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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와이프를 볼때마다

예쁜 두개골을 열고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그녀 생각들을 잡으려 애쓰는 날 생각한다.

결혼 생활 중에서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다.

 

무슨 생각해?

뭘 느끼고 있어?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 영화, 나를 찾아줘

 

 

.

 

겨울 방학식 이었다. 내가 부승관을 좋아하는 걸 남들 앞에서 충동적으로, 어쩌면 계획적으로, 고백한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는 증거다. 나는 실로 그 이후 많은 파장을 예상했다. 부승관이 내가 좋아한 최초의 동성이었기에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는 사실 내 자신에게도 참으로 애매한 문제지만, 일단 같은 남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동급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 자체가, 겨우 18살 한국 고등학생들에게는 그냥 호모라고 아웃 한것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했을때 사회에 어떤식으로 매장되고 어떤 과정으로 비참해 지기 시작 하는지는 굳이 실제 경험을 해보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학습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실 마음이 후련함과 동시에 음습한 불안감이 습자지에 물 스며들듯 빠르게 흡수 되었다. 이 고백으로 인해서 나에게만 피해가 가면 되는데. 나한테 좆같이 구는 새끼은 다 내가 알아서 처리 하고, 학교를 그만두던지 내가 선택하면 되는 문제인데. 내 일방적인 통행으로 부승관 까지 치인다면 그냥, 그냥 내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 까지 상상하기에는 너무나 두렵고, 또 어려운 문제였다. 집에 와서도 밤잠을 설치며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를 곱씹었다. 그리고 그렇게 곱씹고, 또 곱씹으며 한 가지 또 다시금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난 내 생각보다 부승관을 더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실로 쓸쓸한 생각이었다. 그걸 떠올린 순간 중학교 3학년, 부승관에게 마음을 짓 밟혔던 그 16살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 하는 그때의 나는, 정말 부승관에게 미쳐 있었던 것 같다. 부승관 대신 한성지와 맞설 시도를 했던것과, 부승관에게 배척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 이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고스란히 퇴적 되고 굳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로 올라 오면서 그것들을 모르는 척 묻었고, 참지 못하고 내 손으로 또 다시 파헤쳤다.

난 정말... 정말 부승관이랑 만나지 않았어야 하는게 아닐까. 쪼대로 다 살아왔던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까지 몰아친다. 비이성적인 행위도 아무렇지 않게 부승관의 일이라면 그냥 용납 되어 버린다. 나는 많은 것을 떠올리고, 또 많은 것을 지우며 그 날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어제 왜 먼저 갔냐.”


그리고 나답지 않게 긴장하며 학교로 갔을때는, 내게 상상했던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범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석민과, 그냥 나를 있는 듯 없는 듯 취급하며 눈치보는 반 애들과, 언제나 처럼 무료하게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과, 언제나 처럼 지루한 수업과, 언제나와 같은 일상. 나는 내 몸이 적응되어 있는 그 일상에 몸을 적시면서도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동구형이 거기 있는 애들 전부 다 함구 시켰어. 남뻐렁 그 새끼가 좀 걱정이긴 한데 지금 입원중이니까 털고 싶어도 함부로 입 못 터니까 걱정마라.”

“...?”

네가 꼭 네게 일어날 불행을 존나 기대하는 주말드라마 남주 같은 얼굴이길래.”

 

눈치 빠른 이석민이 먼저 선수 쳐주지 않았다면 난 정말 그 날 내내 계속 영문을 몰라 미치려 했을 것이다. 아 동구형. 나는 말아쥐었던 주먹을 펴며 가볍게 웃었다. 내 인생에서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 부승관 이라면, 동구형은 내 페기물 쓰레기 같은 허세와 가오만 가득한 인생에 나타난 유일한 귀인이다. 나는 진심으로 의리 넘치는 동구형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고 싶어 졌다. 또 한편으로는, 동구형 졸업 하면 다음년도에 나는 또 이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런 현실적인 걱정이 밀려 오기도 했다.

 

, 근데. 언제부터야.”

.”

부승관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존나 욕만 했으면서.”

 

이석민은 부승관과 내 관계, 그리고 한성지에 대해서 반의 반도 알지 못한다. 난 순수한 궁금증이 담긴 이석민의 눈을 보며 말했다.

 

중학생 부승관이 처음 내 정강이 깠을때부터.”

