴 한성지의 순수하고, 잔혹한 그 모순적인 심성을 똑똑히 겪어 보았다. 내 여자친구로 다가 왔을때의 그 상냥함. 부승관과 부승관을 좋아하던 나를 오만하게 깔아 뭉개며 즐거워 하던 그 무자비한 모습도. 나는 한성지가 가진 온과 냉을 온전히 겪었다. 아직도 저 내 마음 속 깊은곳에는 한성지가 가진 그 특유의 기이하고,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이면에 대한 공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언제 나를 잡아 먹을지 모를 것 처럼, 흉흉한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잠을 잘때마다 자꾸만 과거로 회귀 하는 악몽이 반복 돼서 잠도 설치고 있었다. 한성지가 전학 오고 난 뒤에 아직까지는 딱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었는데, 나는 묘하게도 아주 불길한 긴장감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건 부승관 때문이었다.
우리학교로 전학왔다는 것은, 부승관과 다시 이뤄질 재회를 의미 한다. 더군다나, 어이 없게도 한성지는 부승관과 같은 반으로 배정이 되기 까지 했었다. 2학년 3반 애들이 예쁜 전학생 왔다며 히히덕 거리며 복도를 지나가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속에서 주체할 수 없게 타오르는 화를 뿜을 뻔했다. 저 둘의 연은 얼마나 질기길래, 한성지 그 애는 내가 다가갈 수 없었던 자리에 저렇게 손쉽게 앉고, 손쉽게 이어지는 걸까. 자꾸만 이어지는 생각은 부정적이고 우중충한 예측만 낳았다. 어쩌면 부승관은 한성지가 전학을 가고 난 뒤부터도 지속적으로 한성지와 연락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무심코 한성지와 부승관의 인연은 중하교 3학년 이후로 아예 단절 됐을거라고 위험한 결론을 내버렸는지 알 수 없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서신으로 안부를 주고 받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 정보화 사회에 연락 단절이라니. 지금 생각 해보니 얼척 없는 추측이었다. 한성지를 아직도 사랑한다는 부승관의 말이 어쩌면 힌트 였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어중간하게 사건에 개입한 제 3자는 절대 당사자 쌍방의 입장과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부분을 이미 긴 시간동안 충분히 간과해 버렸기 때문에...아마도 난...
“...이건 뭐야. 한성지는 부승관이랑 사귄다하던데.”
결국 이런 뒤통수 치는 말이나 듣게 되는 것이다. 이석민이 뿜어낸 담배 연기 속에서 나를 관찰하는 걱정어린 시선이 맴돌았다. 이석민은 나와 부승관의 관계는 모르지만, 증학교때 나와 한성지가 짧개 교제 기간을 가진걸 알고 있다. 부승관과 나와의 관계는 거의 베일에 쌓여 있지만, 한때 광라리로 날리던 부승관과 한성지와의 교제, 또 짧게 이루어졌던 나와 한성지와의 교제는 이미 알만한 애들은 아는 사실이니까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게 아니었다. 이석민이 걱정 하는것도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게 베일에 쌓여 있던 음지 속 나와 부승관의 관계도 슬슬 그 모습을 드러나는 것 같다. 그것도 타인의 손을 통해서.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온도 보다 더 서늘한 눈으로 회색의 담벼락을 쳐다 보았다. 담벼락에도 낙서가 새로 생겼다.
[김민규가 부승관 하나 때문에 무슨짓까지 했는지 궁금하신분?]
학교 안 벽에 있는 낙서랑 필적이 다르다. 아마도 주인을 닮았을 법한, 단정하고 꾹 눌러쓴 폰트 같은 정갈한 글씨가 그때 알아 볼 수도 없게 더럽게 적었던 글씨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한성지다, 이건. 내가 굳이 안 좋은 머리로 누굴까 곰곰히 생각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가 자주 들리는 이 장소에서, 제일 눈에 띄는 더러운 담벼락에 고집스럽게 새까맣고 진한 매직으로 힘주어서 이런 말을 적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입에서 담배꽁초가 툭 떨어졌다. 시작될 것만 같다. 나를 완전히 밟지 못하고 중학교 생활을 끝내버린 한성지의 복수가. 한성지는 이 학교에 발을 들인지 2일 만에 부승관을 다시 쉽게 가졌다. 그리고, 나를 짓밟기 위한 미끼 작업도 같이 시작했다.
곤란 하다, 정말. 나를 아직도 어수룩한 중학생으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한성지.
