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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그날 부터 진아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항상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서 쉬다가 학원을 가는 반복적인 일상을 탈피 하고, 집에서 학원을 가기 까지 남는 2시간을 진아와 함께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를 마치면 학교 놀이터에서 놀자는 다른 친구들의 부름도 마다하고, 진아가 있을 상가 옥상을 향해 한 달음에 달렸다. 숨이 차는 것도 잊고 학교에서 부터 바람을 가르며 쉬지 않고 뛰어 상가로 가면, 옥상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승관아!' 정답게 내 이름을 부르는 진아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그러면 나는 치아를 완전히 드러내며 헤벌쭉 해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다시 옥상을 향해 달렸다.
  진아는 나랑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더 똘똘하고 영리하고, 쾌활했다. 그렇기 때문에 옆에 있으면서 더욱 즐거운 일들이 가득했다. 몇 십년 동안 이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 하셨다는 아버지 덕분인지, 진아는 동네에 대해서 모두 학습한 것처럼 줄줄 꿰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들을 보따리 상인 처럼 내게 늘어 놓았다. 물론 정보의 출처는 진아의 아버지가 대부분 이었지만, 진아 역시도 꽤 오랫동안 상가 옥상에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본인이 자연스럽게 습득한 정보도 많았다. 이야기 범위도 항상 다양했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 이야기, 저 쪽 맞은편 24시각 정육점을 운영하는 노총각 주인 아저씨의 맞선 실패 히스토리, 늘 같은 시간 상가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고등학생 형과,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고등학생 누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 우리 동네까지 와서 각티슈 한 통을 두 손으로 안고, 먼지가 많아 보이는 남의 자동차에 티슈 한 장씩 뽑아서 차 유리에 꽂아 둔다는 옆동네 치매 할머니 이야기, 상가 안의 4층의 피아노 교습소에 대한 괴담 등... 많은 동화같은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 내어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진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옥상 위에서 사람을 구경하는 그 찰나의 시간이 꿈과 같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이야기가 끝나면, 옥상 위에서 진아가 가져온 공기로 공기 놀이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낼때도 있었고, 세탁소 안에 있는 진아와 진아 아버지가 지내는 조그마한 골방으로 들어가서 놀기도 했다. 가게 안 구석에서 늘 옷을 다림질을 하고 계셨던 진아의 아버지는, 갑자기 일상에 침범 하기 시작한 나를 진아와 똑같이 귀여워 해주셨다. 덥수룩한 수염이 반을 덮은 얼굴로 진아와 똑같은 순박한 웃음을 띄우며, 미지근한 과일 주스와 눅눅해진 버터링 과자를 함께 내주시기도 하고, 주방 선반에 가득 차있는 라면 중 하나를 꺼내 손잡이가 하나 떨어진 양은 냄비에 끓여 주시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어렸지만, 진아가 썩 그리 잘 사는 편이 아니란 것쯤은 어림 짐작할 수 있었다. 진아가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에도 분명 이런 가정 환경이 크게 한 몫 하고 있었을 것이다. 허름한 상가 안의 작은 세탁소는 단골손님 몇 명만 의리로 찾아줄 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진아와 진아 아버지의 외롭고, 외로운 공간이었다. 진아의 아버지는 또래의 친구도 없이 늘 혼자 지냈던 진아가 같이 어울릴 친구가 생긴걸 대단히 기쁘게 여기 시는듯 했다. 항상 내가 찾아오면 하던 일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반겨주셨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진아와 친하게 지내라, 같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승관아! 혹시 너 1,2 학년때 쓰던 교과서 집에 있어?”
“글쎄? 엄마한테 물어 봐야해. 근데 왜?”
“나 중학교 부터는 아빠가 학교 보내주시겠대! 근데 지금 내 수준이면 들어가면 암것두 몰라서 엄청 고생할것 같아. 시간 있을때 미리 공부라도 더 해두고 싶어서... 만약 있으면 나한테 빌려줄 수 있어?”
 