 

한성지를 이기는 존재감으로 내 앞에 처음 나타 났을 때부터 모든건 시작되었다.

 

-

 

그리고 겨울 방학식을 앞둔 지금이다. 그동안은 평범 하면서도 잡음 있는 일상이 이어졌다. 잡음이 뭐였나면, 바로 낙서 였다. 한성지가 했을 거라 추정 되는 낙서 옆에도 한성지가 하지 않았을 거라 추정 하는 낙서들도 생겨났다. 아마 내가 부승관을 좋아하는 걸 대놓고 소문 내지못하는 찌질한 새끼들이 하나씩 악질적이고도 유치한 이런 장난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추적 하는건 일도 아닌데 오히려 그랬다가 일이 더 커질 위험도 있고, 이 정도면 애교로도 봐줄 수 있는 정도라 참고 넘겼다. 대신 그딴 낙서 꼬라지 보기가 싫어서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나만의 관습은 그만두었다. 이석민이 그럴바에는 그냥 같이 금연이나 해보는게 어떻냐고 제안 해서 지금은 계속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연중이다.

한성지는 부승관은 겨울 방학식이 시작하는 지금 까지 별 액션 없이 조용 했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한성지는 내게 웃으며 민규야 안녕, 따위의 살가운 인사를 건네지만 그 뿐이다. 폭풍전의 고요 같아서 더 섬뜩 하기도 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한성지는 2학년이 끝나가는 중에 전학 와서도 정말 놀라울 정도의 적응력으로 반에서 독보 적인 존재감을 어필 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미 부승관 여자친구라는 명분과, 중학교 때 있었던 그 좋지 않은 추문도 솔솔 피어 올라 오면서 되려 더 유명세를 탔다. 이쯤 되면 한성지는 남들의 관심을 얻는 건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듯 하다. 이 모든 것들은 나긋한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 한성지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권위다. 부승관도 멋대로 휘둘러, 학교도 멋대로 쥐고 펴, 하다 못해 지고는 못 사는 나 김민규도 여러번 맥이고 다신 없을 굴욕감을 맛보게 하지 않았는가. 한성지가 전학 오고 여러번 고민하고 생각해보았지만, 도무지 내 머리로는 한성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대체 이 학교에 왜 나타난건지, 부승관이랑 또 왜 사귀는 건지, 아직도 부승관을 꼭두각시처럼 이용해서 본인의 유흥거리로 전락할 속셈인지... 그런 걸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 한성지의 머릿속에서 나와 부승관을 싹 지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집으로 바로 가냐?”

. 간다. 연락할게.”

 

겨울방학식은 흐지부지 끝났다.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 전 부승관을 한 번이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승관의 반에 찾아 갔지만, 복도에서 마주친 한성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승관이 찾아? 승관이 오늘 안 왔어.”

 

내 생각을 전부 읽고 있는 것 같은 저 눈은 여전히 꺼림칙 하게 느껴진다. 나는 다소곳하게 내가 말을 꺼내는걸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서 있는 한성지를 말 없이 내려 보았다.

 

한성지.”

?”

무슨 생각이야?”

민규야,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무슨 생각으로 전학 왔냐고.”

“...전학 온 이유가 뭐가 있겠니. 그 전에 다니던 학교가 너무 안 좋았거든... 나 중학생때 전학 갔던거 잘 알고 있지? 할머니 계신 완전 시골 구석으로 전학 갔는데, 거기서는 계속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말야.”

 

한성지는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나는 한성지가 뱉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뾰족한 선단의 칼날이 숨겨져 있는 걸 알고 있다. 내게 작은 생채기라도 남기기 위해서.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2년이 지났다. 한성지는 어쩌면 더 그때보다 똑똑해졌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더 꺼내려 할 때, 한성지 반 애들도 일제히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벌렸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 그냥 뒤돌아 가려는데, 한성지의 가냘픈 목소리가 날 붙잡았다.

 

민규야, 요즘은 싸움 잘 안한다며? 잘됐다.”

“......”

이제 싸움 그런거 하지마. 위험 하잖아.”

 

한성지는 나비 같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내 옆까지 걸어와서 내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며 걸어나갔다.

 

씨발.”

 

좆같은건 변하지도 않네.

 


-




급하게 써서 분량이 짧네요 ㅜ_ㅜ...

이제부터 다시 토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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