나는 가방을 들고 아직도 내 눈치를 살피는 이석민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야, 동구형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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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찌방사이코는 동구형의 제 2의 집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루도 안 빠지고 출석 도장을 찍으러 다니길래, 솔직히 처음에는 저 주인 아저씨한테 경영권 양도 약속이라도 받아 낸 건가?; 라는 현실성 있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잡념을 비우며 푸르스름한 어두운 조명속에서 거침 없이 빠르게 걸었다. 동구형은 항상 제일 넓은 테이블을 잡고 애들이랑 초저녁 부터 판을 거하게 벌린다. 이곳에서는 싸움도 일어나고, 유흥도 일어나고, 만남도 일어나고 온갖 백해무익한 것들이 발아 되는, 그야말로 동구형의 입맛대로 잘 만들어진 핫플레이스다. 왁자지껄한 무리들이 있는 곳 까지 도달한 나는 쇼파에 기대어 뭐가 그리 재밌고 웃긴건지 입을 크게 벌려 웃고 있는 동구형의 앞에 정면으로 섰다. 내 뒤를 잘 따라 오고 있던 이석민은 잠시 멈추어서 얼굴을 찌푸렸다. 심상치않은 내 동태를 살피려는 듯 했다.
“어, 왔네, 민규야. 평소에는 불러도 절대 안 오더니...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귀신 같이도 찾아 왔다, 야. 좀 놀고 있어봐. 그 새끼 곧 온다니까.”
나는 동구형 옆에 철썩 붙어 앉아 있는 남뻐렁 새끼를 내려 보았다. 입원 해있는 새끼가 왜 처 기어 나와가지고. 내 눈빛을 느낀건지 아첨 가득한 눈으로 동구형을 보고 있던 남뻐렁이 그 비열한 눈을 올려 득의양양한 미소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다 얻어 터진 해괴 망측한 꼴로 동구형 옆에 꼭 붙어서 저런 허세나 부리고 있는 꼴이 너무 같잖아서 웃음이 나올 정도 였다. 나는 남뻐렁에게 돌아갔던 시선을 거뒀다. 오늘은 동구형님이 부승관 교실까지 찾아가서 부승관을 직접 이곳으로 오라고 불렀다. 남뻐렁의 못 다한 복수를 대신 이뤄주는 영광적인 날인 것이다.
원래 나는 방해 할 생각이 없었다. 부승관은 자신의 일에서 손 떼라고 중학교 3학년때부터 줄기차게 경고 해 왔지 않던가. 내가 자기 생각해서 해준 경고도 싸그리 무시한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렇게 남 속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어놓고, 인생의 모든걸 빼앗을 목적이 분명한 한성지와 또 다시 붙어 먹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는 오늘 동구형이 초대한 이 싸움에도 순순히 알겠다고 응했다고 하지 않는가. 너무나도 제멋대로,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부승관에게 내가 또 나서서, 내 편인 동구형까지 등지면서 편 들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뭐,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지막 아 담벼락을 장식한 한성지의 농지거리를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난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동구형은 오장효랑 다르다. 오히려 솔직함이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동구형님.”
“어.”
“거짓말 해서 죄송합니다. 저 부승관 좋아하는거 맞습니다.”
주위를 둘러 싸던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들이 썰물 빠져 나가듯 고요해졌다. 나는 완전히 침묵과 경악으로 덮힌 술집안에서,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 말했다.
“부승관이랑 안 싸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구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갔다. 나는 허리를 숙였다. 침묵이 붕붕 뜬 공간에 남뻐렁의 흥분한 목소리가 섞였다.
“와,씨발...소문 사실일줄 알았다, 호모새꺄. 편 드는거 존나 눈물겹네.”
의기양양한 표정을 되찾은 남뻐렁은 내심 기뻐보였다. 내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고 남뻐렁을 내려다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재빨리 눈을 피하면서도 기분 나쁘게 킬킬 웃고 있었다.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힐거라 단정하는 호기로운 얼굴이었다. 먹힐지 안 먹힐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파악한 동구형은 인정에 약하고, 내 사람 잘챙기고, 의리가 있다. 그리고 쓸데 없이 정의감도 넘치고, 사람이 솔직하게 굽히고 들어 갔을때, 그 상대방의 격양된 감정에 같이 동요 될 줄 아는 아주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속 좁고 싸움 하고 다니는 것만 빼면, 내가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된사람 부류에 속한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믿고 고백한 것이다. 난 동구형님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숙였던 허리를 피고, 모두가 얼음 같이 얼어서 한 마디도 흘러 나오지 않는 쥐죽은 공간 속에서, 같이 경악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이석민까지 지나쳐서 걸어 나갔다. 막상 말하고 나니까 마음이 왜이렇게 가벼운지 모르겠다. 동구형이 받아 들일지, 내 부탁 대신 남뻐렁을 선택 할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긴박한 상황에 꽤나 큰 음의 피드백을 준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썼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확률이 클 것이다.