  그 말을 하는 진아는 누구보다 들떠보이고 행복한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밑을 내려다 보고 있던 시선을 진아 쪽으로 옮겼다. 진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조금 민망하다는듯 눈썹을 내렸지만, 그 안의 설렘을 마냥 숨길수만는 없었다. 어렸던 나는 진아가 학교를 가지 않아서 마냥 부럽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진아는 항상 학교에 대한 크나큰 동경이 있어던 모양이다. 기초적인 한글도, 구구단도, 곱셈 뻴셈도 아버지 밑에서 배웠다고 했다. 언제 한 번 내가 너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라고 물었을 때, 진아는 조금 망설 이다가 대답했다. 학교는 가고 싶어. 그 이후 다른 대답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난 그 말끝에 감춘 진아의 마음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아는 남들보다 용감하고, 똑똑했으기 당연히 배움에 대한 열망도 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아는 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무얼 했는지 자주 묻곤 했다. 내가 그날 있었던 일을 늘어놓고 숙제가 많다, 수업시간이 너무 지겹다 불평을 해도 진아는 웃는 표정으로 늘 귀 기울여 들어 주었다. 지금와서야 깨달았지만, 나는 누구보다 학교를 선망했던 진아 앞에서, 복에 겨운 소리만 늘어 놓았던 눈치 없는 아이였다.
 
나는 학원을 가기 위해 내려두었던 책가방을 매며 대답했다.
 
  “집에 가서 찾아보구 내일 꼭 들고올게.”
 
 
 
-
 
 
 
“부승관! 오늘도 먼저 가?”


종례가 끝나고 누구보다 먼저 책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는 내 앞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나는 고개를 올려 앞에 상대를 쳐다 보았다. 김지한 이었다. 학교 동급생들 중에서도 유독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성격도 짖궃은 녀석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려들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는데, 친한 척 말을 거는게 영 꺼름칙하게 느껴졌다.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은 아닐터이다.
 
 
 
“응.”
“너 요즘 빨리 나가더라.”
“그냥 일이 있어서.”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 겠지만, 왠지 이 녀석 앞에서는 더욱 진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게 꺼려졌다. 살에 밀려 올라간 사나운 눈꼬리가 나를 관찰하는게 느껴져서, 더더욱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나와는 별 접점도 없는 녀석인데...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거짓말 치지마. 너 요즘 진아세탁소 집 애랑 노느라 그런거지?”
 
 
김지한의 입에서 진아세탁소라는 말을 듣자 마자 내 인생 처음으로 심장이 땅 끝까지 툭 떨어지는 섬뜩한 기분을 맛보았다. 나는 책가방 끈을 양 손으로 꽉 부여 쥐고 무어라 할 말을 찾으려 입을 벌렸지만, 끝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리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냥 이런 상황이 마냥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울엄마가 걔는 돈도 없어서 학교도 못다니는 애라던데.”
“……”
“너 어제 걔랑 노는거 봤어. 설마 걔 좋아하는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 좋아 하는거 아니야! 그냥 우연히 알게 돼서 몇 번 같이 논게 전부야.”
“그래? 그럼 이제 걔랑 놀지마. 너도 거지 취급받을걸.”
 
 
나는 바닥으로 떨궜던 시선을 올려 다시 김지한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올라가 있는 저 입꼬리는 나를 시험 하듯 잔뜩 비틀어져 있었다. 나는 김지한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비겁하게 눈을 돌리고 말 없이 고개만 한 없이 끄덕였다. 나라는 존재가 무참할 정도로 저 기세에 짓밟히고 있었다. 그 결과로, 나는 그 순간 너무나도 소중한 진아의 존재를 지울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겁이 많았으니까.
 
지금 내 모습을 진아가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너 지금 또 걔한테 가려는 거 아냐?”
“…아니.”
“그래? 그럼 오늘 우리집 놀러 갈래?”
 
 
지금 내 머릿속에는 늘 그랬듯 상가 옥상 위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진아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가방 안에 들어있을 교과서들도 생각이 났다. 아, 오늘 교과서 전해주기로 했는데... 내가 안 와도 진아는 나를 하염없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진아의 청량하고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귓전에 생생히 스치는 듯 했다. 생각만 해도 내게 크나 큰 안정감과 기쁨을 주는 진아의 순수하고 아이같은 모습. 나는 거기까지 떠올렸음에도... 진아에게 가고 싶다는 어린 충동이 파도 치듯 밀려 왔음에도. 정말 그 간절한 순간에도, 김지한의 권력있는 제안을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주 어릴 적 부터 나는 겁쟁이었다. 진아와 김지한을 두고 순식간에 본능적인 계산을 할 만큼 저열하고, 약해 빠지고, 비겁한 사람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이제 더는 진아와 지금처럼 지낼 수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머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응. 갈래.”
 
 
내가 김지한 입에서 나온 진아의 치부를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그 순간 부터, 작은 나비효과가 되어 내 인생을 송두리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어긋 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의 변변치 못한 태도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답답해서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김지한에게 진아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한 경고라도 했다면, 하다 못해 주먹이라도 시원하게 한 대 날려 주었더라면. 나는 가슴을 누르는 그 죄책감에서 조금은 해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건 순간에 이루어졌다. 이미 김지한이 유리한 판으로 단숨에 기울어졌다.
 
 
 
: 베드로
 
 
 
김지한이 내게 접근한 이후 부터 나는 더 이상 진아와 함께 하는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없었다. 방과후에는 항상 기다렸다는듯, 누구 보다 먼저 김지한과 김지한의 친구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진아에 대한 죄책감을 필사적으로 떨쳐 내며 순순히 그들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학원을 가기 전 2시간은 김지한 집에 따라가서 컴퓨터로 유투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재미 없는 일상 으로 채워졌다. 나는 그들과 마지못한 내색을 숨기며 어울리면서도, 항상 가방 안에는 진아를 혹여라도 만나게 될 때 줄 수 있도록 교과서를 지니고 다녔다. 제발 진아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고대 했다. 김지한이 하루라도 빨리 나와 진아에 대한 흥미를 꺼주길, 내가 다시 진아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순간이 돌아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오늘은 떡볶이 먹으러 가자. 형우가 사줄거야, 그치?”
“응. 아직 용돈 좀 남았으니까 내가 사줄게!”
 
 
나는 김지한이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을 얕잡아 보고, 깔보는 그 천부적인 본성을 드러낼때마다 심한 적개심이 피어 올랐다. 그 약자의 범위에 나와 진아가 포함이 된다고 생각 하니까 더욱 분하고, 개탄할 일이었다. 김지한은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았으면서도 상당히 냉정하고, 우두머리처럼 남들을 잘 거느리고 다녔다. 무리들 사이에서도 당연 눈에 띄는 포지션 이지만,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괴롭히겠다 마음을 먹었을때는 외로운 늑대형처럼 혼자 움직인다. 방과후에 나에게 혼자 다가와서 모든 것을 훼방 놓은 것처럼. 항상 자신의 친구들 사이에 날 끼우고 다니지만, 진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때는 꼭 나와 둘이 있는 상황에서였다. 너 요즘도 걔랑 놀아? 내 처지를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꼭 내가 그런 애랑 어울려서 따돌림 당할까봐 걱정하는 척 연기해가며.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녀석이 원하는 대답을 기꺼이 해주었다. ‘아니. 이제 그런 애랑은 안 놀아.’
비겁한 놈, 마음 속 한 구석에서 큰 외침이 들려도 나는 귀를 막았다. 내게는 현실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진아 보다는, 학교라는 공간안에서 몇 년 동안 이나 얼굴을 봐야 하는 권력있는 김지한을 선택한 것. 내게는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승관아!”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할 때부터 불안 했다. 항상 가던 김지한의 집은 상가가 있는 쪽과 반대 방향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진아와 마주칠 경우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려는 떡볶이 집은 상가 근처에 있다. 그곳을 가려면 상가를 지나 쳐야 한다. 그럼 진아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김지한은 일부러 그곳을 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나는 마지못해 이끌려 가면서도 자연스레 주위를 둘러 보았다. 특히 상가를 지나칠 때는 나도 모르게 위를 쳐다 보려는걸 꾹 인내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서 진아가 있을지도 모르는 저 상가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다. 그런 충동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상가 통로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상가쪽을 완전히 지나쳤을 때 난 비로소야 안심했다. 진아가 나타나지 않아서. 또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보고 싶기도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뚝 멈춰섰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걷고 있던 김지한과 김지한의 친구들도 동시에 멈췄다.
 