말을 저지르고 밖으로 나오니, 컴컴한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석민은 금방 따라 나올줄 알았는데, 충격이 컸나 본지 금세 나오지 않았다. 기다려 줄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 요즘 집으로 가면 생각이 너무 많아 진다. 한성지 생각, 부승관 생각, 부승관 생각, 부승관 생각. 그리고, 저기 부승관.
나는 저만치서 다가 오고 있는 작은 인영을 보았다. 때마침 나타났다, 주인공이. 싸움 하러 오는 꼴 치고는 뭐 이렇다할 표정 없는 얼굴로 우산조차 쓰지 않은 채 운동화 질질 끌면서 걸어오던 부승관이 저만치서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멈춰섰다.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박아 넣으며 우뚝 서있었다. 나를 잠시간 보던 부승관은 이내 다시 걸어서 내가 서 있는 자동문 앞 근처 까지 왔다. 내게 시선 주지 않으며 옆으로 비켜나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녀석을 내려다 보았다.
“야, 동구형 너랑 싸움 안 해. 그냥 가.”
“......”
“그거 전해주려 나온거야.”
구라지만. 부승관은 고개를 돌려 그제야 나를 바라 보았다. 하아.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예의없게 한숨을 쏟아낸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비에 젖은 머리를 앞머리를 털며 자동문을 버튼을 열려고 손을 올렸다. 그걸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의 손을 잡아 내렸다.
“진짜 싸움 안 해. 형 노는거 방해 하지말고 그냥 가라.”
“김민ㄱ...”
“부승관.”
“......”
“한성지랑 사귀냐?”
나는 잡고 있던 부승관의 손을 놓았다. 부승관은 옆을 돌아 나를 보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무념한 얼굴에서는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묘하게 감출수 없는 박력이 느껴졌다. 나는 모처럼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나는 이런 부승관을 꽤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너 예전에,”
“......”
“나 대신 오장효랑 싸우러 갔었지.”
부승관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 뜻밖의 말이어서 순간 할 말을 잃고 당황한 내색을 비췄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이정도로 개연성 없지는 않겠다. 하지만 진지한 부승관은 몸을 완전히 돌려 나를 쳐다 보았다. 나와 부승관이 서 있는 이 공간 안에서만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정적인 순간이 흘렀다.
“등신 새끼.”
딱히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탄식과 가까운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불필요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내게 탄식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 앞에서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지금 이런식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등신새끼의 의미는 뭘까. 정작 자기는 싸움 하러 나가지도 않았는데 괜히 내가 나서서 맞은 것에 대한 한심함?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 정말 부승관은 싸움하러 왜 나오지 않았던 걸까. 물어보고 싶지만 한성지랑 사귀냐는 질문에도 답 해주지 않는 녀석이 이야기 해줄리 만무하다. 부승관은 나를 잠시 쳐다 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진짜 경고하는데, 이제 내 일에 그딴식으로 끼어 들지마.”
“......”
“또 한 번 그런식으로 나오면 너부터 조질거니까.”
“그래? 그럼 미리 조져 보던지. 나도 존나 참고 있거든.”
나는 반격했다. 이제 반격해야 할 타이밍이다.
“대신 그 이후에 내가 하는 모든 짓들은 너야 말로 일절 간섭 떨지마라. 대가 치룬 걸로 하고.”
“......”
“나도 계속 굳이 너 생각하면서 없는 교양 떠는거 존나 지겹거든.”
난 누가 대 놓고 막 나가라 하면 진짜 맨 밑 바닥 까지 찍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럴 기회를 부승관, 네가 준다면. 부승관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려졌다. 나는 차라리 부승관이 나를 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나는 내가 부승관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 동구형 앞에서 고백 한 것도 내가 가지고 있던 짐의 일부를 풀어 놓는 작업이었는데, 부승관에게 시원하게 맞는다면 나는 그에 온당한 대가로 더 내 멋대로 이 모든 전개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한성지던, 부승관이던. 나한테 유리하게. 그 중학생때의 공포를 극복하고.
나는 사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부승관에게 별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2년이라는 세월은 날카롭게 찔렀던 아프고 어설픈 사랑이라는 감정도 날이 무뎌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현재와 과거.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3학년. 난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무뎌졌을 뿐이다. 부승관에 한해서만 나는 바뀌지 않은 듯 하다.
마치 뫼비우스 띠의 양면 처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사실상 같다.
나는 여전히 부승관을 좋아한다. 그것도 엄청 위험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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