 
“승관아, 요즘 너무 안와서 무슨 일 생겼나 걱정 했어.”
 
 
내게로 다가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 보았다. 근심을 가득 담은 진아가 내 앞에 섰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얼굴이 빨개졌다. 무언가 창피 하다는 감정이 일었다. 이게 그동안 진아를 외면한 내 자신에 대한 창피함 인지, 진아가 나를 부른것에 대한 창피함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와 반대로 진아는 내 옆에 누가 있든 말든 신경 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나에 대한 반가움과, 나를 걱정 하는 사려 깊은 눈빛이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쉽사리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내가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 진아를 흥미 있게 보고 있던 김지한이 입을 열었다. 나는 무언가 확실히 잘못 되어 간다는 걸 느꼈다.
 
 
“네가 진아세탁소 걔 구나.”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난 진아세탁소 걔가 아니고 강진아야.”
 
 
진아는 내게 고정했던 시선을 돌리고 김지한을 쳐다 보았다. 나는 이 상황을 중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말이 나가지를 않았다. 내 자신의 무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주먹만 꽉 쥐었을 뿐이다
 
 
“왜 부승관한테 친한 척 하냐?”
“친한척이 아니라 진짜 친구니까.”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해? 부승관은 아니라는데.”
 
 
진아와 김지한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부승관은 이제 너 같은 거지랑은 안 놀거래.”
 
 
와하하, 김지한 친구들의 명백한 비웃음 소리가 거리를 채웠다. 진아는 말 없이 입술을 꼭 깨물고 서 있었을 뿐이다. 나는 차라리 이대로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회피하고 싶다. 정말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회피하고 싶다.
 
 
“뭐해, 부승관. 꺼지라고 한 마디 해줘.”
“......”
“네가 꺼지라고 말 안하면 쟤 계속 길 막하고 서있겠는데.”
 
 
내 어깨에 두르고 있던 김지한의 손이 나를 거세게 눌렀다. 어서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나는 입으로 숨을 크게 내뱉었다. 과호흡이 올 것처럼 숨이 덜덜 떨리며 입 밖으로 거칠게 치고 나왔다. 내 어개에 끈덕지게 붙어 있는 김지한의 뜨거운 손, 진아를 위해 챙겨왔던 교과서가 아직도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 처음 보는 진아의 혼란스러운 표정, 애들의 웃음소리... 등 뒤에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빨리 말해. 김지한이 내게 귓속말을 했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
 
 
“...꺼져.”
“...승관ㅇ”
“우리 앞에서 꺼지라구!”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날 감싸고 있던 김지한의 손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잘 했어. 김지한의 흡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앞에 진아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고 싶지 않았다. 진아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눈을 하고 있으면, 그대로 상가 옥상으로 달려가 뛰어 내리고 싶어질까봐. 나는 겁쟁이라서, 너무나 비겁해서 상처를 주고도 상처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외면 하려 한다. 나는 너무 약하다... 약한게 이렇게 증오스러운적은 없었다.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김지한이 나를 잡아 끌었다. 나는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그 와중에도 절대 고개를 들어 진아 쪽을 쳐다 보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부정하며 죄인이 되어 걸어 가는 그 길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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